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직한 삶의 모습 새겨지고
2008년 온양온천역이 개통되고 역사 하부공간에 풍물오일 장터가 꾸려졌다. 4일, 9일마다 서는 이 풍물오일장은 상설시장이 가까이 있음에도 아산, 온양 인근 사람들은 물론이고 서울을 비롯한 전국 각지에서 시장을 찾는 사람들로 장이 서는
날마다 문전성시를 이룬다. 버스를 타고도, 장항선 기차를 타고도 KTX를 타고도 온양온천역 정류장에 내려 바로 올 수 있는 훌륭한 접근성 때문이기도 하지만, 거기엔 삶의 활력이 넘치고 있기 때문이다. 풍물오일장 상인들은 번듯한 상가도 없다. 대부분 정해진 자리만큼 좌판을 펼쳐놓고 직접 키우고 수확한 채소와 곡식, 과일 등을 판다. 그것도 아니면 즉석에서 구운 김이며, 방금 튀겨낸 어묵, 혹은 직접 손뜨개 한 옷가지 등을 판다. 그렇다고 기성품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 또한 대형마트의 물건들처럼 색이 곱거나 포장이 예쁘지도 않다. 소박하고 투박하다. 본래의 우리 사는 모습과 참 많이 닮아있다. 가공하지 않아서 그래서 더 믿고 무엇이든 사고 싶은 온양온천 풍물오일장. 부모님께서 일 년 내내 소중하게 키운 먹을거리를 자식들에게 내어주듯 시장은 참 정직한 삶의 모습을 한결같이 보여준다. 하여 오늘도 온양온천역 정류장에 사람들이 멈춘다.
국밥 한그릇에 삶의 허기 달래고
추운 날에는 뭐니뭐니해도 뜨끈한 국밥 한 그릇이 제일이다. 밥 한 공기 풍덩 말아 후후 불어가며 먹던 그 국밥. 온양온천 풍물오일장에도 있다. 확 트인 공간이 아닌 제법 구색을 갖춰 테이블도 있고 바람막이 천막도 쳤다. 시장 오가는 사람들 허기진 배를 채워주기에는 충분하고도 넘친다. 비록 시장에서 파는 국밥 한 그릇이지만 주인 오미순 씨의 자존심을 건 국밥이다. 선지부터 쌀까지 아산, 온양지역에서 나는 제일 좋은 재료로 만든다. 기타 등등의 채소며 양념도 마찬가지다. 국밥 하나로 온양온천 풍물오일장을 알리고 싶다는 오미순 씨. 풍물오일장은 오미순 씨 50대 인생길 시작하는 버스의 정류장이 되었다.
나는 엿장수다
사업 실패 이후 전국 내놓으라 하는 시장에서 안 해본 거 없이 다 해봤다는 엿장수 이승호 씨. 그 덕에 매스컴도 많이 탔고 유명인이 되었다. 이제는 나이 60을 훌쩍 넘어 몸 성한 곳이 없지만, 그는 오늘도 가족들을 위해 열심히 가위질을 한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마술과 차력을 하며 시장에 찾아오는 사람들을 즐겁게 했다. 꼭 엿을 사지 않아도 그의 공연을 보며 잠시나마 즐겁고 재미있었으면 좋겠다는 것이 이승호 씨의 생각. 엿장수 이승호 씨에게 시장은 먹고살기 위해 돈을 벌어야 하는 곳이기도 했지만 사람 사이 정을 나누고 싶은 소통의 공간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는 여전히 우스꽝스러운 분장을 하고 가위질을 한다. 비록 이천원짜리 호박엿을 팔고 있지만 그는 이 시장 속에 있는 것이 무척이나 행복하다고 한다.
어묵집 부부의 꿈의 정류장
부부가 나란히 서서 어묵을 만들어 판다. 남편은 빠른 손놀림으로 어묵 반죽에 이런저런 소를 넣어 어묵 모양을 만들어 튀겨내고, 아내는 찾아오는 손님맞이에 정신이 없다. 장이 서는 날이면 어김없이 부부가 새벽 6시에 나와 직접 재료를 준비해 어묵을 만든다. 종류는 대략 14가지. 부부가 함께하니 힘든 줄도 모른다는 남편 백철승 씨. 시장에서 장사하게 해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이 있는 것도 사실. 그래도 추우나 더우나 시장은 가족들의 꿈을 키우는 원천이 되었다고 한다. 때때로 힘들 때도 있지만 그럴 때마다 시장에서 삶의 에너지를 다시 얻곤 한다는 어묵 사장님은 오늘도 꿈의 정류장에서 고소한 어묵을 튀기고 있다.
구수한 청국장 향기에 마음이 풀리고
봄부터 가을까지 애지중지 키운 콩을 겨울에 앞서 메주를 띄우고 또 일정시간이 되면 청국장을 띄운다. 농사짓는 일이, 시장에 나와 장사하는 일이 고되고 힘들지만 이용옥 할머니는 쉬지 않는다고 했다. 나이 먹어 집에서 놀면 뭐하느냐는 할머니는 장날이면 손수 띄운 청국장이며 말린 나물을 아들 차에 싣고 나온다. 농사짓고 청국장 띄우는 과정을 생각하면 이천원, 삼천원이 뭐 비쌀까 싶은데, 자꾸 깎아달라는 손님들의 소리에 때때로 야속한 생각도 든다는 이용옥 할머니. 그래도 인심 좋게 오백원도 깎아주고 또 청국장을 조금 더 퍼주기도 한다. 그런 날은 할머니는 좀 손해를 봤더라도, 다른 누구는 구수한 청국장 한 숟가락 입에 떠 넣으며 행복했을 것이다. 인생의 마지막 정류장이 풍물오일장이 되어버렸다는 이용옥 할머니는 더 많이 사람들이 찾아와 재미나게 돈 좀 벌었으면 좋겠다 하셨다.
인생의 오미를 맛볼 수 있는 시장
35년을 시장에서 살았다. 전국 큰 시장은 다 떠돌아다녔고 계절마다 바꿔가며 팔던 물건도 수십 가지에 이른다. 몇 해 전부터는 여름이면 모기장을 팔고 봄가을겨울에는 오미자며 하수오, 산수유 열매를 팔고 있다. 열매의 효능을 능숙한 솜씨로 읊어 댈 때에는 전문가가 따로 없을 정도다. 온양온천역 풍물오일장의 터줏대감 격인 오세민 씨다. 추운 날 오가는 사람들에게 따뜻한 오미자차를 건네며 기꺼이 말동무도 되어준다. 누구와도 친구가 될 수 있는 곳이 시장이라는 그는 큰돈 못 벌어도 사람 사는 냄새가 나는 시장이 좋다고, 그래서 줄곧 재래시장 한자리를 지켜왔는지도 모른다고 한다. 풍물오일장 정류장이 그에게는 제법 괜찮은 정류장인가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