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당하고 유쾌한 노벨상 꿈나무 고정욱 작가
나를 설명하는 핵심 키워드는 ‘장애’, 그래도 감사하고 행복한 사람
‘서울에 이런 곳이 있었나?’싶을 정도로 울창한 숲을 끼고 언덕 위에 있는 태릉중학교에서 고정욱 작가를 만났다. 이제 막 중학교 1학년이 된 학생들을 대상으로 고 작가가 진로특강을 한다고 하니 무슨 이야기를 전할지 궁금했다. 인생선배이자 작가로서 독서의 중요성을 말하고, 장애인으로서 더불어 사는 삶을 강조하며 마무리하지 않을까, 으레 그 내용을 짐작해봤다.
특강이 진행되고 있는 소극장에 들어서자마자 짐작은 제대로 빗나갔다. 유명인에 빗대어 존댓말보다는 반말로 창의력의 중요성을 설명하는 고 작가의 강연에 학생들은 까르르 웃느라 정신없었다. 간간이 질문이 주어지면 발언 기회를 얻으려 손을 드는 학생도 많았다. 세상만사 다 귀찮을 법도 한 사춘기 청소년을 앞에 두고 이렇게 ‘인터랙티브’한 강연이 가능하다니, 놀랍고도 재미있었다.
“난 일할 때도, 여행 가서도, 낮잠 잘 때도 쉴 새 없이 띵동 ‘입금’을 알리는 문자를 받는다. 작가는 죽고 나서도 몇 년 동안 돈을 버는 줄 알아? 70년. 사후 70년 동안 저작권 수익이 발생하지. 받아 적어! ‘창의성을 길러야 한다’ 오늘 내 특강 듣고도 이다음에 커서 대기업 취업이 꿈이라는 놈들은 혼날 줄 알아! 더 큰 꿈을 키우고 포기하지 않으면 다 이룰 수 있단 말이야.”
분명 호통 섞인 가르침인데 그 안에는 따뜻한 응원이 담겨 있었다. 고 작가의 진심이 학생들에게도 전해졌는지 이날 특강은 모든 순서를 마치고도 질의응답과 기념 촬영만 20분을 훌쩍 넘기며 성황리에 끝났다. 학생들과의 셀카를 마무리한 고 작가와 함께 좀 더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교정으로 자리를 옮겼다.
“강연을 통해 학생들과 만나고 있는데 태릉중학교 친구들과의 인연은 꽤 오래됐죠. 제가지금보다 덜 알려졌을 때 먼저 저를 알아보시고 특강을 제안해준 학교니까 고마운마음으로 해마다 오고 있어요. 아까 엽서 써준 여학생도 작년에 제 특강을 들었던 친구라네요. 일일이 다 기억할 순 없지만 방금처럼 먼저 아는 척하고 반겨주면 참 고마워요.” 그의 말마따나 그는 전국을 돌며 강의를 하고 수많은 사람들과 만난다. 이런저런 매체와의 인터뷰 횟수는 이미 500회가 넘었고, 등단 이후 펴낸 책만 278권이다. 국내 작가로서는 최대 기록인데도 그는 ‘500권 쓰는 게 목표’라며 현재진행형 베스트셀러 작가의 삶을 살고 있다. 1급 지체장애를 갖고 있지만 누구보다 왕성하게 책을 내고 독자들과 소통할 수 있는 고 작가의 원동력은 무엇일까?
“저한테는 이 세상 모든 것이 이야깃거리가 되죠. 오늘처럼 학생들 만나고 돌아가는 길에도 떠오르는 게 있으면 휴대폰 음성메모에 녹음을 해두거나 수첩 한 귀퉁이에 조금이라도 끼적여둡니다. 저 오늘 하루만 강연 세 군데 다녔어요. 힘들지 않느냐 많이들 물으시는데 전혀요. 글 쓰면서 쉬고 힐링하고 정리하는 거죠. 저는 취미가 일이고 일하면서 쉬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100만 부 이상 판매고 올리며 교과서에도 실린 베스트셀러 작가
치열한 경쟁 속에서 성공보다는 실패가 익숙한 세상인데 당당하게 제 자신을 ‘행복한 사람’이라고 소개하는 고정욱 작가. 그러나 그가 소아마비를 앓고 1급 지체장애 판정을 받은 장애인임은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처음 자신의 장애를 인식했을 때 고 작가는 어땠는지 궁금했다. 아픈 이야기가 될 수도 있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장애로 인해 고통 받고 있을 장애인과 그 가족들을 위해서라도 꼭 답을 듣고 싶었다.
“억울했죠. 왜 나는 다른 친구들처럼 평생 두 발로 걷지 못할까, 답 없는 질문을 두고 끊임없이 고민했죠.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았다는 생각마저 들 때, 그래도 난 내가 가진 장애를 인식할 수 있음에 감사하게 되더군요. 지금 이렇게 책을 쓰고 전국의 수많은 독자들을 만나는 사람이 되고 보니, 저에게 장애는 일종의 ‘소명’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알 수 없는 큰 섭리가 저에게 장애를 주고 이와 관련된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게 한다는 믿음이 생겼어요.”
