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광주우체국 김규남씨
요즘 신문에나 방송을 보면 참으로 우리를 경악케 하는 사건이 많다. 옆집 노인이 사망한 지 몇 달이. 되도록 몰랐다고 하는 이야기나, 왕따 당하는 자녀 때문에 사설 경호원을 고용했다거나, 심지어 자식이 부모를 또는 부모가 자식을 살해했다는 등의 일그러진 사회상을 너무 많이 접한다. 그래서 어떤 이는 신문을 보기가 싫다고 하고, 아예 세상을 등지고 싶다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아무리 혹한의 겨울이라도 새싹을 돋게 하는 훈풍은 있게 마련이다. 평생 어렵게 번 돈을 학교 장학금으로 선뜻 내놓은 할머니, 자신보다 더 어려운 이웃을 위해 김장을 담근 환경미화원도 있다. 그런 사람들이 있기에 그래도 우리사회는 이직 희망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북광주우체국(국장: 전동호) 집배원으로 근무하는 김규남씨(41세)도 그런 사람이다. 우편물을 배달해온 지역의 노인들을 찾아 박봉을 털어 경로잔치를 베푼 그의 이야기는 추운 겨울날 입김과도 같은 따스함을 우리에게 전해 준다.
시랑으로 대해 준 노인들에게 보답하고 싶어
1985부터 광주 망월동 · 장운동 · 운정동 등 관내 6개 마을에 우편물을 배달해온 김규남씨는 200여만원의 사비를 들여 작년 11월 9일부터 11일까지 월산 등 6개 경로당을 찾아 각각 돼지 1마리와 주류 ・ 음료수 등을 노인들에게 대접해 화제에 올랐다.
“'이 지역은 여느 군 단위 시골마을처럼 주민들 거의 대부분이 노인들이고 그래서 그런지 넉넉한 인심과 정을 품고 사는 마을입니다. 그동안 제가 찾아갈 때마다 저를 마치 자식처럼 대해 준 어르신들에게 제대로 보답 한 번하지 못해 아쉬움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그분들에게 보답하는 마음에서 이런 조그마한 자리를 마련하게 됐습니다.”
1985년부터 16년간 이 지역에 우편물을 배달해온 그는 한 때 집배원이란 직업에 회의를 품기도 했었다. 그러나 이 지역 주민들의 훈훈한 인심에 녹아 지금은 누구보다 집배원에 긍지를 가지고 열심히 일하고 있다. 원래 광산군 소속이었던 이 지역은 도시광역화에 의해 광주광역시로 편입되었지만, 시골의 인심을 고스란히 간직한 곳이다. 그래서 이런 따스한 온정에 힘입어 고된 일도 척척 신명나게 할 수 있게 된 그는 어느 날 이토록 고맙게 대해준 그분들을 위해 조금이나마 보답하는 뜻에서 경로잔치를 생각했다고 한다.
그러나 자녀 양육에도 벅찬 월급쟁이로서는 갑작스레 큰 돈이 있을 리 없다. 그래서 이를 준비하기 위해 3년간 적금을 들기로 했는데, 다행히 아내도 이 일에 흔쾌히 동조하고 격려해 주었다. 현재 김규남씨 부인은 우체국 보험관리사로 활동중이다.
봉사도 사랑처럼 용기 있는 사람만이 할 수 있어
“사실 제가 한 일은 크게 칭찬받을 만한 일은 아니에요. 제가 특별히 봉사 정신이 투철해서 한 것은 아니니까요. 다만 저를 아들처럼 대해 주신 그분들이 고마워 음식 한 번 대접해 드린 것뿐이죠. 오히려 그분들로부터 받은 사랑에 비하면 보잘 것 없습니다. 그분들의 사랑이 있었기에 제가 집배원으로서 임무에 충실할 수 있었으니까요.”
그는 이렇게 겸손하게 말하지만 요즘처럼 각박한 세상에 자기 돈 들여 남에게 베푼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맞는 얘기입니다. 이렇게 힘들고 바쁜 생활 중에 자신이나 가족들 챙기기도 벅찬데 남까지 생각한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주변에 봉사해 보고 싶다는 사람들은 더러 있어도 그것을 실행에 옮기는 사람은 많지 않죠. 그래서 봉사도 사랑과 마찬가지로 옹기 있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김규남씨처럼 말이죠.”
최종구 북광주우체국 노조 지부장의 말이다.
어릴 적 빨간 자전거를 몰고 다니는 집배원이 좋아 커서 자신도 집배원이 되었다는 김규남씨. 이제는 자전거 대신 이륜차를 몰고 다니면서 그는 젊은 이들이 모두 빠져나가 텅 빈 마을을 외롭게 지키는 노인들에게 벗이자 아들 노릇을 해오고 있다. 동네 애경사에 빠지지 않고 찾아 뵙고, 명절이면 과일 한 봉지라도 전해드리곤 했다. 이렇게 정성을 다하자 주민들의 표창 상신으로 1998년 8월 광주시장상을 수상했고, 같은 해 10월에는 정보통신부 모범공무원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런 상을 수상하고도 그는 별로 기뻐하지 않았다. 무릇 봉사란 남 모르게 하는 것이 참된 봉사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에 노인들을 위한 경로잔치로 인해 지역 언론으로부터 화제의 인물로 주목받았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가 남 모르게 하다가 들킨 또 하나의 일이 있다. 운정동에 거주하는 소녀가장 김보라양과 자매결연을 맺고 작년 11월부터 25개월 동안 매달 5만원씩 생활비를 지원해온 것이다.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려던 그의 바람은 이루어지지 못했지만, 이왕 알려질 바에야 많이 알려졌으면 좋겠다고 그는 말한다. 이런 일을 많은 사람들이 보고 불우한 이웃을 돕는 사람들이 많이 생겨났으면 좋겠다는 뜻에서이다. 신문을 보기 싫어하고 세상을 등지려는 사람들에게 따스한 정을 함께 나누고 희망을 건네줄 수 있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