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을 통해 미디어를 비판하는 미하일 하네케 감독
2001년 칸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대상과 남녀 주연상을 차지한 프랑스 영화 〈피아니스트〉의 원작자와 감독은 발표하는 작품마다 논쟁을 불러일으 킨다는 점에서 서로 닮았다. 원작자 엘프리데 옐리네크는 과격한 주제와 표현으로 독일 문단을 흔드는 좌파 여성 작가이고, 감독 미하일 하네케는 폭력을 통해 미디어를 비판하는 영화들을 만들면서 찬사와 비난을 함께 받았다.
40대 독신녀 에리카(이자벨 위페르)는 레슨 시간에는 제자의 사소한 실수를 용납하지 않을 만큼 차갑고 도도하지만, 수업이 끝난 뒤 그녀의 성 본능은 야릇하게 출렁거린다. 섹스숍에 들러 포르노를 보며 휴지통을 뒤지는가 하면, 자동차 극장을 어슬렁거리며 젊은 연인들의 정사를 훔쳐본다. 심지어는 면도칼로 자신의 성기에 상처를 내고 피를 흘리기까지 한다.
어느날 에리카의 연주에 빠져든 남학생 클레메(브누아 마지엘)가 그녀에게 사랑을 고백한다. 매몰차게 클 레메를 거부하던 에리카가 조심스럽게 마음을 연다. 하지만 클레메는 그녀가 요구하는 사디즘과 마조히즘의 유희를 받아들이기가 고통스럽다. 지나칠 정도로 엄격하고 냉혹한 에리카가 오르가즘에 매달리는 과정이 아프고도 쓸쓸하다.
에리카 모녀를 눈여겨봐야 한다. 둘은 사소한 일로도 서로 따귀를 올려붙이고 싸우다가 금방 눈물을 글썽 이며 화해한다. 어머니와 한 침대를 쓰는 에리카는 어머니에게 여전히 아이처럼 취급을 받는다. 원작과 다르게 영화는 정신병이 심해져 시력을 잃고 죽어간 아버지 이야기를 생략했지만, 어머니와 딸이 상대방에게 남성처럼 다가가는 장면은 프로이트의 심리분석적인 틀로 해석할 수 있을 터이다. 슈베르트의 〈피아노 소나타 제10번〉을 주제곡으로 사용한 이 영화는 뒤집고 비틀기를 반복하면서 관객의 예측을 차단하고 있다. 특히 마지막 장면의 뒤집기는 멜로 드라마의 공식에 익숙해진 관객들의 뒤통수를 친다. 얼굴 근육의 떨림과 손가락의 미세한 움직임으로 억눌린 욕망과 불완전한 성을 표현하는 이자벨 위페르의 연기는 완벽에 가깝다.
시대의 불안정과 개인의 무의식적 충동을 다루는 로만 폴란스키 감독
로만 폴란스키는 시대의 불안정과 개인의 무의식적 충동을 즐겨 다루는 폴란드 감독이다. 그에게 2002년 칸 영화제 그랑프리(황금종려상)를 안겨 준 〈피아니스트〉는 유태계 폴란드인 이자 유명한 피아니스트 블라디미르 스필만(1911~2000)의 회고록을 바탕으로 만들었지만, 감독 유년기의 공포와 악몽을 새겨 넣은 작품이기도 하다. 8살 때 부모와 나치의 집단수 용소에 억류된 폴란스키 감독은 가스 실에서 어머니를 잃었다. 1939년 폴란드의 바르샤바. 스필만(애드리언 브로디)이 연주하는 쇼팽의 〈야상곡〉이 끝나기도 전에 방송국이 독일군의 폭격을 당한다. 가족들은 모두 수용소로 끌려가고 스필만 혼자 가까스로 목숨을 건지게 된 다. 히틀러의 가장 큰 죄악은 생명을 하찮은 물건처럼 여겼다는 점일 것이다. 나치장교가 줄을 선 유대인들 가운데 아무나 골라내어 총으로 쏴 죽이는 등 절망을 넘어 분노로 떨게 만드는 장면이 많다.
당시 바르샤바 게토(유대인 강제 거주지)의 유대인은 탱크와 화력을 앞세운 독일군에 저항했다. 폴란스키 감독은 그 상황을 흥분하지 않고 담담하게 재현한다. 허구가 아닌 사실, 그 장소 그 시간을 다큐멘터리 찍 듯 찍어 나간다. 흔한 컴퓨터그래픽 하나 사용하지도 않을 뿐더러 카메 라로 잔재주를 부리지도 않는다. 감 독의 냉정한 연출은 사실적인 진실이 형식의 우수성을 초월한다고 믿는 태도에서 나온 것이다.
폐허가 된 건물에 숨어든 스필만에게는 고독과 두려움만 남는다. 어둡고 습기찬 곳에서 '짐승의 시간'을 보내는 그가 상상 속에서 피아노를 치는 모습이 가슴을 저민다. 미쳐버리거나 굶어 죽을 수밖에 없는 스필만이 독일군 장교에게 발각된다. 장교는 자신이 피아니스트라는 이상한 사내의 얘기에 코웃음치며 건반을 들이댄다. 스필만은 추위와 허기로 곱은 손을 비비며 지상에서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연주를 시작한다.
'앞으로도 서정시가 쓰여질 수 있을 것인가?' 서양의 어느 지성인이 아우슈비츠에서 학살된 6백만 유대인의 참혹상을 보면서 탄식한 말이다. 당시 유럽에 살던 유대인의 80% 가 처참하게 죽어갔다. 이 영화는 한 피아니스트의 눈물겨운 생존 실화이자 독재 집단의 야만과 광기에 희생된 영혼들에 바치는 진혼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