어려서부터 키운 가수의 꿈
170cm가 넘는 큰 키만큼 시원시원하고 소탈한 지금의 모습과는 달리, 어린 시절의 정민 씨는 무척 소심하고 내성적인 성격이었단다. 그렇지만 피아노 칠 때만큼은 유독 자신감이 가득했던 그녀는 많은 사람 앞에서 피아노 치며 노래 부르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며 가수의 꿈을 키우기 시작했다.
“친구들에게 입버릇처럼 ‘나는 가수가 될 거야’라고 늘 말하고
다녔는데, 하나같이 콧방귀만 뀔 뿐이었죠. 지금에 와서 친구들에게 ‘너는 정말 꿈을 이뤘구나, 대단하다’는 말을 들을 때면 스스로가 대견하곤 해요.”
그렇게 가수가 되길 소원하고 꿈꿔왔지만 그녀의 부모님은 한사코 그 꿈을 반대하셨다고. “목사이신 어머니의 반대가 무척 심하셨어요. 피아노를 좋아하는 제가 피아니스트의 길을 가거나 교회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길 원하셨거든요. 하지만 꿋꿋이 제가 하고 싶은 일과 꿈을 포기하지 않았어요.”
아쉽게 떠나보낸 첫 기회
이후 대학에서 피아노를 전공하며 가수가 되고자 꿈을 키우던 정민 씨에게 큰 슬픔이 닥쳐온다.
“2008년에 갑작스레 아버지가 돌아가셨어요. 죽음이라는 걸 가까이서 겪고 나니 나 자신에 대한 생각도 많이 바뀌더라고요. 내가 진짜 원하고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돌이켜 보게 되었죠. 하지만 당장의 눈앞이 캄캄했어요. 학비는커녕 어머니와 동생들의 생계도 막막했죠. 무작정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에 무엇을 할까 고민하다 문득 언젠가 제게 트로트 데뷔를 제의해 왔던 기획사 한 곳이 떠올랐어요. 한창 R&B 가수를 준비하던 당시에는 트로트를 해보자던 제의가 반갑지 않았고 끝내는 사양했죠. 하지만 이것저것 가릴 처지가 아니었던 탓에 그 길로 회사를 찾아갔어요.”
당시 앨범을 제의했던 기획사는 정민 씨의 목소리가 트로트와 잘 어울릴 것이라 생각해 트로트 앨범 제작을 제의했으나 그녀의 거절에 무척 아쉬워했다. 그러나 우연찮은 계기로 그녀와 재회하게 되자마자 일사천리로 앨범 준비가 이루어져 2009년 첫 앨범이 나오기에 이른다.
“어머니의 반대가 무척 심하셨어요. 피아노를 좋아하는 제가 피아니스트의 길을 가거나 교회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길 원하셨거든요. 하지만 꿋꿋이 제가 하고 싶은 일과 꿈을 포기하지 않았어요.”
“꿈을 향해 달려온 그 고독한 길에서 제가 믿을 건 딱 두 가지였어요.
나 자신, 그리고 내 실력.주변의 많은 시선과 어려운환경에서 내 길을 갈 수있도록 지켜줄 무기는 오직내가 가진 실력이었어요.길고 어려운 시간이 될지라도그것을 인내하며 갈고닦은실력만이 꿈을 이루는발판이 되리라 믿어요.”
“반년 가까이 활동하며 불러주는 곳이면 어디든 가리지 않고 노래했어요. 하지만 여러 가지로 어려움이 많았고 무엇보다 저 자신이 아직 준비되어 있지 않았어요. 하고 싶었던 음악인 R&B에 대한 미련도 많았고요. 결국 첫 가수활동은 그렇게 끝이 나고 말았죠. 갑작스레 찾아온 만큼 아쉬움도 많았던 시간이에요.”
꿈은 이루어진다
첫 활동이 아쉽게 끝난 이후 정민 씨는 아이들에게 피아노를 가르치며 새로운 일상을 시작했다. 아이들과 부대끼며 함께한 시간은 나름 즐겁기도 했고 자신이 가르친 아이들이 성장하며 실력이느는 모습에 뿌듯하기도 했다. 그렇게 일상에 젖어 가수라는꿈을 조금씩 지워가는 듯하다가도 이따금씩 찾아오는 아쉬움과 공허함은 늘 그녀 주위를 맴돌았다.
