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러시아 시장
일상생활 속에서 우리는 어떤 현상이나 사물에 대해 잘못된 이해로 현실과 괴리되게 설명하고 있을 때 인용하는 속담 중에 장님이 코끼리를 만지면서 논하는 이야기를 자주 인용한다. 국제화·세계화·정보화를 국가의 기틀로 생각하는 이 시점에서 장님 코끼리 만지기와 같은 사례에 러시아에 대한 우리의 관념도 해당된다고 보인다. 여기서 짧은 글이지만 우리의 잘못된 편견을 살펴보고 러시아를 바로 인식할 수 있는 내용과 우리의 러시아 시장 진출 자세를 살펴보았다.
선입견과 문제점
한국인이 가지고 있는 러시아에 대한 일반적인 느낌은 아직도 러시아의 많은 부분을 오해하고 있으며, 너무 부정적인 측면으로만 치우쳐 인식하고 있거나 옛적 호랑 담배 피던 시절₁ 같은 사실 머릿속에 담아 놓고 있어 어떤 측면에서는 안타깝기도 하다. 물론 부정적인 측면이 사실무근은 아니지만 전체가 무시된 채 일부 잘못된 내용을 지나치게 강조하다 보면 여러 가지 오해와 부작용, 특히 새로운 시장 진출 측면에서 우리에게는 '득보다는 실'이 뒤따를 수 있다는데 문제의 소지가 있다.
선입견의 원인
그러면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것일까. 생각해보면 첫째, 한국이 근대화를 거쳐 21세기 지식정보 사회로 이어지는 시공간에서 우리는 거의 모든 부문(정치·경제·사회·문화·과학기술·종교·학술 등)에서 절대적으로 미국과 일본의 영향을 받아 왔으며 그들의 틀에 맞추어 짜여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즉, 우리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세계가 있으며 그들 나름대로의 문화·전통·역사 등 이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고 그저 우리 방식의 잣대로만 생각하는 것이다. 두번째, 우리를 비롯하여 서방의 매스컴들은 앞을 다투어 러시아의 부패와 부정적인 모습만을 보도하기에 급급하여 러시아 본래의 깊고 순수한 참된 모습은 외면하기가 일쑤였던 것이 지금의 현실이며, 국내에서도 러시아를 소개하는 행사가 전파 매체를 타는 경우는 극히 드문 실정이다. 세번째, 미국을 비롯한 서방국가에서는 신생 러시아연방이 새로운 강대국으로 부상하기를 원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₂ 따라서 국제무대에서 가능하면 러시아를 배제하려고 하며 정치·경제적으로 러시아를 그들에게 종속되도록 하고 있다.
급변하는 러시아와 잠재력
러시아는 지금도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것보다 모든 상황이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고 있다. 특히 최근 몇 년간 러시아 사회는 알아 볼 수 없을 만큼 변하고 있어 그들의 모습을 일관되게 전달하기가 어렵다. 따라서 러시아를 방문하는 많은 한국 관광객이나 비즈니스맨들이 국내에서만 보고 들은 단편적이고 부분적인 정보(사건·사고 중심)와 함께 부정적인 선입견을 가지고 러시아 사회와 문화를 접하게 됨에 따라 그들을 잘못 이해하게 되고 이로 말미암아 러시아인의 자존심과 이들 고유의 정서를 건드리는 등 우를 범하곤 하여 그들과 본의 아니게 벽을 쌓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러시아에는 동양과 서양을 포괄하는 깊이와 잠재력이 있으며 엄청난 문화유산과 함께 예술의 정서, 문학, 음악 등 운치가 잠자고 있는 나라이다. 그러나 러시아인과 러시아란 나라를 어느 정도 이해하기란 그리 쉽지가 않으며 많은 세월과 노력을 필요로 한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아직 러시아는 시장경제체제로의 이행을 거치는 과도기적 상황에 처해 있으며 많은 부문에서 체제 적응이 되지 못하여 안정되어 있지 못하고 격동의 상태에 처해 있다. 하지만 그들의 기초과학기술과 학문은 아주 높은 수준이며 지금 그들은 이것을 응용 및 실용기술로 전환하고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와 같은 미완성의 기술을 우리 것으로 확보, 활용하고 개발할 수 있는 좋은 시장이 바로 이웃 나라인 러시아가 아닌지 모르겠다.
