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스럽게 삶을 사는 데에는 정말 품이 많이 드는 것 같아’ .밖으로 한강이 보이는 7호선을 타고 집에 오다가 그런 생각을 했다. 나는 이마를 창에 푹 박고 한강을 바라봤다. 내가 영화를 찍는다면 이마를 창문에 박고 한강을 바라보며 귀가하는 좀 전의 나 같은 등장인물을 전철 바깥에서 찍은 장면을 꼭 넣고 싶다고 생각했다. 생각도 감정도 없는 갱지 같은 상태의 인물을 담기에 좋은 느낌일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곧장 그게 얼마나 현실성이 있을까를 생각해 보게 됐는데, 영 어려울 것 같았다.
한강을 건너며 듣던 노래도 끄고 잠시 생각에 몰두했다. 그리고 내린 결론은 관객은 흘릴 법도 한 1분 남짓의 영화 속 한 장면도 잘 찍으려면 품이 많이 든다는 생각이었다. 내가 봤던 많은 영화에도 비슷한 장면이 나왔을 테고, 나는 그걸 다 잊은 것 같은데 이렇게 정성 들여 촬영했겠구나 싶었다.
이렇게 정성을 들인 장면들이 모여서 두 시간짜리 영화가 탄생했단 걸 생각하니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이 대단했다. 모든 장면에는 의도가 있을 텐데, 그 의도를 살리기 위해 무수히 많은 노력이 이뤄지고 있었구나.
나아가서 생각하니 두어 시간 남짓 흘러가는 영화도 그렇게 정성과 품이 많이 드는데 잘 살아가는 것도 참 정성이 많이 들어가는 게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끔 정신없이 살다가 중간에 멈추기라도 하면 ‘내가 무얼 위해 이렇게 힘들지?’라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당연한 과정일 수도 있단 생각이 들었다.
일에 정성을 들이는 것도 참 어렵고, 사람에게 집중해 그에게 정성을 들이는 것도 참 품이 많이 드는 일이다.
나를 지치게 하는 게 너무 많을뿐더러 나도 나를 신뢰하지 않을 때도 있다. 심지어는 결과나 응답이 늘 예상만큼 돌아온다는 법도 없어 주기적으로 긍정과 용기 필터를 스스로 주입해야 한다.
잘 살기 위해선 이렇게 힘이 많이 들고, 겁도 나고 심지어 스스로 실망도 하는 나지만 그럼에도 정성을 다할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 왜인지는 모르겠다. 그냥 그렇게 하고 싶다.
그래. 거대한 쭉정이가 되느니 잘 영근 완두콩이 되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