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사람간의 따뜻한 정과 협력이 UPU의 전통입니다
지난 10월 14일부터 10일 동안 스위스 베른에서 열린 UPU 관리이사회에서는 한국 대표인 권영수 정보통신부 감사관이 의장으로서 단상에 앉아 유창한 영어와 세련된 매너로 회의를 주재했다. 권국장이 UPU 관리이사회 의장직을 맡은 것은 1994년 서울총회에서 의장과 관리이사회 의장직을 맡은 뒤 이번이 세번째. 5년 임기 중 3년째를 보내고 있는 중이다.
권영수 국장이 의장 자리에 앉게 된 것은 선거의 결과는 아니었다. UPU 총회를 개최한 나라의 대표가 5년 동안 관리이사회 의장 자리를 맡는다는 UPU의 규정에 따른 것이다. 그러니까 결국은 한국 정부가 권국장을 UPU 관리이 사회 의장으로 추천한 셈이다.
1994년도 UPU 총회의 개최지가 서울로 결정되고 나자, 체신부 주변에서는 국제우편 분야의 전문가가 아닌 사람은 물론 영어에 능통하지 못한 사람도 관리이사회 의장 노릇을 할 수 있다는 주장이 꽤 높은 목소리로 나돌았다 관리 이사회 의장이란 결국 회의를 주재하는 사람인데, 그러한 자리에 반드시 영어에 능통한 전문가가 앉아야 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 그러한 논리의 요지였다. 또한 의장국에는 자국어로 사회할 수 있는 특전을 주고 있는 것이 UPU의 관례이기도 하다. 1969년에 UPU 총회를 개최한 바 있는 일본도 그 후 5년 동안 국제우편의 비전문가이자 영어가 서투른 우정성 사무차관에게 의장 자리를 맡겼다는 전례까지 들먹여졌다.
그러나 그것은 관리이사회 의장으로서 반드시 갖추어야 할 박학다식, 세계 우편의 흐름에 대한 민첩한 이해. UPU 회원국간의 지역간-인종간 · 언어권간의 보이지 않는 갈등에 대한 이해, 주축을 이루고 있는 구미지역 전문가들과의 인간관계 등을 무시하고. 한 마디로 ‘얼굴 마담, 노릇으로 만족하자는 주장에 불과하다. 그것은 일의 실질은 젖혀놓고 형식만을 따지며. 일의 과정을 무시한 채 결과만을 따지는 한국적인 발상이라 하겠으며, 또한 UPU라는 거대하고 전통있는 국제기구를 경시하는 처사라 아니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UPU 관리이사회 의장은 어떤 일을 하는 자리이며, 어떤 능력의 소유자를 필요로 할까?
권영수 국장은 정보통신부 사람이면 누구나 다 아는 국제우편통이다. 고2 때인 1954년 보통 고시에 합격하여 1962년 국방부에서 공무원 생활을 시작한 그는 2년 후에 공승(공개경쟁 승진시험)을 거쳐 목포우체국 서무과장으로 정보 통신인 생활을 시작했다. 그 후 1970년 우정국 국제우편 과에 발을 들여 놓음으로써 국제 우편과 인연을 맺어 태국 아태우정연수소 교관으로 2년, 다시 교수부장으로 2년을 보낸 후 1979년 서기관으로 승진, 국제우편과장 자리를 5년 반 동안 지켰다. 아태우정연수소 교관으로 가기 전에는 영국에서 반년 동안 교관훈련과정을 거치기도 했다. 그 후 금융기획과장을 거쳐 부이사관으로 승진한 다음 교육원 교수부장, 강원체신 청장 등을 거쳐 1994년 1월부터 감사관으로 근무하고 있다. 그러는 과정에서 정부 대표로 국제회의에 50여회 이상 참석했으며, 5년마다 열리는 UPU 총회에는 연속 4회 참석했는데, 이러한 기록은 국제회의에의 참석을 일과로 하는 외무부 공무원들도 좀처럼 흉내내기 어려운 기록이라 한다.
