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주의 살림가 이효재
누군가 이효재를 가리켜 ‘일상의 길에 어여쁜 꽃을 심고 싸리비질을 하는 사람’ 이라고 소개한 적이 있다. 맞는 말이다. 살림에도 예술의 경지가 있다. 소소한 일상에 쏟아 붓는 이효재의 정성은 자연과 닮았다. 자연스럽고 아름답되 지극히 실용적이고 허례허식이 없다. 머리를 옆으로 묶는 것도 실용주의다. 꽉 찬 하루하루를 사는 자신이 잠깐씩이라도 졸기 위해서는 이 머리가 최적이란다. 뒤통수에 묶으면 배겨서 못 존다는 너스레에 미소가 고였다.
“어려서부터 예쁜 걸 좋아했어요. 엄마의 뜨개옷을 풀어 그 실로 동생 옷을 떠주곤 했지요. 김치전을 예쁘게 부치고 싶어서 미나리 싹을 따로 키운 적도 있어요. 친구네 엄마가 마루에 물을 끼얹어 불렸다가 때를 벗기는 신기한 장면을 보고는, 집에 와서 마루 사이사이의 때를 후벼 판 적도 있고요. 어른들 따라 하던 습관이 재산이 된 거죠.”
어릴 때부터 먹는 것, 집 꾸미는 것에는 그리 유난을 떨더니, 커서도 무엇 하나 바지런을 떨지 않으면 안 되는 주부가 됐단다. 그래서일까. 이효재의 살림살이를 들여다보면 남다른 감각과 솜씨에 절로 탄성이 난다. 기실 따지고 보면 별것 아니다. 새 거울 사려니 너무 비싸서 쓰던 거울의 가장자리에 한지를 붙여 꾸몄고, 이사 온 집에 있는 에어컨이 보기 싫어서 광목을 씌우고 자투리 천으로 커버를 덧댄 식이다. 기왕이면 좀 더 싸고 예쁘고 실용적으로 꾸미려고 품을 팔았더니, 찾아오는 모든 사람들이 “나도 저렇게 만들어 달라”고 주문한단다. 지난해에는 교황의 방한 기념선물을 직접 꾸며 화제가 됐다. 이효재는 각종 드라마 의상 제작을 비롯해 한류스타 배용준의 책 <한국의 아름다움을 찾아 떠난 여행> 공동작업, 폭스바겐 자동차를 보자기로 싸는 환경재단 문화 퍼포먼스, 패션 디자이너 이세이 미야케와의 컬래버레이션 전시 등등 참으로 다양한 행보를 이어오고 있다. 세상의 규칙과 규범에 의존하지 않고 다수의 의견을 맹목적으로 좇지 않는 이효재는 끝없이 질문하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놓는다. 정답이 아니더라도 줄기차게 엉뚱한 질문을 던지는 것이 더욱 즐거운 인생을 사는 묘책이라고 말하는 그녀의 표정이, 난생처음 살림의 재미에 눈뜬 소녀처럼 들떠 보인다.
의식주에 담긴 일상을 디자인하다
입산 이후 이효재의 삶은 훨씬 더 흥미로워졌다. 늘 ‘왜 안돼?’라는 반문을 던지며 더 나은 방법을 찾아내는 그녀는 어제도 창고 구석에서 발견한 문짝으로 근사한 테이블을 만들었다.
“제 일과 중 하나가 창고 뒤지는 거예요. 뭔가가 버려져 있다는 걸 못 견디거든요.(웃음) 세상에 쓸모없는 것은 하나도 없어요. 보잘 것 없고 소소한 존재에서 새로운 쓰임으로 새 생명을 얻을 무언가를 발견하는 기쁨이란! 제게는 저 창고가 그야말로 보물창고라니까요.” 리조트 구석구석 돌아다니며 튼튼하고 보기도 좋은 테이블 받침도 구해왔고, 시장에서 발견한 3천 원짜리 빨간 의자로 포인트도 줬다. 덕분에 휑하던 공간이 몰라보게 달라졌다. 오늘 오전에 선물 받은 꽃으로 꽃꽂이까지 해놓으면 찾아오는 사람들이 얼마나 좋아할까 생각하니 “긴말 할 것 없이 당장 해놔야겠다” 는 말에 들뜬 마음이 가득 묻어났다. 호호할머니가 될 때까지 다정다감한 이웃이자 바지런한 살림꾼으로 살겠노라는 꿈은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묻고 답하는 동안 만들어졌다.
“제가 하는 일이 많은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드러난 것뿐이에요. 누구나 저처럼 여러 가지 일을 하잖아요. 모르긴 몰라도 디지털포스트 독자 여러분도 저보다 훨씬 더 바쁘게 살걸요? 다만 저는 시간을 어떻게 쓰느냐를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해요. TV가 아닌 나 자신과 대화하면서 내가 얼마나 몰입했고 허튼소리 안 했는지를 돌아보고요.”
한국을 넘어 세계적으로도 널리 알려진 유명인사가 됐지만, 정작 이효재는 TV나 신문, 인터넷을 가까이하지 않는다.남 얘기에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세상 소식과 담을 쌓고 사는 덕분에 그녀의 세상은 항상 조용하다.
“우리 집에 오는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줬는지 아닌지를 기준으로 매일 나를 돌아봅니다. 제게는 그게 세상이니까요. 제가 내는 밥상은 1식 3찬이 기본인데, 소탈하지만 어느 것 하나 맛있지 않은 게 없는 밥상을 차리려고 노력해요. 밥을 뜰 때도 공을 들이고, 김치 담는 각도도 어떻게 해야 아름다운지 이리저리 따져 봐요. 그 밥상을 받고 어떤 분이 ‘캬! 밥이 예술이네!’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어요. 제 마음을 알아주신 거죠. 그걸로 충분한 것 아닌가요?“
‘본받는 집’이라는 뜻을 담은 자신의 이름처럼, 이효재는 ‘간결하면서 극진하게, 그리고 아름답게’ 우리네 이웃의 삶을 풍요롭게 가꾸고 있는 참이다.
이제, 더 큰 효재네 마당에서
최근 이효재는 리솜포레스트와 손잡고 충북 제천에 친환경 자연주의 문화 콘텐츠를 선보였다. 리솜포레스트 문화디렉터로 위촉된 이효재는 리조트의 자연과 문화 콘텐츠를 디자인하고, 자신이 직접 운영하는 ‘효재네 뜰’에서 다양한 문화이벤트를 진행한다. ‘타잔처럼 살기’라는 오랜 꿈을 이뤘으니 하루하루 신이 나서 일한단다. “도시에 살 땐 잘해야 타잔의 여자친구 같다는 기분이 들었는데, 여기선 내가 타잔이라는 생각이 든다”는 말에 힘이 실렸다.
들판에 널린 잡초처럼 평범하다더니, 타잔처럼 훨훨 날아오를 태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