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배가 도착했다는 문자를 받고 얼른 현관문부터 열었다. 커다랗고 하얀 스티로폼 박스, 친정엄마가 보내셨다는 걸 한눈에 알 수 있었다. 박스 주변에 둘러진 초록색 테이프와 검은색 매직으로 삐뚤빼뚤 큼직하게 쓰여있는 내 이름만 봐도 틀림없었다. 엄마의 택배는 늘 배달기사님께 미안해질 만큼 무겁다. 끙끙거리며 집 안으로 끌고 들어와 조심스레 뜯었다. 텃밭에서 직접 기른 채소들과 열무김치, 오이소박이, 볶은 깨, 멸치
조림, 연근조림 그리고 한구석에 신문지로 곱게 싼 참외들까지 모두 ‘엄마표’였다.
“엄마, 뭐 이래 많이 보냈노? 밑반찬은 안 보내도 된다 했제.
내도 다 할 줄 아는데, 엄마 힘들구로.”
“야야, 내사 심심해서 함 만들어봤다. 넣어놓고 잘 무라.”
타지에서 엄마에게 처음 택배를 받은 건 아이를 임신했을 무렵이었다. 한창 입덧으로 힘들었을 때, 직접 짠 참기름에 무친 나물 반찬을 잔뜩 먹고 기운을 차렸다. 아이가 어릴 땐 뻥튀
기들도 왔었고, 여름엔 물김치, 겨울엔 무말랭이, 손질한 나물부터 얼린 고디국까지. 내용물은 달라도 항상 똑같았던 건, 그 모양새였다. 엄마의 택배는 늘 '터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김치해서 보내줄게'로 시작했는데, 나는 많고 너는 없을지도 모를 '일회용 장갑'도 들어있고 지나가다 몇 벌 사둔 ‘땡땡이 파자마'도 나오고, 홈쇼핑으로 샀더니 많다고 좀 나누자는 화장품도, '비싸게 주고 샀는데 나한테는 작고 너한테는 딱 맞을' 외
투도 있었다. 엄마의 꾸러미엔 이유와 사연도 많았다. 간혹 내가 좋아하는 반찬이 동생 네로 간 적도 있고 동생이 잘 먹는 오이지가 내게 더 많이 올 적도 있다. 그럴 때면 “이제 나도 늙는 갑다. 너거 좋아하는 것두 헷갈리고.” 그러며 한바탕 웃으셨다.
’딩동‘, 카톡이 왔다. ‘딸! 하나도 버리지 말고 잘 무래이~.’ 엄마의 문자에 나는 인증샷으로 화답한다. 살림 경력만 20년이다 돼가는 데도 여전히 밑반찬을 보내주시고 어릴 적 좋아했던 음식들을 정성스레 싸 주시는 친정엄마가 계시다는 사실에 새삼 너무 행복하고 감사해지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