이러한 경력에다 독실한 크리스천이며 성실 한 성격의 소유자인 권국장은 일찍부터 영어를 잘하는 사람으로 소문나 있었다. 실제로 그가 영어로 대화하는 것을 들어보면 정확한 발음, 굵직한 저음의 목소리로 본토박이와 다름없는 유창한 영어를 구사함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UPU 서울총회의 개최가 결정되자 그는 여가 시간을 아끼고 밤잠을 아껴가며 영어공부를 했다. 아니. 아무런 불편 없이 UPU 관리이사회 의장 노릇을 하고 있는 지금도 촌음을 아껴가며 매일 영어 공부를 하고 있다.
그렇다면 그의 영어 실력은 어느 정도이며. 어떻게 영어 공부를 하고 있을까? 왜 아직까지도 계속하고 있을까? UPU 관리이사회 의장이라는 자리가 그렇게 어려운 자리일까? 또한 그는 의장으로서 어떤 대접을 받고 있는 것일까?
——UPU 관리이사회 의장직을 3년째 수행하고 있는데, 우선 그 동안 의장직을 맡았던 소감을 말씀해 주시죠.
'UPU는 UN 전문기관인데, 그러한 상설 기구에서 리더 역할을 한다는 것이 솔직히 힘에 부치는 일입니다. 그런데 이번까지 세번 하고 나니까 아주 험한 산은 다 넘고 이제는 덜 가파른 산이 앞에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제는 약간 자신이 붙는다고나 할까요.”
——처음 의장 자리를 맡을 때는 여러가지로 염려가 많았을 텐데, 주로 어떤 문제를 가지고 염려했습니까?
“세계 우편의 주류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 구미지역이므로 구미 우편정책의 핵심부에 들어가서 리더 역할을 해야 되는데, 그들 나라의 사정을 소상하게 파악하지 않으면 의장 노릇을 하기가 어렵습니다. 따라서 각 나라의 정책 환경을 파악하는 것이 제일 어려운 일이죠.'
——의장직을 제대로 수행하자면, 외국어에 능통해야 하고 회의 진행 절차 내지 요령을 잘 알아야 하고 또 토의 안건에 대한 이해가 깊어야 하는 등 몇가지 요건을 갖춰야 할 것으로 생각하는데, 의장 역할을 함에 있어 실질적인 어려움은 무엇이었습니까?
“처음에는 의사진행 절차나 의사규칙에 숙달되지 않은데다 영어로 해야 하기 때문에 힘이 들었는데, 그런 문제는 한번쯤 경험하면 극복됩니다. 그러나, 의장이 단순한 교통순경 역할만 하는 게 아니고 어떤 토의 사안에 대해 의장으로서 바람직한 결론을 가지고 그 방향으로 유도해 갈 줄도 알아야 하는데, 그러한 문제는 여전히 어려운 문제로 남죠. 그렇게 하려면 찬반 양론이 벌어졌을 때 양쪽의 논리를 잘 파악 하고, 왜 그런 주장을 하는가 하는 저간의 사정이나 역사적 배경을 이해해야 하는데, 그게 쉬운 일이 아니죠.
그것의 첩경이라 할 수 있는 것이 세계 우편의 핵심 멤버들과 친해지는 겁니다. 전 세계적으로 볼 때 UPU 사무국 직원들을 포함해서 20명 안팎의 키 플레이어 (key players) 가 있는 데, 그들과 물밑접촉을 통해 어떤 교감이 이뤄져야 합니다. 전화나 편지를 통하거나 직접 만나는 방법 등으로 수시로 접촉해야 하죠.'
——외국어 장벽은 완전히 정복했다는 느낌이 듭니까?
“우리 말도 완전 정복이란 있을 수 없는 거니까 완전 정복이란 표현을 할 순 없지만, 회의 주재나 토론에서 영어 때문에 막히는 일은 없습니다. 처음에는 불어를 써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었지만, 한국이 의장국이 되고부터는 갑자기 영어를 많이 쓰는 경향이 있습니다. 영어를 쓰면 80% 가량은 알아듣죠. 그렇기 때문에 공용어인 불어 대신 영어를 써도 조금도 미안한 생각이 안듭니다.”
——불어도 공부하셨습니까?
'7〜8년쯤 됐는데, 지금도 매일 조금씩은 하고 있어요. 나이 탓인지 학습 진도가 느리군요.”
