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우편집중국 상시위탁집배원 고연옥
부지런한 천성에 식을 줄 모르는 정열
'마라톤을 하지 않았더라면 경험하지 못했을 일이 한둘이 아닙니다. 마라톤은 철저히 혼자만의 싸움이라 몸보다 마음이 더 힘들 때가 많아요. 대회에 나가보면 어떤 분들은 뛰면서 울기도 하던데, 땀과 눈물을 함께 흘리고 난 다음에 느껴지는 카타르시스는 마라톤을 하는 분들만이 이해할 겁니다.'
대한민국에서 부지런하기로 뒤지지 않는 제주도 주부들이지만 고연옥씨의 삶에 대한 욕심은 유별나다. 결혼 후 20여 년 간을 전업주부로서 두 자녀와 남편을 훌륭하게 뒷바라지한 뒤 이제는 자신의 길을 찾기 위해 새롭게 도전한 것이 고독한 경주, 마라톤. 어언 7년이 넘게 하루 10km 이상씩 달리기를 하며 단련한 체력 덕분에 작년 9월 서귀포에서 열렸던 제주도 민족평화축전에 참가, 여자 하프 부문에서 2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아침마다 새벽잠을 깨우는 고연옥 씨 덕택에 당뇨로 고생하던 남편 조태희씨(제주노형도우체국장, 47세)도 함께 마라톤을 하면서 건강한 삶과 함께 활력 있는 인생을 되찾았다. 마라톤으로 얻은 자신감으로 또 다른 목표를 찾던 고연옥씨는 2001년 5월에는 재택집배원 일을 시작하면서 남편의 일터인 우체국에도 발을 디뎠다. 남편을 비롯해 큰아들은 힘든 일이라며 극구 만류했다.
'재택집배원을 시작한 후 5개월 동안 계속해서 남편이 그만두라고 하더군요. 아무래도 관서장을 하고 있는 남편으로서는 아내가 배달을 하면 여러모로 불편할 거라고 생각했던 모양이에요. 물론 여자로서 체력적으로 힘에 부칠 거라는 염려도 만류의 이유였죠.'
하지만 고연옥씨는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2002년 6월에는 상시위탁집배원으로 제주우편집중국에서 본격적으로 업무를 시작했다. 한번 일을 시작하면 항상 풀 코스를 뛰려는 그녀의 욕심은 아무도 말릴 수가 없었다.
소탈하고 다감한 성격으로 인기
'제주우편집중국은 다른 집중국과 달리 집배조가 편성돼 직접 배달을 하고 있습니다. 도농 복합 도시인 제주시는 배달 거리도 긴 편이고, 대부분의 가정주부들이 직업을 갖고 일을 하고 있어 대리수령인 제도를 적극 활용할 정도로 배달에 어려움이 많습니다. 고연옥씨는 이렇게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남자 직원 못지않게 업무 속도가 빠른 편이고 모든 행사에도 적극적이어서 인기가 높습니다.'
처음에는 함께 일하는 집배원들도 우체국장 '사모님'인지라 어려워했지만, 지금은 누구보다 맡은 업무를 야무지게 처리한다고 김재옹 제주우편집중국장은 귀띔한다. 이제는 여자라는 제약을 벗고 열심히 뛰고 있는 고연옥씨지만, 역시 처음에는 어려운 점이 많았다. 남편보다 먼저 출근해 업무를 준비해야 하는 탓에 아침 준비는 딸의 도움을 받아야만 했고, 재택집배원에서 상시위탁집배원으로 옮기자 배달 구역은 두 배로 늘어났다. 투박하게 들리는 제주도 말투 탓에 외지에서 온 주민들은 퉁명스러운 집배원으로 보기도 하고, 남자 혼자 있는 집에 들어가 등기 우편물에 도장을 받는 일도 쉽지 않았다.
'특히 바람이 많은 지역이라 우편물을 잔뜩 싣고 오토바이를 타면 넘어질 위험이 많습니다. 남편보다 늦게 퇴근해서 돌아가는 길은 무척이나 고되고 힘들죠. 하지만 주민들이 여자 분이 배달을 하시느냐며 부러워하기도 합니다.'
상시위탁집배원을 하면서 남편의 일을 더욱 이해하게 됐으며, 많이 걷고 움직이는 배달 일이 마라톤만큼이나 좋다는 고연옥씨.
'적은 나이는 아니지만 일을 할 수 있는 한 계속 배달 일을 하고 싶어요. 마라톤은 인생하고 똑같아요. 수많은 고비가 있지만 그 순간을 견디고 완주하면 삶의 활력소가 되지요. 마라톤을 계속 하면서 더 많은 운동에 도전할 생각이고요.'
제주도의 수려한 풍광을 닮은 고연옥씨의 미소만큼이나 그녀의 다짐은 아름다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