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력의 과학
이제 또다시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해를 맞이하는 시기가 왔다. 새해를 맞이하면 우선 새 달력을 준비하고, 새해에 해야 할 중요한 일들을 달력에 표시해 놓기도 한다. 달력하면 이렇게 12달을 각각 구분하여 여러 장의 종이에 인쇄해 놓아 묶어 놓은 것을 연상한다. 단순히 매일의 날짜를 나열해 놓고 어떤 날짜 구석에는 매년 반복되는 국경일이나 특별한 의미를 가진 날들을 표시해 놓은 것쯤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달력에 포함된 의미를 파악하면 우리 인류의 문명이 시작되면서 이뤄 놓은 과학성이 그 안에 들어있음을 알 수 있다.
인류의 문명이 시작되면서 가장 먼저 등장한 과학적 사고가 천체 움직임의 규칙성을 알아낸 일이다. 그 중 하나가 천체 운행을 관측해 시간의 흐름을 결정할 수 있는 것이다. 우선 태양의 움직임으로 하루를 정하고, 달의 모양이 주기적으로 변하는 것으로 한 달을 정하고, 계절의 변화 주기를 이용해 일년을 정했다. 이렇게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천문 현상의 원리를 밝혀 생활에 편리하도록 만들어낸 것이 역법 또는 달력이다.
인류 초기의 어느 문명권이든지 도시나 국가를 이루고 있던 당시의 경제적 기반은 농업이었다. 농업은 일년을 주기로 바뀌는 계절 변화를 정확하게 알고 있어야 한다. 즉, 농작물의 파종 시기, 성장 시기, 추수 시기 등을 정확히 예측하기 위해서는 천체의 운행을 이용한 달력이 필요했다.
별자리와 태양의 운행
달력이 갖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계절의 변화를 정확히 예측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계절이 변화하는 주기를 알아야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비교적 매년 사계절이 뚜렷하게 반복돼 나타난다. 그러나 더위와 추위가 오고 가는 것으로 계절을 정확히 예측할 수는 없다. 때로는 더위와 추위가 예상보다 일찍 오거나 늦게 오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기온의 변화를 가지고는 충분하지 못하다.
반복되는 계절 변화의 주기를 파악하는 것은 단순하지 않다. 이것은 낮에는 태양의 운행을 관측해야 하고 밤에는 별자리의 움직임을 파악해야만 알 수 있다. 즉, 태양의 움직임과 별자리의 움직임을 정확히 관측해야만 계절의 변화도 정확하게 읽을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계절과 시각에 따라 보이는 별자리의 위치가 변하는 것을 알고 있다. 별자리의 모양은 변하지 않지만, 보이는 시각은 계절에 따라 변한다. 하늘에 있는 모든 별들과 별자리의 위치는 한 자리에 고정돼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태양은 이 별자리들 위를 운행하고 있다. 그 때문에 별자리가 뜨고 지는 시각이 계절에 따라 변한다. 특별히 태양이 별자리 위를 운행하는 경로를 황도(黃道) 라고 한다. 물론 우리는 이것이 태양이 실제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지구가 태양 주위를 공전하고 있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리고 지구의 적도를 하늘에 연장하면 하늘에 적도를 표시할 수 있다. 이 하늘의 적도와 황도는 두 점에서 만나는데, 그 중 하나 가 춘분점(春分點)이고 다른 하나가 추분점(秋分點)이다. 그 사이의 중간 위치에는 각각 하지점(夏至點)과 동지점 (冬至點)이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일년이라는 것은 태양이 황도상을 운행할 때 춘분점에서 출발해 다시 춘분점의 위치에 되돌아 오는 데 걸리는 시간을 의미한다. 이 기간은 365일 5시간 48분 46초로서, 계절이 변하는 정확한 주기를 의미한다. 따라서 달력의 날짜는 태양이 황도상을 운행할 때 어느 위치에 오느냐를 의미한다. 즉, 태양이 춘분점에 오는 날이 춘분 날이 되고 추분점에 오는 날이 추분 날이 되는 셈이다. 문제는 일년 동안의 날짜를 어떻게 배열해 항상 춘분 날이 같은 날짜에 오도록 하게 하느냐이다.