—1989년에 UPU 서울총회 개최가 결정되고 나서 유창한 영어임에도 불구하고 밤잠까지 아껴 가면서 외국어 공부를 하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 실제로 외국어 공부를 어떻게 하셨습니까?
“제가 평소 영어에서 부족함을 느꼈던 점은 유창함이었어요. 우리 말도 약간 더듬는 편이니까 영어도 더듬는 편이었죠. 또 의장을 하게 되면 안건마다 의미를 부여해야 합니다. 그냥 평면적으로 진행만 하는 게 아니라 그 안건에 어떤 의미를 부여해서 입체적으로 진행해야 되는데, 그럴려면 추상적인 표현을 많이 알아야 합니다. 한 마디로 어휘가 풍부해야 하죠. 그런 측면에서 부족하다고 생각했어요.
또 의장을 하다 보면 각종 모임에서 즉흥연설을 많이 하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대표로 분과위원회에도 참석해야 하니까 발언을 많이 하게 되는데, 의장의 발언은 주목을 받기 때문에 말을 잘해야 합니다.
그런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영어 찬송시와 성경 구절을 많이 외웠습니다. 찬송시는 18〜19 세기 때의 영시이기 때문에 표현이 참 아름다워요. 기본적으로 100수 정도는 암기하고 있죠. 그러한 찬송시와 성경 구절을 종이쪽지에 적어서 전철 안에서나 화장실에서나 식사할 때 외우고 있는데. 그러한 쪽지를 집에 많이 쌓아두고 있죠. 1989년 이후로는 그런 식으로 공부 했어요. 내 결점이 그런 것이라고 생각해서 그렇게 노력하고 있는데. 작년 다르고 금년 다르다는 것을 느끼고 있습니다.’’
——하루 중 주로 어떤 시간에 외국어 공부를 하십니까?
“영어 공부를 따로 하는 시간은 없습니다. UPU도 국제기구니까 의장 노릇을 제대로 하려면 의안도 중요하지만, 반드시 정치의안을 다루지 않더라도 그 이면에 깔린 국제정치적인 배경과 토양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회기 중에는 반드시 신문을 봅니다. 요즘은 CNN 방송도 보죠. 회의장에서는 곧잘 그 날의 신문 기사가 화제가 되니까요. 그럴 때는 제가 의장이니까 발언 우선권을 줍니다. 항상 먼저 이야기를 하게 되죠. 그럴 때 의장으로서 의미있는 발언을 해야 되는데, 화제의 대상에 대해 전혀 모르면 아무 말도 못하는 거죠.”
—결국 의장은 만물박사가 되어야 한다는 얘기로군요.
'만물박사까지는 안되더라도 정치 · 외교적인 문제에 대해 모르면 안됩니다. 회의에 참석하는 대표들은 지식인들이고 그런 문제에 대한 식견이 있기 때문에 필수적이죠. 예를 들면, 보스니 아사태에 대해 뚜렷한 주관은 못보여도 돌아가는 사정 정도는 알아야 합니다. 그 정도도 모르면 도저히 대화에 참여할 수가 없어요. 그래 서 영어 시사주간지는 필수적으로 읽고 있습니다. 주로「타임」지를 애독하고 있는데, 그것을 읽으면서 지나쳐 버리기 어려운 구절은 조그만 수첩에 적어 둡니다. 펀치 라인(punch line) 이라 해서 급소 같은 멋있는 문구나 좋은 통계수치, 사람 이름 등은 적는 습성이 있어요. 보통 한 달에 노트 한 권 정도가 되죠. 그렇게 해서 가방이나 포켓에 넣어 놓고 수시로 꺼내 봅니다.”
——의장 역할을 제대로 하려면, 회의 때 토의되는 수많은 안건과 각 안건에 관련되는 많은 서류들을 직접 읽고 그 내용을 파악해야 할 텐데, 불과 2주 정도의 회의 참석으로 어떻게 그러한 방대한 내용을 파악할 수 있을까요?
“상당 부분은 회의하러 가기 전에 미리 자료가 옵니다. 지난번 회의에는 중요한 안건이 38건 상정됐는데, 그 중 절반 이상은 여러 해에 걸쳐 토의한 사항이어서 별 어려움이 없었어요. 나머지는 거기 가서 자료를 얻게 되며. 또 제가 주재해야 할 작은 규모의 회의도 몇가지 되는데, 그런 경우는 상당히 부담이 됩니다. 그럴 땐 전날밤에 다 읽어야 하니까 잠을 잘 못자죠. 그래서 새벽 2시에 일어나서 서류를 보다가 바로 출근할 때가 많습니다.