그러나 대다수 사람들이 러시아에 대한 투자는 자칫하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식이라는 선입견을 갖고 있다. 그만큼 위험성이 많다는 뜻이며 실제로 제반 여건이 어려운 것만은 사실이다. 그러나 위험성이 많은 만큼 가능성도 많다고 본다.
러시아의 시장경제 이행
현재 러시아의 경제 구조는 하루하루 급속도로 큰 변화를 맞고 있다. 개방과 시장경제 도입 초기에는 수요가 공급을 창출한다는 ‘세이의 법칙' 이 통하던 초기 자본주의시대의 경제 상황을 보였으나 이미 그 단계를 넘어 지금은 소비자가 지배하는 시장'으로 변모하였으며 치열한 마케팅 환경 개척과 연결 마케팅의 시대로 돌입된 지 수년이 지났다.
다가올 3월 26일 대통령선거 이후 강력한 지도자가 탄생하여 정치·경제·사회 질서를 안정시켜 나간다면 경제 성장 속도는 예상외로 빠르리라 보며 현재 러시아인은 강력한 인물을 원하고 있다. 그들이 원하는 미래의 러시아는 강력한 러시아의 재건, 러시아연방 해체 방지, 시장경제 완수, 인권 존중이 되는 국가로 태어나기를 꿈꾸고 있다. 이러한 사실들을 통해 러시아의 방대한 잠재력과 가능성을 고려해 보면 가까운 장래에 중요한 시장으로 급부상될 것이다.
새로운 국제 질서와 한반도
러시아는 현재 21세기 새로운 국제 질서 형성에 있어서도 미국 중심의 단일 체제보다는 다극화된 세계 질서 구축을 역설하고 있으며 유럽연합에서도 장기적으로 러시아가 유럽연합에 포함되기를 희망하고 있다. 이러한 향후 정세 변화는 한반도 통일 문제에 있어서도 굉장히 중요한 변수가 되리라 본다. 한 가지 예를 들면 러시아는 기본적으로 한반도 통일을 적극 지지하고 있으며 지금의 4자회담도 승인하고 있으나 4자회담은 한계가 있다고 보고 러시아 측이 염두하고 있는 대안은 한반도 통일을 위해서는 '다국적 회의'₃가 더 효율적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구상 어느 국가보다도 발달된 기초과학기술, 세계적인 문화와 예술, 우수한 교육 제도와 학술 연구, 세계 최대의 다양한 천연자원 보유, 약 1억 6천만의 내수시장 수요를 지닌 러시아는 21세기에는 고도성장을 이룩함은 물론 중요한 시장으로 급부상할 것으로 전망되지만 아쉽게도 수교한 지 10년인 현재 우-리 한국의 對러시아 수출은 10억 달러의 아주 미미한 수준에 불과하다. '늦다고 생각될 때가 빠르다'라는 말이 의미하듯이 그나마 시기를 놓치면 조만간 남의 몫이 되어 버릴, 놓칠 수 없는 마지막 시장을 적극적으로 공략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여기서 유의할 점은 러시아 시장 진출과 공략에 있어 러시아 특유의 역사, 문화, 전통, 생활습관을 무시한 채 우리 방식의 잣대와 눈높이로 측정하여 판단하거나 틀에 박힌 고정관념 또는 경제 논리로 접근할 경우 실패할 확률이 매우 높다는 점도 생각해 두어야 할 점이다.
1) 양담배 한 갑이면 질주하는 택시도 쉽게 세울 수 있으며, 100달러만 가지고 있어도 황제처럼 즐길 수 있고, 청바지나 스타킹 한 장이면 금발의 미녀가 무슨 부탁(?)도 들어 준다는 낭설, 게다가 상점에서 빵을 사기 위해 줄을 지어 서 있어야 한다거나 마피아가 들끓어 치안이 엉망이라는 등.
2) 예를 들면 미 국무부내 러시아 인사들은 '우리는 러시아를 해체했으며, 러시아인들을 러시아 영토내로 몰아냄으로써 우리의 목적을 달성했다'고 언급하였다.
3) 주한러시아대사 예브게니이 아파나시예프의 '21세기 한반도 정세와 한·러 관계' 강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