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호(18) 군은 태어날 때부터 앞을 볼 수 없는 선천성 녹내장을 앓고 있다. 열여덟 해를 살면서 열여섯 번의 대수술을 받았다. 하지만 차도가 없었다. ‘수술’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두렵고 겁이 났다.
네 살 무렵. 앞이 안 보이는 것이 다른 사람과는 다르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되면서는 몸도 마음도 힘들어졌다. 또래들과 같이 놀고 싶었지만 비장애인 또래들은 본인과 어울리기는커녕 멍이 나도록 때렸다. 서럽고 억울해서 복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폭력적인 드라마를 찾아보기도 했다. 가만히 있는 동생을 깨물어 화풀이도 했다.
본인의 표현대로라면 ‘지금 생각해 보면 철없이 보낸 시간’ 들이었다. 앞을 볼 수 없는 시련을 겪은 어린 지호 군이 넋두리 대신 노래를 부르기 전에 일이다.
난 단지 당신을 사랑한다고 말할 뿐이에요
I Just Called to Say I Love - Stevie Wonder
초등학교 4학년이 되자 음악을 해 보는 것은 어떻겠냐는 부모님의 권유를 받았다. “3살 때부터 음악에 소질을 보였다고 하더라고요. 부모님 덕에 음악과 자주 접할 수 있었는데 음악을 듣고 그대로 따라 부르거나 연주하는 것이 저에게는 하나의 놀이였습니다. 떠오르는 악상이 있으면 녹음을 해서 작곡을 하기도 했고, 피아노로 연주하기도 했습니다.”
지호 군이 다니는 학교에는 시각장애인 뮤지션으로 구성된 전문 연주단이 있었다. 관악합주단인 ‘브라스앙상블’과 합창단인 ‘빛소리중창단’ 등 국내외에서 크고 작은 공연을 펼치고 있는 전문 연주단들이다. “어머니 손을 잡고 연주단 오디션을 보러 갔어요. 드럼 연주로 오디션을 보았는데 99점을 받고 합격을 했죠. 연주단에 입단하면서 본격적으로 음악을 배우기 시작했어요. 지금은 제 전부가 된 음악인생을 그 때부터 시작한 거죠.”
지호 군의 타고난 음악적 소질은 부모님에게 물려받은 것이다. 지호 군의 어머니는 ‘아기공룡 둘리’의 주제가를 부른 오승원 씨이고, 아버지 김형로 씨는 ‘뭉게구름’, ‘여름’을 부른 그룹, ‘징검다리’의 보컬 출신이다. 덕분에 악기 다루는 실력뿐만 아니라 노래실력도 뛰어나다.
“제가 노래를 잘 하는 이유는 어렸을 때 목청껏 울었기 때문입니다. 한 번 울기 시작하면 멈추질 않았답니다. 밥 먹다 울고, 잠도 안 자고 울었대요. 동네에선 이미 유명인사였어요. ‘김지호 또 우는구나’하고요. 제가 가수가 될 거란 것은 동네 사람들이 먼저 알아봤을 거예요. (웃음)”
(좌)음악으로 사람들과 소통을 꿈꾸는 김지호 군. 본인의 음악으로 마음이 다친 사람들을 치유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우)김지호 군은 노래뿐 아니라 드럼, 미림바, 피아노 등의 악기도 연주한다. 점자 악보를 읽기도 하지만 음악을 들으면 외워서 따라하기도 한다.
그녀가 정말 예쁘지 않나요
Is not She Lovely - Stevie Wonder
서서히 음악생활에 자리를 잡기 시작할 때쯤 지호 군의 인생을 바꾸는 또 한 번의 계기가 찾아왔다. SBS TV 프로그램 ‘스타킹’에 출연해 ‘You Raise Me Up’과 ‘I Believe I Can Fly’ 등을 부르며 화제가 된 것이다.
“2년 전 12월쯤이었을 거예요. 어느 대학에서 여느 때처럼 공연을 선 보였죠. 그것을 본 방송 관계자분이 제게 섭외 요청을 하셨어요. 결국 지난 해 어린이날 특집으로 저희 학교의 중창단 ‘빛소리중창단’과 함께 스타킹에 출연해 대회를 펼쳤죠. 그 결과 1,2,3 연승을 했고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지호 군은 그가 속한 ‘한빛브라스앙상블’에서 메인 포지션이 드럼, 미림바, 피아노 등 타악기 연주였다. 스타킹 출연 이후 가수로 더 알려지게 된 것이다.
지호 군은 당시만 해도 클래식을 전공할지 실용음악을 전공할 지 갈등 중이었다. 가수들이 인기를 얻는 것을 보면서 실제 무대에 올라 노래하며 인기를 얻는 상상을 해 보기도 했다. ‘스타킹’의 영향으로 대중들에게 점점 인기를 얻게 됐고, 여기저기서 섭외도 많이 들어왔다. 지호 군에게 꿈만 같은 나날이었다. 이듬 해 여름, 다른 단원들과 함께 그룹 사운드 ‘블루오션’을 결성, 앨범을 발표하고 본격적으로 대중음악계에 도전장을 냈다. “당시 목표는 앨범 100만 장을 돌파였어요. 그런데 ‘블루오션’ 이 앨범 낼 때, 서태지도 함께 음반을 발표했죠. 적지 않은 타격을 미쳤어요.(웃음) 지금도 꾸준히 사랑을 받긴 하지만 아직까진 미약합니다.”