회의 기간 중에는 저녁마다 파티가 열리는데, 의장이니까 빠질 수는 없잖습니까. 파티가 끝나고 호텔에 돌아오면 10시가 넘는데, 그때부터 서너시간 자고 일어나서 새벽 2시부터 서류를 봐야 하니 강행군의 연속이죠. 무척 피곤합니다. 내 전임 의장인 미국의 리비 사무총장도 그랬다고 하더군요. 자기는 한 시간도 못잔 날이 있었다며, 3〜4시간 잔다니까 아주 행복한 일이라고 하더군요.'
—그런 식으로 회의를 진행하다 보면 옆에서 회의 진행을 돕는 보좌관의 역할이 중요할 것 같은 데, 실제로 도움을 받고 있습니까?
“관리이사회 회의시에는 내 왼쪽에 리비 사무총장이 앉는데, 그가 일종의 수석 보좌관이라 할 수 있고, 오른쪽에는 우리 국제우편과 박종석 사무관이 있는데, 영어 그대로 라이트 핸드 맨 (right-hand man)으로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그가 없으면 의장이 일을 못합니다. 안건 하나마다에는 여러가지 부속 서류가 많은데, 그 순서가 자꾸 바뀌니까 순서대로 챙겨줘야 되고 대표들이 한꺼번에 발언을 하면 발언 순서를 가려서 매겨줘야 하고, 어떤 경우에는 단하로 내려가서 각국 대표와 재빨리 의논하고 와야 하니까 바쁘죠. 또 복잡한 사안에 대해서는 의장에게 나름대로 조언도 해줘야 합니다. 의장이 시간이 없어 미처 못읽은 사안에 대해서는 미리 읽어보고 요약해 주기도 하죠. 그처럼 보좌관의 역할이 아주 중요한 겁니다.”
—UPU 관리이사회 의장이라 하지만 UPU에 상근하는 게 아니고 정보통신부 감사관으로 근무하면 서 회의가 열릴 때면 1년에 서너차례 날아가서의 장 역할을 수행하는 것 아닙니까. 관리이사회 의장 역할을 제대로 하려면 UPU와 부단한 연락을 취해야 할 것 같은데, 평상시에 UPU와 어떤 방법으로 연락을 취하고 있습니까?
'바쁠 때는 하루에도 몇번씩 전화를 주고 받기도 하고, 팩스를 자주 이용했는데. 요즘은 인터넷을 많이 이용합니다. 시차가 있기 때문에 인터넷을 통해 보내놓고 퇴근하면 아침에 회답이 와 있죠. 사무총장과 통화를 하면 1시간 이상 걸리는 경우도 있는데, 전화를 이용하면 퇴근시간 무렵이 돼서 불편한 점이 많습니다.'
——주요 통화 상대는 누굽니까?
'사무총장 이하 사무국 간부들이죠. 사무총장의 경우 내게 의논하기를 좋아하고, 또 예산 전용 등 중요한 문제가 있을 때마다 의논을 해 옵니다. 또 관리이사회의 간부와도 자주 통화를 해야 합니다. 그리고 구미지역의 핵심 멤버들과도 통화를 자주 합니다. 반드시 높은 자리가 아니더라도 분과위원회 위원장이나 각 분야의 전문가들과 개인적인 친분이 맺어져 있어 서로 성을 안부르고 이름을 부르며 지내고 있습니다. 사무총장 이하 100여명 가까이는 그렇게 지내고 있죠. 그들 부인들과도 이름을 부르는 사이가 돼 있죠. 그들이 사실상 UPU를 좌지우지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런 인간적 관계가 매우 중요합니다.”
——우편을 담당하는 국제기구의 장이기 때문에 세계 우편의 흐름에 대한 정보를 누구보다도 빨리 알고 있으리라 믿는데, 최근 해외우편 동향 중에서 특징적인 것은 무엇이며, 그 중에서 우리가 유의해야 할 사항이 있다면 뭘까요?