고정욱 작가의 선한 영향력은 책을 통해서 가장 활발하게 퍼지고 있다. 거의 300권에 달하는 저서 중 상당수가 장애에 관한 책이다. 뇌성마비 장애인 형을 둔 동생의 이야기 <아주 특별한 우리 형>, 시각장애인 소녀와 안내견의 아름다운 우정 <안내견 탄실이> 등 장애의 종류도 다양하다. 그중 2003년 5월, MBC <느낌표> ‘책책책 책을 읽읍시다!’ 코너에서 ‘이 달의 도서’로 선정됐던 <가방 들어주는 아이>는 고 작가의 대표작으로 손꼽히며 지금까지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다리가 불편한 영택이의 가방을 들어주게 된 친구 석우의 이야기를 보면 고정욱 작가 본인의 이야기는 아닐까 자연스레 의문을 갖게 된다.
“고등학교 때 1년 동안 제 가방을 들어줬던 친구와의 이야기를 초등학교로 살짝 바꿔서 쓴 책이에요. 제 친구 이름도 ‘문석우’ 였으니 자전소설인 셈이죠. <느낌표> 선정 당시 방송의 힘이 얼마나 큰지 새삼 느꼈답니다. 방송 직후부터 1주일에 5만 부 이상씩 쭉쭉 팔렸고, 인세 기부만 1억 원을 해서 보건복지부장관 표창도 받았어요. 작가로서 참 감사한 일이지요.”
방송에 소개된 책이 아무리 인기가 많다 해도 15년의 세월이 무색할 만큼 여전히 주목받는 건 쉽지 않다. 본인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이야기 자체가 감동적이어서 큰 사랑을 받았던 <가방 들어주는 아이>를 고정욱 작가는 강연을 통해 더 열심히 소개하고 더 많은 이야기를 끌어냈다. 결국 초등국어 교과서에 실린 이 책은 오늘날 100만 부 이상 판매되어 전 국민의 베스트셀러로 자리매김 했다.
절대로 포기하지 않는 마음 하나면 희망은 있다
장애와 관련된 책을 많이 펴낸 고정욱 작가는 새터민을 비롯한 우리 사회의 소외계층을 향해 시선을 더욱 확장하고 있다. 고 작가는 현충일(6.6.)과 한국전쟁일(6.25.) 등이 있는 호국보훈의달 6월을 맞아 역사적 사건을 통해 아직도 어려움을 겪고 있는 우리 주변의 이웃을 돌아봐야 할 때라며, 이들에게도 희망의 메시지를 전했다.
“역사를 관통하며 희생당한 분과 그 가족들이 힘든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역사도 과거에 머물게 하지 말고 어떻게든 밝은 곳을 향해 나아간다면 아픔과 좌절은 그 자리에서 끊어낼 수 있지 않을까요? ‘소외계층’이라는 말도 우리가 그저 만들어낸 말일 뿐이에요. 신체적 장애가 있든 없든, 돈이 많든 적든 누구나 마음 한편에 어느 정도의 외로움과 소외감은 지니고 사는 거잖아요. 절대로 포기하지 않는 것, 저는 이거 하나만 있으면 조금 외롭고 조금 지치더라도 결국은 희망이 있다고 봅니다.”
스마트폰과 SNS가 지배하는 세상이지만 여전히 손편지로 마음을 전하는 어린이 독자와 청소년 팬이 많은 고정욱 작가는 우체국이 있어서 참 고맙고 좋단다.
“젊은 시절부터 출판사에 원고를 보내고, 관련된 자료들을 다시 또 주고받고. 이 모든 게 우체국이 있으니 가능했던 일이에요. 우체국 사보에서 이렇게 인사드릴 수 있어 반갑고 감사합니다! 작가로 살면서 500권의 책을 내고 노벨문학상을 받는 게 제 인생의 꿈이자 목표인데, 우체국에서도 계속 응원해주실 거죠?”
고정욱 작가가 운전하는 차를 배웅하며 어쩌면 그에게 장애는 ‘별거 아닌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봤다. 자라나는 청소년들이 인생 멘토라 부르고, 이 땅의 수많은 장애인이 롤모델로 꼽는 그의 도전을 계속 응원한다.
Profile
현재 삼애복지포럼 총무, 새날도서관 관장, 국제장애인연맹 이사에 재직 중이며 국내 최다 도서 출판 기록으로 기네스북 등재
2010년
• 자랑스러운 경성인상 수상(경성고등학교)
2009년
• 한정동 문학상 수상
2003년
• MBC <느낌표> 책을 읽읍시다 <가방 들어주는 아이> 선정
• 한국장애인연맹 이사
1997년
• 삼애봉사상, 성균문학상 수상
1993년
• 성균관대 국어국문학과 박사과정 졸업
1992년
• 실험소설 <선험>으로 문화일보 신춘문예 당선
1984년
• 성균관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