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어느 성(城)의 한 구석에 연못이 있었는데, 그 곳에는 많은 물고기들이 살고 있었다.
때마침 가문 계절이어서 물은 많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성에 불이 났고 이 소식이 연못의 물고기들에게 전해졌다. 이때 몇몇 물고기들은 다른 곳으로 피신하자고 주장했으나 다른 물고기들은 땅 위에 불난 것이 물속에 사는 우리와 무슨 상관이냐며 비웃었다. 얼마 뒤 이 고기들은 서로 생사가 엇갈렸다. 죽은 물고기들은 불이 났다는 것을 단지 정보로만 받아들인 반면, 피신한 물고기들은(과거의 경험에서 비롯됐던, 엄마 물고기한테 배웠던) 그 정보를 접하는 순간 사람들이 진화를 위해 연못의 물을 퍼다 쓸 것으로 판단하였기 때문이다.
무엇이 문제인가
오래 전, 농경사회에서는 토지 등 자연자원이, 산업 사회에서는 원료와 같은 에너지가 혁명의 원동력이었다면 정보사회에서는 정보가 가장 중요한 자원이다. 그러나 토지가 아무리 많고 싼 값에 마음대로 쓸 수 있는 노동력과 자본을 충분하게 확보하고 있고 또한 정보를 갖고 있더라도 그것을 활용할 지식이 없으면 새로운 비즈니스나 제품의 탄생은 기대하기 어렵다. 새로운 지식이 비즈니스와 일상생활에 적용되어야만 새로운 서비스와 제품이 생산되며 혁신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단적인 예로 인터넷 비즈니스 서점 아마존 (Amazon.com)은 지점 하나 없지만 기업 가치는 세계 최대 서점인 반즈앤 노블(Barns & Noble)의 8배 나 된다. 이러한 사례는 앞으로 기업의 핵심 자원이 지식이고, 지식의 축적 및 효과적인 관리가 무엇보다 중요함을 암시한다.
즉, 연못의 고기들이 살기 위해서는 불이 났다는 정보를 접하는 순간 슬기롭게 대처해야 할 지식이 필요 하며, 우리들의 교육훈련 목표와 수단 역시 정보사회의 성숙과 더불어 변해야 함을 암시한다. 지식 그 자체를 위한 'What do you know·' 보다는 현업 실무를 통하여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What can you do·'가 더욱 강조돼야 한다는 얘기다.
인터넷과 더불어 성숙기를 맞고 있는 지금의 정보사회는 사람들 머릿속에 들어가 있는 지식, 즉 정보가 돈을 만드는 시대라고 할 수 있다. 자본, 노동, 토지와 같은 생산 요소 들을 무시할 수는 없지만 부차적인 것이 돼버린 것이다. 이미 세계 곳곳에서 하드웨어가 경제를 지배하던 시대가 지나고 소프트웨어, 콘텐츠웨어가 부(富)의 원천이 되는 모습을 곳곳에서 감지할 수 있다.
인터넷을 한번쯤이라도 써본 사람이라면 알고 있는 야후(Yahoo)의 서치엔진으로 '지식(knowledge)' 또는 '지식경영 (knowledge management)' 이라는 키워드를 찾아보면 관련 인터넷 홈페이지가 상상을 초월 할 만큼 많이 나타난다. 인포시크(Infoseek)의 경우 지식경영 관련 홈페이지 수가 무려 520만 페이지에 달하며 그 내용도 전율이 느껴질 정도로 다양하다. 맨체스터대학의 키스 드레이크 교수는 빌 게이츠의 MS가 GM보다 가치 있는 기업이라고 생각한다면 지식경제는 이미 시작된 것이라고 말하였다. 또한 세계에서 가장 명망 있는 기업은 우리가 추진하고 있는 재벌그룹에 대한 구조 조정과는 달리 큰 것이 아릅답다(Big is beautiful)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미국의 GE(3,000억 달러)와 MS 등의 전자통신업체인 것으로 조사된 점과 MS/Intel/SBC가 다우존스지수에서 세계 2위 소매업체인 시어스로벅과 굿이어타이어/유니언카바이드 등을 밀어내고 새로 편입된 것은 지금의 시대적 흐름을 잘 반영하고 있다고 볼 수 있겠다.
현대 경영학의 대부로 불리는 드러커 교수도 1998년 샌디에이고에서 열린 지식경영 서밋에서 '이제 지식이 없는 국가는 지구상에서 사라질 것이다”라고 하여 산업화에 뒤진 수많은 국가들이 식민지로 전락했던 것처럼 지식화에 뒤진 국가들 역시 그렇게 될 수밖에 없음을 강조하였다.
미국이 현재 세계 최고의 국가 경쟁력을 갖고 있고 앞으로도 당분간 유지할 것으로 예상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미국의 강점은 무엇보다도 빌 게이츠와 스티븐 스필버그와 같은 신지식인이 창조될 수 있는 환경을 갖추고 있고 그런 사람들이 일할 수 있는 충분한 공간을 제공하는 지식기업이 있기 때문이다. 미국뿐 아니라 유럽 대륙의 네덜란드도 발 빠르게 1995년부터 '지식의 실천(Knowledge in Action)' 이란 국가적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고, 아시아의 싱가포르도 미국에 이어 국가 경쟁력 2위를 차지한 나라답게 1997년부터 지식과 기술 중심의 경제를 위한 연구에 들어가 '인더스트리 21(Industry 21) 이란 발전 전략을 세웠다.