“요즘 1년이 옛날의 5년, 10년과 맞잡이라 할 만큼 우편사업에도 경쟁 진입 현상이 급속도로 진전돼가고 있다는 게 우선 눈에 띄는 현상이고, 다음으로는 자주적 경영권 확보를 위한 제도적 변화가 나라마다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본격적으로 민영화되어서 주식을 상장하는 우편회사들이 계속 나오고 있죠. 일반 신서까지도 우편독점권을 아예 폐지하는 나라도 늘어나고 있구요. 폐지까지는 안하더라도 대부분의 OECD 회원국들은 신서 중에서도 요금을 많이 받고 고급 서비스를 하는 민간업체가 나오면 경쟁을 허용하기도 합니다. 그런 것이 하나의 큰 흐름이죠.
거기에다가 또 하나의 뚜렷한 현상은 우정청 간의 경쟁이어요. 지금까지 우체국끼리는 경쟁을 안하고 협조하는 관계였는데. 이제는 경쟁자로 대두되고 있어요 예를 들면, 미국 영토 안에서 영국이나 화란 우체국이 사무실을 차려 놓고 외국으로 나가는 우편물을 수집해서 발송 해주고 있어요. OECD 회원국간에는 그처럼 거의 자유화가 되고 있죠.
민간사송업체 가운데는 DHL이나 UPS, TNT 등 유명한 회사가 있는데, 화란 우편회사가 20억불짜리 TNT를 사버렸어요. 이처럼 지금까지 존재해 왔던 세계 우편망의 양상이 완 전히 달라지고 있어요. 그것이 앞으로 UPU 내지 국제우편에 어떤 회오리바람을 몰고올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을 만큼 무서운 속도로 변하고 있는 거죠. 우리도 이제 이러한 변화에 눈을 뜨지 않으면 안됩니다.”
——정보통신부는 1997년을 목표로 해서 우정사업 공사화를 추진하다가 정책의 변경으로 특례법을 제정함으로써 자율성을 확보한다는 쪽으로 방향 선회를 했는데. 지금 말씀하신 해외의 조류로 볼 때 안타깝다는 생각이 드시죠?
'저는 개인적으로 대단히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더구나 대통령께서 세계 각국 전권대표들이 모인 UPU 총회 첫날 대한민국 우정사업이 자주적인 경영체제로 운영하기 위해 1997년에는 공사체제로 바뀔 것이라고 약속을 하셨기 때문에 더욱 안타깝죠. 국가 원수가 자청해서 약속 해 놓고 백지화시킨다는 것은 의장 입장에서는 곤혹스러운 일이죠. 뿐만 아니라 이제 우리도 OECD에 가입하게 되었고、같은 정보통신부 안에서도 정보통신 쪽은 완전히 경쟁체제로 접어들었고, 1998년에는 기본통신까지도 개방하게 되는데, 우편만을 제외시킬 이유도 없는 거죠.
경제가 이만큼 발전하고 OECD에 들어가는 문턱에 서서 우리도 발상의 전환을 해야 합니다. OECD 회원국 중에서 우리처럼 우편사업을 국영으로 운영하는 나라는 일본과 터키밖에 없습니다. 일본의 경우 관청식으로 운영하고 있지만 그들 특유의 관료문화가 있어서 나름대로 자주적인 경영을 하고 있어요. 그런데 우리처럼 전통 속에 묻혀 있다 보면. 국제우편 커뮤니티에서 독특한 존재로 남아 소외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모르긴 해도 1970년대말에 쿠리어업체 들의 강력한 로비에 의해 체신부 의도와는 관계없이 우편법을 개정했던 것처럼, OECD에 가입하면 멀지 않아 국제우편시장을 개방하라는 거센 압력이 들어올 겁니다.'
——UPU는 국가간의 협력을 전제로 하여 탄생한 국제기구이고 또 우편인들끼리 모이는 비정치적 기구이기 때문에 우정과 협동이라는 좋은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고 하겠는데, UPU의 특징을 한 마디로 말한다면 어떻게 이야기할 수 있습니까?
