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를 차는 사람들(이하 소차사)을 만나러 인천 시각장애인축구장을 찾았다. 그곳에서 열리는 소차사 리그를 보기 위해서다. 취재 전 날까지 날씨 걱정을 했더니 소차사의 최인식 회장(36)은 폭풍우와 우박이 내리지 않는 한 경기는 있을 것이라며 걱정 말고 오라고 했다. 도착하니 경기는 이미 시작되었고 비도 조금씩 내리고 있었다.
“비가 오면 뭐 어때? 우리가 뛰고 싶으면 뛰는 거지.”
관중석에 앉아 경기를 지켜보고 있으니 비장애인 축구를 보고 있는 것인지 시각장애인축구를 보고 있는 것인지 분간이 안 간다. 같은 편 발 앞에 정확하게 공을 패스해주는가 하면 정확하게 슛을 쏴 골망을 흔들기도 한다. 두 눈으로 확인하지 않고는 믿지 않겠다는 짧은 생각이 앞이 보이지 않은 사람들이 펼치는 경기를 통해 사르르 사라지는 순간이다.
다른 것이 몇 가지 있긴 하다. 선수들이 하나같이 머리에 보호대를 두르고 있는 것과 움직일 때마다 ‘보이’라고 외치는 것. 그리고, 공에서 ‘차르르~’하고 소리가 나는 것 등이다.
“우리가 시각장애인이니까 우리 동호회 이름이 소리를 ‘찾는’ 사람들인 줄 알고 있는 사람들도 있더라고요. 경기 중에 소리를 찾긴 합니다. ‘보이’라고 외치는 소리, 발 소리, 공 소리에 집중해야 하거든요. 그러고 보니 소리를 찾는 사람들이라고 해도 되겠군. 하하.”
소리를 차는 사람들이란 이름에 대해 물으니 박명수 씨가 이름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주다 유쾌한 대답을 내놓는다. 국가대표 시각장애인축구선수 박명수 씨는 소차사 서울 팀의 주장이며, 소차사 동호회 카페(cafe.daum.net/2002sss)의 운영자다. 시각장애인축구에 대해 물으면 뭐든 척척 대답하는 전문가이기도 하다.
소차사는 서울, 인천, 경기, 강원으로 팀을 나눠 리그를 펼친다. 한 팀에 6~7명의 주전 선수가 있다. 경기는 2주에 한 번, 주로 회원 모두 가능한 날인 토요일 오후 1시에 있다. 이 날은 1차전으로 경기 팀과 강원 팀이, 2차전에는 서울 팀과 인천 팀이 겨뤘다. 한 팀 당 출전 선수는 필드 선수 4명, 골키퍼 1명이다. 골키퍼는 약시나 비장애인 자원봉사자가 맡고, 필드 선수 중에서도 약시는 아이마스크를 쓰고 뛴다. 경기는 전·후반 각각 25분 씩이다.
소리를 차는 사람들이란 이름은 시각장애인축구용 공이 소리가 나기 때문이다. 공 안에는 구슬이 여러 알 들어 있는 캡이 있다. 공에서 나는 소리를 듣고 선수들이 움직인다. 경기 중에 “보이!”라고 외치는 것은 규칙이다. ‘보이’란 스페인 어로 ‘내가 간다’는 뜻. 국제경기에서도 통용된다. 선수들끼리 부딪쳐서 발생하는 부상을 방지함은 물론, 자기 팀 선수 위치 파악을 가능케 한다.
비가 와서 잔디가 미끄럽다. 헛발질에 넘어지는 선수가 있어도 다시 일어나 뛴다. 오늘을 손꼽아 기다린 이들이다. 비 따위가 이들의 경기를 방해할 순 없다. 앞이 안 보이는 것도 마찬가지다. 청각과 몸에 밴 감각으로 움직이는 것. 다른 사람에겐 없는 이 선수들이 타고난 재능이다.
도전이 아니라 축구가 좋아서 하는 것일 뿐
소차사의 최인식 회장은 지난 해 11월 투표로 임명됐다. 임기는 1년. 소차사 회장은 목소리 큰 사람이 된다고 우스갯소리를 던진다. 연임도 가능하기 때문에 본인은 평생 할 거란다.
