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문화의 근본인 ‘마당’
깊어가는 겨울의 정취가 만연한 어느 날, 김덕수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와 마주했다. 남사당인이었던 아버지를 따라 5살 때부터 전국 방방곡곡을 돌며 ‘광대’의 인생을 시작한 지 어언 60년째. 김 교수는 그렇게 한평생 ‘마당’에서 뛰놀며 방랑의 예인(藝人)으로 살아왔다.
“오랜 옛날부터 시장통, 포구 등 사람들이 모인 곳이라면 어디든 가리지 않고 북치고 장구치며 관객과 호흡하던 ‘마당놀이’가 우리 대중문화의 시초라고 생각합니다. 평범한 흙밭도 관객들이 둘러앉으면 훌륭한 공연장이 되었던 그 ‘마당’이 우리 문화가 태어난 근본인 것이죠. 그곳에서 나고 자란 제게 우리 신명을 이어가는 일은 숙명과도 같다고 생각해요.”
타악기는 통신수단의 근원
사물놀이, 김덕수 교수의 이름을 들은 사람이라면 흔히 ‘김덕수 사물놀이’를 떠올릴 만큼 그와는 떼려야 뗄 수 없는 단어가 됐다. 김 교수는 1978년 농민들의 민속음악이었던 ‘풍물’을 변형해 우리 가락의 신명을 극대화한 새로운 형태의 무대예술을 만들어내는데, 이것이 바로 우리가 아는 ‘사물놀이’이다. 기존의 풍물음악은 대규모 야외 공연의 형태로, 농경사회의 특성과는 잘 맞아떨어졌으나 현대에 이르러서 이를 계승하고 대중화하기란 쉽지 않았다. 이에 김 교수는 풍물의 핵심 요소이던 꽹과리, 징, 장구, 북 네 가지 타악기로만 이루어진 ‘한국의 콰르텟Quartet’을 만들어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대중들과 만나고자 했다.
“사물놀이를 만들면서 제가 주목한 부분은 ‘리듬’입니다. 전 세계 대중음악과 모든 악기의 근본은 리듬이에요. 특히 타악기는 인류의 가장 기본적인 통신수단의 근원입니다. 언어가 생겨나기 이전부터 적의 침범이나 먼 곳에 어떠한 소식을 알릴 때, 우리는 흔히 무엇을 두드려 소리로 그것을 알리곤 했으니 인류의 시작과 함께 해왔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죠. 이 점에 착안해 리듬을 강조한 타악기들만으로 듣는 이의 이목을 집중시키고자 했어요. 가락 악기가 아닌 타악기로만 이루어졌음에도 전혀 단조롭지 않고 오히려 더 흥이 돋는 이유는 사물놀이가 가진 특유의 리듬감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문화는 변화하는 것
한평생 우리 소리와 함께 살아온 김 교수지만 그의 음악적 지식은 결코 우리 국악에만 치우쳐있지 않다. 동, 서양을 막론하고 음악의 근본에 대해 알고자 했던 그여서일까. 그는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고 최신의 트렌드와 만나는 것에도 적극적이다. 과거 오케스트라 협연부터 ‘일렉트릭 사물놀이 밴드’ 결성, 최근 힙합과의 콜라보레이션까지 그의 음악적 시도에는 거침이 없다.
“해외 곳곳을 돌며 공연하다보니 음악을 보는 시선이 크게 넓어졌어요. 그러면서 ‘문화는 시대와 함께 끊임없이 변화하며 살아가는 것’이라는 생각도 갖게 되었죠. 전통이라고 해서 그 모습 그대로만을 우리 것을 온전히 지키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 대중이 즐겁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모습을 바꿀 줄도 알아야 되는 것이죠.
우리 소리를 알릴 기회가 있어야
김덕수 교수는 사물놀이를 만들어냈던 당시부터 일찍이 우리의 신명을 후손들에게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를 고민해왔다고. 이를 위해 10년 이상 연구한 결과 사물놀이 교육법 이론을 완성했다.
“제가 아직은 한창 무대 위에 설 나이였던 40대 초반부터 일찍 학교에 남아 자리하게 된 것도 바로 이 때문이었죠. 우리의 연주법을 학문적으로 표현하기란 여간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우리의 것을 세계인과 공유하고자 하는 열망이 저를 계속 책상 앞에 앉게 했죠. 그런 덕에 이미 20년 전부터 국내뿐 아니라 해외 각지에 사물놀이를 연구하는 석·박사 과정이 개설되어 우리 전통음악의 전파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대다수의 국민들이 알면 무척 놀라실 것 같네요(웃음).”
김 교수는 최근 MBC 예능프로그램 <마이 리틀 텔레비전>에도 출연, 우리 전통악기가 가진 신명뿐 아니라 특유의 재미난 입담까지 선보이며 시청자들의 큰 호응을 얻었다.
“젊은이들에게 먼저 다가가야 우리 소리를 알릴 수 있지 않겠어요? 저는 TV라는 매체의 힘이 그 어떤 언론보다도 강하다고 생각하는데, 요새 국악이나 우리 전통음악을 소재로 한 TV프로그램은 거의 찾아보기 어렵죠. 그러던 차에 젊은이들과 실시간으로 소통하면서 우리 소리를 들려줄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사실에 무척 즐거웠습니다. 이렇듯 우리의 것을 선보일 기회가 좀 더 다양하게 마련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긍정이 긍정을 부른다
‘행복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라는 말을 항상 새기며 살아간다는 김덕수 교수. 그가 생각하는 행복의 길이란 무엇일까?
“사람 일이 모두 마음먹기에 달렸다고들 하지요. 힘들고 지친 와중에 좋은 것만을 생각하고 긍정적인 마음을 먹기란 결코 쉽지 않죠. 하지만 지친 국민들, 특히 청년들이 좀 더 긍정적인 생각을 갖는데 신명나는 우리 가락이 도움이 된다면 더 바랄게 없습니다.”
삼국시대 거문고를 만든 왕산악, 가야 출신의 위대한 악사 우륵처럼 우리 음악사에 한 획을 긋는 인물로 기억되고 싶다는 사물놀이 명인(名人) 김덕수 교수. 그가 전하는 신명나는 우리 소리와 함께 힘찬 새해를 시작해 보는건 어떨까?
Profile
김덕수
1952년 대전 출생
1957년 남사당 무동(舞童)으로 데뷔
1978년 사물놀이 창시
1998년 조선일보‘대한민국 50년을 빛낸 50인’선정
現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연희과 교수
(사)한국전통연희단체총연합회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