'지금 상업화가 진전되기 때문에 전통적인 것이 퇴색해 가는 경향이 있습니다만, 다른 국제기구와는 달리 UPU는 여전히 국경을 초월한 이해와 협력을 바탕으로 사람과 사람들간의 따뜻한 정이 오가는 국제기구로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우편인들끼리는 숟가락만 들고 다니면 세계 어디에서나 밥을 얻어먹을 수 있다는 전통에 변함이 없을 겁니다. 그런 따뜻한 정과 협력이 UPU의 특징이라 할 수 있죠.”
——UPU는 비정치적인 기구이긴 하지만 많은 나라가 모인 국제기구이다 보니 정치적인 영향도 어 느 정도 받으리라 보는데, 국제회의 때 정치적인 영향도 받게 되나요?
“물론이죠. UPU는 모기구인 UN보다 회원국 수가 많고 역사가 오래 되다 보니까 전통적으로 격이 높은 외교관들이 참석하기 때문에 정치 토론장이 될 수도 있습니다.’’
——어떤 조직이든 그 조직을 이루고 있는 기득권층의 텃세는 있는 법인데, 아까 얼핏 비치셨습니 다만, UPU의 경우 아직도 구미국가들의 영향력이 크죠?
'거의 절대적이라 할 수 있죠. 인종 차별을 하려고 해서가 아니라 구미 각국들은 사업 경영체제가 다이나믹하고 개방적이고 자주적 입니다. 그러니까 하급직원들이 참석하더라도 그들이 가진 정보와 논리를 가지고 얘기하면 토론에서는 단연 압도적이 될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지배를 하는 겁니다. 다른 국제기구도 마찬가지일 겁니다만, 구미 사람들 몇몇의 핵심 멤버들이 이너서클(inner circle)을 형성하고서 막후에서 중요한 의사 결정을 내립니다. 동양 사람은 일본까지도 좀처럼 안끼워 주죠.'
——그런데 이제 한국 대표가 한분 그 사이에 낀 거로군요.
“제 사고가 유연하고 리버럴해서 유럽인들의 구미에 맞다는 식으로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핵심 멤버들이 나누는 비공식적인 대화에 저를 끼워 줍니다. 서울총회 이후 서서히 친구처럼 되니까 비밀스러운 이야기도 나누고 전략 같은 것을 토의하기도 하죠.
핵심 멤버들은 20명 안팎이지만, 나라로 따지면 제일 발언권이 센 데가 영국 · 불란서이고, 요즘에 와서는 독일 · 호주 · 뉴질랜드가 끼고 다음이 스웨덴 · 핀란드 정도죠. 물론 미국도 끼고요. 그들 나라 사람들과 친교 관계가 두터워지면서 내 의견을 듣는 게 좋겠다 해서 와서 묻기도 하고 털어놓고 이야기도 하죠. 지금은 나보다 고참이 많지 않다는 생각에서 자신있게 이야기도 하고 일을 시키기도 하는데, 그러면 내 의견을 존중해 줍니다.”
——지역간, 인종간에 눈에 띄지 않는 갈등도 있죠?
“냉전체제일 때는 상당히 있었죠. 회원국이 많은 아프리카 표와 오일 달러의 위력을 가진 아랍 표가 사사건건 이견을 내놓으며 의장을 궁지로 몰곤 했는데, 그때는 서방측의 미움을 많이 받았죠. 그런데 냉전체제가 무너지고 나면서 그들의 발언권이 약해졌어요. 그런 갈등이 없어지니까 요즘은 도착국료 정산 등 상업적인 이해가 대립되는 문제가 관심을 끌고 있죠.”
——결국 구미 세력이 주축을 이룬다는 것은 실력 문제라고 봐야겠군요.
“그렇죠. 그들이 한 마디 하는 것이 개도국의 높은 사람 10명이 하는 것보다 더 들을 가치가 있어요. 지금까지 20여년 동안의 경험에 의하면 처음에는 안하겠다고 버티다가도 결국은 구미 사람들이 하자는 대로 따르고 맙니다.”
——영어권과 불어권간의 갈등은 없습니까?
“서울총회에서 많이 있었죠. 불란서인들은 그들의 언어가 공용어로 되어 있는 데가 UPU이기 때문에 마지막 보루라 생각해서 놓지 않으려고 합니다. 대단한 버티기작전을 하죠. 이번 회의에는 언어 문제만 전담하는 외교관이 2명이나 참석했어요.
