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겨진 역사 이야기
민족의 단합을 위한 노력
우리 민족이 흰색을 유달리 좋아했던 것은 사실이다. 기원전 1세기 경 부여를 방문한 중국인들이나 19세기 말 우리나라를 찾은 외국인들은 다 이 나라 사람들은 흰옷 입기를 좋아한다는 기록을 남겼다.
'수천년 동안 이어진 흰옷에 대한 사랑 그것은 우리 민족의 고결함, 담백함, 순수함에서 비롯한 것이 아닐까?” 그럴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런 결론은 너무 성급하다. 부여의 기록을 보자. '이 나라의 옷은 흰빛을 숭상한다. 흰 포목으로 도포를 만들어 입는데, 소매가 몹시 넓고 바지도 희게 입는다.” 소매가 넓은 옷은 일하지 않는 사람 귀족의 옷이다. 때묻지 않은 하얀옷은 그들의 고귀한 신분을 상징한다. 백색의 고결함이다.
부여보다 조금 위쪽의 초원지대에 살았던 유목민들도 이 백색의 고결함을 사랑했던 모양이다. 그래서 몽고족이 세운 원제국에서는 정월 초하루가 되면 황제 이하 모든고관이 백마를 타고 흰색으로 정장을 하고 새해를 맞았다. 그광경은 아주 장관이어서 마르코폴로의 〈동방견문록〉에도 인상 깊게 설명돼 있다. 다만 한 가지, 백마가 부족했기 때문에 백마 비슷한 말은 모조리 타고나와서 백마라고 우겨야 하는것이 애로사항이었다고 한다.
대몽 항쟁 이후 고려는 원황실과 사돈을 맺었다. 이때 고려와 원사이에 많은 문화교류가 있었는데, 이 일로 고려에서 흰옷이 더욱 유행하게 됐다. 그러자 고려 정부는 흰옷 금지령을 내렸댜 오행사상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동쪽에 있어 목(木)의 방위이므로 청색을 기본색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것은 나리를· 대표하는 색을 청색으로 하자는 뜻도 되고 지배층의 일상복이 청색이어야 한다는 뜻도 된다. 세조 때의 문신 양성지는 흰옷을 금지하고 국민의 옷 색을 신분 별로 구분하자고 건의하기도 했다.
백의민족이란 표현이 조금 쑥스럽게 백의 착용을 금지하는 명령은 일과성으로 끝나지 않고 〈경국대전〉에도 엄연히 수록됐다. 단 가난한 백성들이 입는 누르끼리한 무명옷, 가난해서 채색할 수도 없고 표백해 보았자 하얗게 유지할 수도 없는 그들의 옷은 금령의 대상이 아니었다.
김홍도의 〈월야선유도(月夜船遊圖)〉
하지만 금령에도 불구하고 양반들은 흰옷을 좋아해 조선 후기 까지 색깔 논쟁이 몇 차례 발생했다. 그러면 조선 시대 사람들은 어느 정도로 흰옷을 입었을까? 정말로 그들의 복장은 백색 일변도 였을까? 조선시대의 풍속회를: 보면 그 정도는 아니다. 평양감사의 대동강 뱃놀이를 그린 김홍도의 〈월야선유도(月夜船游圖)〉를 보면 흰색 도포를 입은 사람도 있지만 하늘색이나 핑크빛, 황색 도포(비단옷인 듯함)를 걸친 양반들이 더 많다. 정조의 능행을 보러 나온 연변의 사람들은 많은 사람들이 잿빛 혹은 연한 황색의 두루마기를 걸치고 있다. 그 외의 풍속화에서도 회색이나 옅은 청색 도포가 많고, 흰색 도포를 입은 사람은 많아야 3분의 1정도이다. 그러나 그 두루마리 안에 입은 바지, 저고리들은 거의 예외 없이 흰색이다. 그러므로 일상에서, 집안에서 그리고 날씨가 더울수록 거리에는 더더욱 백색이 많아졌을 것 같다.
흰옷은 고결함의 상징
양반들이 일상에서 이처럼 흰색을 좋아한 이유는 칙칙한 채색 옷 보다는 깨끗한 흰색이 그들의 고결함을 상징하기에 적절하고 시각적으로도 뛰어났기 때문일 것이다. 염료도 부족한데다가 무명이나 모시로는 비단처럼 화려한 색채감을 구현하기가 쉽지 않았을 테니까.
가난한 농민들은 물들이기도 쉽지 않았겠지만, 조선 시대는 금령도 많아서 회색도 안되고 노란색도 자색도 금지였다. 특히 평민은 비단옷을 입어도 안되고 채색 옷도 안됐다. 그러니 자연 그대로 깨끗하게 빨아서나 입는 것이 제일 속 편했을 것 같다. 더욱이 흰색은 고결한 양반들의 색이었으니 말이다.
하여간 우리 민족이 예나 지금이나 흰색을 좋아하고 백의민족이란 소리를 들을 만큼 흰옷을 좋아했던 것도 사실인 듯하다. 그러나 그 원인을 추상적이고 막연한, 혹은 집단적인 정서에서 찾아서는 안 된다. 역사적 현상은 싫든 좋든 현실 위에 있으며, 그것을 찾고 받아들일 때 우리의 혜안과 지혜가 자라난다.
아울러 흰옷이 채색 옷과 대립하는 개념이 아니라는 점을 밝히고 싶다. 간혹 우리 민족의 백색의 전통이 오늘날 외래의 채색 문화에 의해 상실돼 버렸다는 식으로 설명하는 글을 보는데, 그것은 정말로 넌센스이다. 우리 선조들은 채색 옷의 화려함 속에서도 백색의 고결함을 찾아내고 사랑할 줄 알았다. 왜 그 중 하나를 버려야 할까? 오늘날 과학기술의 발달로 색채의 세계는 훨씬 현란해졌다. 이런 시대에 유채색의 색감과 무채색의 감성을 함께 발전시켜 나갈 수 있고, 그것을 민족적 역량으로 확산시킬 수 있다면… 그것이 전통이 우리에게 남겨준 진정한 유산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