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내가 백수가 된다면
이미 알고 있었거나 한번이라도 TV에서 본 적이 있다면, 누구나 직접 만나고픈 충동을 일게 하는 이가 있다. 바로 주덕한 씨다. 한창 PC통신이 활발하던 시절, 가벼운 마음으로 ‘전국백수연대’를 만들고 ‘청년실업극복사업, 취업상담 및 일자리 창출’ 을 목표로 서울시의 인증까지 받아 10년 가까이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주덕한 씨는 현재 2가지 타이틀을 가지고 있다. 하나는 전국백수연대 대표 그리고 또 하나는 독도쿠키사업단 단장이다.
전국백수연대 주덕한 대표
전국백수연대는 말 그대로 백수들의 단체며, 독도쿠키사업단(www.dokdocookie. com)은 독도가 우리 땅임을 홍보하기 위해 독도모양의 만주와 독도글씨가 새겨진 쿠키를 팔아 수익금을 독도 홍보에 사용하는 단체다. 어쩜 이렇 게 전혀 다른 느낌의 단체에 한 사람이 대표로 있을 수 있을까 궁금하다. 하지만 전국백수연대에 관한 오해가 풀린다면 이해도 쉽다.
백수연대는 백수들끼리 만나서 어떻게 하면 백수로서 잘 놀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단체가 아니다. 이들은 청년실업에 대해 고민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대책을 논의한다. 또 취업을 알선해주기도 한다. 그러나 직업의 세계를 잘 모르면서 취업상담을 해줄 수는 없는 일, 그래서 대표인 주덕한 씨는 상담을 위한 취업에 나서기도 했다. 기업체 취직은 물론, 가사도우미, 막노동, 출장요리사 등 다양한 업종을 섭렵했다. 한때는 역사학자를 꿈꾸기도 해 대학에서 사학을 전공했지만, 인생이 꿈꾸는 대로만 흘러가는 게 아님을 알게 됐다. 그리고 백수연대를 통해 ‘취업이 안 되면 창업이라도 하자, 일자리를 창출하면 백수는 줄어들 것이다’라는 뜻에서 의미 있는 독도쿠키 만드는 사업을 시작했다. 물론, 백수들과 함께.
해산을 목적으로 하는 백수연대는 진지한 모임이 아니다.
그러나 백수에 대한 오해가 있는 사람에겐 반드시 찾아가 할 말을 다하고 온다.
당신 머리에 백조가 달린다면
그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백조모자는 일본 백수연대 모임에 참석차 갔을 때 코스프레 이벤트에 참석하기 위해 구입한 것이다. 백조는 백수의 상징이니 자연스레 백조에 대한 이야기로 화제가 옮겨지면 백수연대를 홍보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서다. 백수연대 대표라는 것도 황당한데 머리에 백조까지 달고 다닌다니, 사람들의 반응은 당신과 같다. 대체 어떤 사람인 것일까? 주덕한 씨는.
자신도 안다. 사람들의 시선을. 때론 무수한 댓글들을 보며 가슴 아프기도 했다. 하지만 주변 시선을 의식하면서 살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학교 다니고, 취업하고, 결혼하고, 아이 낳고 하는 정석대로의 삶이 옳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물론 처음부터 이렇게 오랜 시간을 백수들의 대표로 존재할 생각은 아니었다. 그러나 탈 백수에 성공해 떠나가는 백조들을 뒷받침하며 열심히 물 밑에서 발버둥 치는 법을 알려주는 역할도 꼭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직장인들도 때론 이직을 하거나 실직을 경험한다. 대부분 한번쯤은 백수일 때가 온다. 이때 ‘나만 힘든 것이 아니라 백수연대가 있는 것을 보니 많은 백수가 있구나, 어서 빨리 힘내야지’ 생각하는 것만으로 존재의 이유는 충분하다고 말한다. 그러고 보니 심각한 건 백수연대가 아니라 가벼운 이야기를 논쟁으로 이끌어 진지해진 사람들이 아닐까 싶다. 아마 직접 만나보지 않았다면 이 사람이 얼마나 편견이 없는 사람인지, 얼마나 잘 웃는 사람인지, 얼마나 작은 얼굴을 가지고 있는지 전혀 몰랐을 것이다. 그러니 잘 알지 못하고 이해되지 않는다고 해서 너무 진지해지지 말자. 세상은 서로 다른 너와 내가 만드는 곳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