블루오션의 1집 타이틀곡은 ‘다만’이라는 곡으로 지호 군 특유의 말하듯이 부르는 창법이 마치 음악으로 소통을 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특히 가사 중에 ‘너 없이 단 하루도 어느 하나도 꿈꿀 수가 없어서’라는 대목은 마치 지호 군과 블루오션 멤버들이 음악에 대한 열정과 사랑을 표현한 듯한 느낌을 준다.
‘스타킹’ 출연으로 대중들에게 점점 인기를 얻은 김지호 군은 제2의 음악인생을 꿈꾸기 시작했다.
당신이 나를 일으켜 주기에
You Raise Me Up - Westlife
바다처럼 넓고 깊은 꿈을 품은 지호 군은 앨범 발표 후 더욱 활발한 음악 활동을 펼쳤다. 그의 음악으로 지친 사람들에게 위로가 돼 주는 사람이 되고 싶은 게 그의 둘째 소망이기 때문이다.
“노래는 말하는 것에 선율을 붙이는 거잖아요. 관객들과 의사소통하는 매개체이고요. 저희의 공연을 보고 힘을 내고 희망을 가졌다는 분들이 많이 계세요. ‘다만’이라는 가사 중에 이런 부분이 있어요. ‘우리가 가는 낯선 이 길이 많이 힘들 수도 있어요. 잘 견뎌내야 해’라고요. 제가 부른 노래와 제가 한 연주가 힘든 삶에 지친 사람들을 치유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고등학교 2학년인 지호 군의 음악철학은 여느 어른의 인생관보다 또렷했고 성숙했다.
그러던 지호 군에게 또 다른 시련이 찾아 온 것은 지난해 말. 지호 군에게 갑상선 암이 찾아왔다. 목을 써야 하는 그에겐 치명적인 절망이었다.
“원망이야 이루 말할 수 없었죠. 수술을 하려면 성대 신경을 안 건드릴 수 없었거든요. 수술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갈등했었습니다. 갑상선은 비교적 ‘착한 암’이라고 하니 스스로 낫기를 바라기도 했고, 무엇보다 그 겁나고 지겨운 수술을 또 받는 게 두려웠거든요. 그런데 임파선으로 전이가 됐고, 합병증이 올 수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용기를 내고 수술을 했습니다.”
수술 결과 놀랍게도 지호 군의 목소리는 살아있었고, 당분간 무리하지 않으면 예의 그 고운 목소리로 다시 노래할 수 있다. “아버지가 늘 제게 해주신 말씀이 있어요. ‘감사하는 마음으로 겸손하게 살아라’. 늘 가슴에 새겨 두고 살았어요. 제 목소리가 다치지 않아서 얼마나 감사했는지 몰라요.”
난 날 수 있다고 믿어요
I Believe I Can Fly - R. Kelly
“혼자 있을 때는 책을 읽거나 음악 연습을 해요. 가장 존경하는 인물은 ‘링컨’이에요. 다른 사람의 말을 들어주는 겸손한 자세를 보고 감명을 받았거든요. 또래들과 있을 때는 ‘골볼’이라고 하는 시각장애인 스포츠를 즐기고요, 연애도 관심 있죠. 얼굴 예쁜 것보다 마음씨 곱고 잘 웃을 줄 알고 이해심 많은 사람이면 좋겠어요.” 공연하고 연습도 하고 학과공부도 하면 힘들지 않느냐는 질문에 즐기자고 생각해서 그런지 힘든 건 잘 모르겠다는 지호 군. 그가 제일 감사하는 분들은 영어선생님을 비롯해서 깨달음을 준 학교 선생님들이란다. 그의 꿈인 세계적인 뮤지션이 되려면 영어를 못하면 안 된다고 충고해주고 계속 꿈을 북돋아 주기 때문이라고.
“블루오션이란 푸른 바다잖아요. 전 세계를 항해해 보자는 의미에서 이름 짓게 됐어요. 제꿈은 한국의 스티비 원더(Stevie Wonder)예요. 스티비 원더처럼 노래하면서 연주도 하는 글로벌 뮤직 엔터테이너가 되는 게 최종 목표고요.”
사는 건 녹록하지 않다. 감사한 시련 덕이다. 불시착한 운석을 두고도 불운의 조짐이라 여기며 “하필…”이라고 원망하는 이가 있고, 길조의 계시라 여기며 고맙게 맞아들이는 이가 있다. 전자는 헛발을 짚고도 운석을 탓하고, 후자는 100원을 줍고도 운석 덕이라 한다. 전자가 될지 후자가 될지 선택의 몫은 바로 자기 자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