낮에는 별자리를 볼 수 없기 때문에 태양이 황도상에 있는 위치를 파악할 수 없다. 간접적인 방법을 이용한다. 태양이 남중했을 때부터 꼭 12시간이 지나면 정확하게 태양 반대 방향의 위치가 남중한다. 따라서 어느 별자리가 몇 시에 남중하는가 하는 것은 태양이 황도상 어느 위치에 있는지 간단히 알 수 있는 근거가 된다. 이를 이용하면 한 날짜가 일년 중 어디에 해당되느냐를 손쉽게 결정할 수 있다.
태양력의 어제와 오늘
태양력은 고대 이집트에서 처음으로 사용됐다. 이집트의 문명은 나일강과 긴밀한 관련성을 갖고 있다. 매년 일 년에 한번씩 나일강이 범람하게 된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나일강의 범람 시기를 결정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국가적인 관심사였다. 이 시기를 밤하늘에 있는 별을 이용해 결정할 수 있었다. 하늘에 있는 별들 중에서 고대 이집트인들이 가장 신성시하던 별이 큰개자리에 있는 시리우스(천랑성)였다. 이 시리우스가 태양이 동쪽 지평선에 떠오르기 직전에 보일 때가 되면 어김없이 나일강이 범람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지금의 달력으로 말하면 6월말에서 7월초에 해당된다. 이러한 현상이 반복되는 주기는 태양이 천구상의 한 위치에서 다시 그 위치에 되돌아오는 기간으로 1태양년의 길이와 거의 같다.
이렇게 일찍부터 발달한 태양력을 고대 로마의 지도자인 카이자르(Julius Caesar, 100~44 BC)는 집권하자마자 종래의 로마력을 개정할 때 이를 받아들였다. 그 전에 사용하던 고대 로마력은 윤달 넣는 방법을 정치적인 목적으로 악용해 달력의 날 수가 3달이나 틀리는 경우도 있었기 때문이다. 이를 율리어스력(Julius calendar)이라 한다. 이렇게 개정된 역을 기원전 46년 1월 1일부터 시행했다. 이 역은 그 동안 문제가 돼 왔던 1태양년의 길이를 좀 더 실제 값에 근접한 365.25일로 정했다. 그 적용 방법은 평년을 365일로 하고, 윤년을 4년마다 두어 366일로 했다. 이때 춘분 날은 일년의 시작으로 보고, 고대 누마(Numa)왕 때 지켰던 춘분 날을 3월 23일로 정했다.
율리우스력의 길이인 365.25일과 1태양년의 실제 길이인 365.2422일과는 그 차이가 약 0.0078일, 즉 11분 14초이다. 이는 128년이 지날 적마다 1일의 차이가 생기는 원인이 된다. 실제로 서기 325년에 니케아 종교회의를 개최하던 당시는 춘분 날이 3월 21일로 옮겨가게 되었다. 그 후 1582년 로마 교황 그레고리 13세(Gregory XIII, 재위 1572~1585)의 시대에는 춘분 날이 3월 11일로 옮겨가게 됐다.
부활절은 기독교 행사 중 가장 중요한 의미를 가진 날이다. 이 부활절은 서기 325년에 개최된 니케아 종교회의에서 기독교를 국교로 삼는다는 칙령이 반포되면서 제정됐다. 부활절은 어느 특정한 날짜로 고정해 정한 것이 아니다. 즉, 부활절은 춘분 날이 지난 후, 첫 번째 오는 음력 보름날이 지나서 오는 첫 번째 오는 일요일로 정한다. 공교롭게도 첫 번째의 보름날이 일요일과 일치하면 그 다음 일요일이 부활절이 된다. 예를 들어 2003년의 경우 춘분 날이 3월 21일이다. 그 후 첫 번째 오는 음력 보름날은 4 월 16일이므로 그 다음 일요일인 4월 20일이 부활절이다.