“어느 날, 동생이 제게 ‘누나가 노래하는 영상을 인터넷에 올려보자’고 제안했어요. 그렇게나마 이루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을 달래보자는 생각에 피아노 치며 노래하는 모습을 찍어 유튜브에 하나둘 올리기 시작했죠. 얼마 후 ‘트로트엑스’라는 오디션 프로그램 제작진에게서 섭외 전화가 왔어요. 제가 올린 영상을 보고 프로그램에 참여해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보내온 거죠. 그렇게 또 기회가 찾아오더군요.”
‘트로트엑스’에 출연하며 그녀는 숨겨두었던 끼와 실력을 유감없이선보였다. 뛰어난 피아노와 노래에 이국적인 외모는 덤이었고 ‘광진구 고소영’이라는 수식어와 함께 많은 인기를 얻게 된다. 이를 계기로그녀는 다시 가수의 꿈을 이어갈 수 있었다.
“당시 프로그램의 심사위원이셨던 설운도 선생님의 눈에 띄어 지금의 소속사와 만나게 되었어요. 어렵게 다시 얻은 기회인만큼 이번엔 실수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에 정말 치열하게 준비하고 연습했죠. 한번 실패를 맛봤기에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거든요. 제게는 돈 주고도 못 살 값진 경험이 아닐 수 없죠.”
또 다른 도전을 향해
대중 앞에 다시 이름을 알리며 활동을 재개한 지도 어느덧 3년이 조금 지났다. 그간 음악방송뿐 아니라 각종 예능에도 출연해 얼굴을 알렸고 저 멀리 남미에까지 팬클럽이 생길 만큼 트로트 한류스타로 발돋움하기 시작했다.
“제가 출연한 음악방송과 예능프로들을 보고 팬이 되어 한국까지 찾아
와주시는 남미 분들을 보면 감사함에 몸 둘 바를 모를 정도예요. 이렇게 먼 곳에 계신 팬분들께 어필할 수 있었던 데는 까무잡잡하고 이국적인 외모도 한몫했다고 생각해요.(웃음)”
이외에도 정민 씨는 곧 일본 진출을 앞두고 있으며 드라마에도 캐스팅되어 연기에도 도전하게 되었다고.
“트로트는 무엇보다 감정이 중요한 장르에요. 그래서 연기를 배워두면 도움이 되겠다고 생각해 틈틈이 연기수업을 받아왔는데 제게 캐스팅 제의가 왔고 음악선생님 역할이 주어졌어요. 아이들을 가르친 경험도 있고 제가 잘 해낼 수 있을 거 같아 도전하게 되었어요. 많이 부족하지만 이번에도 후회 없이 잘 준비해볼 생각이에요.”
그저 나를 믿고, 갈고 닦을 뿐
지금의 자리에 서기까지 여러 시행착오를 겪어 오며 그녀는 깨달은 것이 있다고 했다. 그것은 바로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다.
“꿈을 향해 달려온 그 고독한 길에서 제가 믿을 건 딱 두 가지였어요. 나
자신, 그리고 내 실력. 주변의 많은 시선과 어려운 환경에서 내 길을 갈 수 있도록 지켜줄 무기는 오직 내가 가진 실력이었어요. 길고 어려운 시간이 될지라도 그것을 인내하며 갈고닦은 실력만이 꿈을 이루는 발판이 되리라 믿어요.”
발라드나 R&B만큼 진한 여운을 주는 트로트를 하고 싶다는 정민 씨. 8월의 태양만큼이나 뜨거운 그녀의 열정과 도전을 응원한다.
Profile
조정민
1987년 生 국민대학교 피아노과 학사
2014 [Be My Love] 곰탱이 EP 앨범으로 데뷔
2015 제23회 대한민국문화연예대상 성인가요부문 신인상
2016 MBC 가요베스트 대제전 신인상
쎄시봉콘서트 전국투어 게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