우리나라는 어떤가
일본의 한 경제학자는 우리나라가 영원히 미국이나 일본을 추월할 수 없다고 꼬집은 바 있다. 또한 경영전문가들은 한국의 경우 선진국에 비해 뒤떨어진 기술 격차의 내면에는 지식의 격차가 크다는 의견이 지배적이기도 하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도 이미 지식에 대한 재조명 작업이 기업은 물론 정부와 학계에까지 폭넓게 번지고 있다. 지식이 세계 경제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한 조건으로 인식되면서 기업들은 지식을 축으로 한 경영 혁신 작업에 한창이며 정부는 지식기반산업 구축에 21세기의 희망을 걸고 있다.
김대중 대통령은 지난 8·15 기념사를 통해 제2건국이념으로 창조적 지식기반국가를 제시하면서 정부부처와 산하기관별로 후속작업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특히 정보 관련 주무 부처인 정통부도 지식 기반인 정보 인프라 구축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으며, 국책 연구기관인 산업연구원(KIET)은 최근 지식 기반 제조업과 서비스업 28개 분야를 선정해 2003년까지 재정자금 56조원을 포함해 모두 140조원을 투입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지식 기반 신산업 발전 방안을 발표 했다.
또한 세계 시장을 무대로 시시각각 쏟아지는 정보를 기업의 지식으로 활용해야 하는 종합상사들도 지식경영에 관심을 두고 있다. 특히 지난해 들어서는 대기업 그룹 총수들이 지식경영을 경영방침이나 경영목표로 직접 천명하고 일부 기업의 지식경영 성과가 드러나면서 그 속도가 더욱 빨라지고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기업들의 이 같은 지식경영 도입 열풍은 대학에서의 학문적 뒷받침으로 이어져 대학원 석박사 과정을 중심으로 지식경영 전공자가 크게 늘어나면서 많은 학술논문이 발표되기도 하고, 모 대학 학부의 경우는 국내 최초로 지식경영 전공을 포함하는 지식정보학부를 개설해 올해 첫 신입생을 받기도 하였다.
지식이란 무엇인가
이처럼 새 밀레니엄을 목전에 두고 국내외의 모든 세상이 지식 관련 내용으로 떠들썩하다. 그렇다면 이처럼 떠들썩한 지식이란 무엇인가?
'지식이 뭐냐?”고 물으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학교에서 배운 교과서를 가장 먼저 떠올릴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엄밀히 말하면 지식이 아니라 학식이다. 본인의 직접적 체험이 뒷받침되지 않은 이론일 뿐이다. 지식사회에서 요구되는 지식은 살아 있는 지식이다. 살아 있는 지식은 이론 외에 플러스알파가 있어야 한다. 한 마디로 이 시대에 있어서의 지식이란 학문적 지식과 실용적 지식 그리고 현장 경험적 노하우가 합쳐져 실질적으로 활용되는 지식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지식을 가진 신지식인은 끊임없이 자신의 일을 개선, 개발, 혁신함으로써 근속연수가 쌓일수록 부가가치가 높아지게 되는 반면 그저 시간만 때우고 봉급만 기다리는 보통지식인의 부가가치는 시간이 지날수록 상대적으로 자신에 투자되는 비용에 비해 더욱 떨어진다. 그렇다고 이와 같은 신지식인 사례를 과거 1970년대 새마을 지도자 성공 사례와 동격으로 봐서는 곤란하다. 과거 새마을 지도자가 땀과 근면함으로 상징됐다면 신지식인은 여기에 경험으로 체계화한 지식을 보태 승부를 거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또한 반드시 21세기를 선도하는 정보통신기술을 습득하고 있어야만 신지식인이 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순수예술에 종사하고 있거나 프로게이머(progamer), 공무원, 기업인, 그리고 인문학 등 순수학문을 연구하는 사람도 신지식인이 될 수 있다. 정보통신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은 신지식인이 되기 위한 필요조건일 뿐 충분조건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그 사람들이 자기 분야에서 끊임없는 지식 습득과 개선·개발하는 과정을 얼마나 중시하고 있는가이다.
그렇다면 과연 이와 같은 신지식인에 필요한 조건은 무엇일까? 미국 제조업자단체들과 많은 전문가들의 권고 내용을 살펴보면, 우선은 지식 활용의 가장 기본적 기기인 컴퓨터와 친구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최고의 경쟁력을 갖추기 위한 지속적인 개선·개발노력과 새로운 스킬에 대한 의지가 필요하며, 선진 지식을 자신이 직접 채취할 수 있을 정도의 영어가 뒷받침되면 더욱 좋을 것이다. 또한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의 의미에 대해 누구보다도 탁월한 감각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신지식인의 관심은 자신의 일을 어떻게 하면 잘 할 수 있는가에 그치지 않고, 더 나아가서 자신의 일이 조직의 경쟁력과 최상의 고객 서비스에 어떤 의미를 갖는지도 파악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암스트롱이 달을 밟아보고, 신지식인 탄생의 근본 기기인 컴퓨터가 등장한 영욕의 세기말을 지나 꿈과 희망의 새 밀레니엄을 맞고 있다. 새 밀레니엄을 맞아 우리는 한번쯤 과거를 돌아보고 기존의 어떤 고정관념이 있다면 과감히 그 틀을 벗어 새 시대 신지식인의 모습으로 거듭나도록 마음을 가다듬어야 할 것이다.
“21세기에 아무 것도 기대하지 말라. 21세기야말로 당신에게 모든 것을 기대하고 있으니까”라는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말을 음미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