부활절 제정 당시의 춘분 날은 3월 21일이었는데, 16세기 중엽에는 춘분 날이 3월 11일로 앞당겨졌다. 이 때문에 제정 당시의 부활절이 대부분 3월말이나 4월초에 오는데, 당시는 3월 중순이나 3월 하순으로 옮겨졌다. 이를 바로잡기 위해 그레고리 13세는 개력위원회를 조직하고, 곧이어 개력을 단행하게 됐다. 이 역을 그레고리력 (Gregory calendar)이라 한다.
이 그레고리력은 1582년부터 시행했다. 이는 춘분 날을 3월 21일로 다시 고정시키기 위해 1582년 10월 4일 목요일의 다음날을 10월 15일 금요일로 해 역에서 10일을 끊어내어 사용했다. 윤년은 다음의 세 가지 조건을 두어 결정했다. 서기 연도가 4로 나눠지는 해는 윤년으로 정하고, 그 중에서 100으로도 나눠지는 해는 평년, 다시 400으로도 나눠지는 해는 윤년으로 해 쓰기로 한 것이다. 이러한 원칙을 둬 윤년을 정하면 400년간 97회의 윤년을 두게 되며, 1년의 길이는 365.2425일이 되는 셈이다.
달력과 우리 생활
전 세계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태양력은 춘분 날이 항상 3월 21일에 오도록 역일을 맞춘 것이다. 어떻게 보면 가장 단순하고 만들기 쉬운 달력 체계를 갖고 있다. 태양력은 앞으로 몇 백년 뒤의 달력도 쉽게 만들 수 있는 특성을 갖고 있다. 태양력 외에 각 문화권에 따라 고유한 달력을 만들어 오랫동안 사용하다가 사라진 달력도 많다. 예를 들어 고대 바빌로니아력, 유대력, 고대 인도력, 고대 마야력 등 다양하다. 심지어는 1789년에 일어난 프랑스 대혁명 후에 프랑스 혁명 달력을 만들려는 시도가 있었으나 시행되지 못하고 계획으로만 끝났다.
태양력 외에 현재도 사용하고 있는 달력으로는 이슬람력과 우리나라에서 사용하고 있는 태음력이 있다. 이슬람력은 이집트·인도·파키스탄·아프가니스탄 등 회교를 믿는 나라에서 주로 사용하고 있는 순태음력을 바탕으로 만들었다. 회교국에서는 종교적인 모든 행사에 이 달력을 사용한다.
그리고 우리나라가 고대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사용하고 있는 것이 태음력이다. 이를 흔히 태음태양력 또는 간단히 음력이라고 한다. 음력이라 하면 흔히 미신을 바탕으로 한 비과학적인 방법으로 만든 달력이라고 잘못 알고 있다. 음력은 달의 운행과 태양의 운행을 동시에 고려해 만든 달력이다. 그 달력 체계를 보면 대단히 과학적 계산을 필요로 한다. 달의 운행은 음력 초하루와 음력 달의 대소를 결정하고, 태양의 운행은 24절기 시각과 음력 달의 명칭을 정한다.
더구나 음력은 옛날 우리의 실생활에 대단히 편리하도록 만든 달력이다. 매일 볼 수 있는 달의 모양을 보면 대략 그 날의 날짜를 알 수 있다. 또한 달은 모양에 따라 뜨고 지는 시각을 예측할 수 있기 때문에 밤중에 활동하는 데 매우 편리하다. 또한 바닷가에서는 매일 반복되는 간 조와 만조가 합삭 일이나 망월일 때 가장 크게 나타나는 사리 현상도 쉽게 예측할 수 있어 편리하다. 그리고 음력에 나타나는 절기 일자를 보면 계절의 변화도 알 수 있어 농사를 짓는 데 대단히 편리하게 돼 있다. 이렇게 음력은 우리 생활과 관습에 밀접한 관련성을 갖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