“우리 회원 대부분이 안마사들이에요. 실내에서 늦은 시간까지 일하죠. 주말을 이용해 이렇게 뛰는 겁니다. 시각장애인들이 햇볕 아래 가이드 없이 땀 흘리며 맘껏 뛸 수 있는 게 바로 축구입니다.”
소차사가 결성된 것은 1999년. 시작은 돼지저금통에 조약돌을 넣은 것에서 비롯됐다. 맹학교 친구들끼리 돼지저금통을 발로 차며 즐기던 것이 점차 발전해서 지금은 정식으로 시각장애인축구란 명칭이 생기게 된 것. 아시아에서는 우리나라가 최초다. 소차사 회원들의 힘이 크다. 덕분에 국내에 시각장애인용축구장도 점점 느는 추세다. 다른 축구장과 달리 규모도 작고 경기장 테두리에는 부딪쳐서 부상을 입는 것을 방지하는 펜스가 둘러져 있다.
시각장애인축구의 물꼬를 튼 소차사
소차사 동호회가 결성이 되고 처음에는 고생이 많았다. 규칙과 틀이 짜여지기 전까지 선수들끼리 부딪쳐서 부상을 당하는 경우도 많았고, 패스가 제대로 되지 않아 공이 멈춰 버려 경기가 중단된 적도 있었다.
“10년이란 길지 않는 시간동안 시각장애인축구가 이렇게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축구에 대한 열망 덕이었겠죠. 축구를 시작한 후 저 뿐만 아니라 회원들의 성격이 한결 밝아졌어요. 성향도 외향적으로 바뀌었고, 진취적으로 변했다고 할까요.” 소차사가 대중에게 노출되고 입소문을 타고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이들을 찾는 사람들도 많이 늘었다. 경기가 있는 날엔 이동할 때 도움을 줄 가이드도 필요하고 골키퍼를 할 자원봉사자도 필요한데 소차사로서는 반가운 일이다.
그렇다고 모두가 반가운 것은 아니다. 기업에서 홍보를 위한 사회공헌 차원으로 소차사를 찾고 언론에 노출하는 경우가 그렇다. 따로 스폰서가 있는 게 아니니 기업의 지원이 때론 반갑긴 하지만 순수하게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이 찾길 바라는 마음이 더 크다.
축구를 통해 장애인에 대한 편견 깨고파
최인식 회장은 축구가 좋아서 하는 이유도 있지만 장애인에 대한 비장애인의 편견을 깨고 싶은 마음이 있다고 말한다.
“우리에게 도전이란 앞이 안 보이는데 축구를 한다는 사실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저희는 즐기는 것이거든요. 하지만 비장애인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죠. 소차사를 통해 비장애인이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바꾸었으면 좋겠습니다.”
박명수 씨는 대학원에서 사회복지학을 전공하고 있다. 공부를 하다보니 우리나라는 장애인 재원 정책을 전문적으로 담당하는 사람이 부족함을 알았다. 등록금 부담은 있지만 목표를 세운 이상 도전하기로 했다. 형들에게 귀여움을 받는 막내 김성연 씨는 YMCA에서 유도선수로 활동 중이다. 운동할 때가 가장 행복하다고 말한다.
“10분 만 더 뛰면 이길 수 있었는데…”
경기 팀과 강원 팀의 경기가 1대 1 무승부로 끝나자, 씩씩거리며 자리로 돌아오는 사람은 승부욕이 넘치는 김용열 씨다. 전· 후반을 다 뛰어 머리에서부터 뜨거운 땀이 주루룩 흐르는데도 못내 아쉬운 모양이다.
소차사의 경기에서 반칙은 볼 수 없다. 누구든 경기 중에 거칠게 뛰거나 독주를 하지도 않는다. 즐기려고 하는 게임인데 승부에 집착하다 보면 부상이 생기는 등 위험하기 때문이다. 한 번도 선수들끼리 싸운 적도 없다. 서로를 무척 잘 알고 이해하고 있는 까닭이다.
소차사는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이면 누구든 환영한다. 소차사 카페에 가입하거나 송파시각장애인축구장(02-2202-8144)에 문의하면 된다. 월드컵의 열기가 아직 식지 않은 계절이다. 이 여름, 소차사와 함께 행복한 소리 차기에 참여해 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