——잠깐 비치셨는데, 의장으로서 외국 대표들로 부터 존경받고 있는 입장까지는 되어 있는 거죠?
“UPU는 특히 보수적인 국제기구여서 고참들을 인정해 주며, UPU 간부들을 깍듯이 대하는 전통이 있습니다. 그래서 고맙게 생각하고 있고, 어떤 때는 어부지리를 얻고 있구나 하는 생각도 합니다.”
—서울총회를 우리가 개최했고 또 한국 대표가 의장직을 수행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좁게는 한국의 위상을, 넓게는 동양권의 위상을 높여주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 의장 입장에서도 그런 생각이 드셨습니까?
'물론 그런 생각이 듭니다. 그렇기 때문에 외무부에서는 굉장히 중요시하고 있고 외교정책 측면에서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위상뿐만 아니라 동양권의 위상이 강화되는 느낌이 드는 것은 한국에 이어 중국에서 UPU 종회를 개최하게 되니까 동양권에서 10년 동안 의장 노릇을 하는 것 아닙니까. 그래서 전 UPU 사무총장 보토 드 바로스씨가 UPU리더쉽이 동북아 쪽으로 오고 있다는 말을 공식 연설에서 한 일이 있었죠.'
—권국장님은 전문 외교관이 아니면서도 전문 외교관 이상으로 국위 선양을 하는, 매우 중요한 역 할을 하고 있는데, 우리 내부적으로는 그만한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섭섭함 같은 것을 느낄 때도 있죠?
“충분한 대접을 받고 있습니다. 주무 부서인 우정국에서 지원해 주지 않으면 제가 어떻게 활동하겠습니까.
좀더 바라고 싶은 것은 의장은 혼자서 하는 게 아니고, 의장을 제대로 하자면 뿌리가 되는 각 실무팀이 강화돼야 하는데, 우리 체제에서는 그게 쉽지 않습니다. 의장이 리더쉽을 발휘하려면 각종 소위원회에서 우리 대표가 발언을 많이 해줘야 합니다. 또 자발적인 기부금도 많이 내야 하고요. 그런 것이 의장을 도와주는 거죠. 의장국 한다고 해놓고 의장 한 사람이 다 하려니 하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이죠.
전임 의장을 독일과 미국 대표들이 5년씩 했는데, 그들이 출장을 가면 그 옆에는 여러 전문가들이 따릅니다. 4개국어를 동시통역하는 통역사, 국제법 관련 변호사, 회계사, 우편 전문가, 수행비서 등 7〜8명이 따르죠. 그밖에도 투자를 많이 합니다. 국제우편 관련 소프트웨어를 개발해서 무료로 제공하기도 하죠. 그러니까의 장국을 존중하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러한 인적 구성이 안돼 있는 상황에서 의장을 무대 위에 세워 놓고 연기를 하라고 하니 아랫도리가 꼬인다고나 할까요, 그런 것을 많이 느낍니다.”
——요즘 우리나라는 각 분야에서 세계화를 부르짖고 있는데, 우리나라 우정사업의 세계화를 위해 한 마디 조언하고 싶은 사항이 있다면 뭡니까?
'우편 내지 우정사업이 정보통신정책을 다루는 부처의 한 부서로 되어 있는 것은 지극히 유감스러운 일이라 생각합니다. 오히려 그것을 득이라고 생각하는 견해도 있겠지만, 그것 때문에 한국 우편이 국제우편 사회에서 기형적인 것이 될 수밖에 없는 겁니다. 우편이 우리 부처의 우선순위에 들 수 있는 사업이 아니기 때문에 성장을 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인사 · 예산 · 국제활동 등 매우 중요한 문제에서 항상 왜소할 수밖에 없습니다. 물이 아래로 흐르듯이 인재가 정보통신 쪽으로 몰려가 버리기 때문이죠. 국제활동도 우편이 별도로 떨어져 있으면 중요시되겠지만 정책 비중에서 밀려 나기 때문에 관심이 소홀해질 수밖에 없죠. 그러니까 우편 분야에서 세계화가 제대로 되려면 우편이 떨어져 나가야 합니다. 그늘 속에서는 자라지를 못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