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 군대에서 휴가 나왔을 때 일이다. 휴가 나오기 며칠 전, 친구의 편지를 받았다. 친구 아버지가 대학병원에 입원하셨는데, 휴가 나가면 자기 대신 아버지께 꼭 좀 들러달라는 내용의 편지였다.
나는 휴가를 나왔고, 친구 아버지께 문병 가는 날이었다. 문병을 가려면 뭐라도 사 가지고 가야 했다. 미안한 얼굴로 어머니에게 돈을 좀 달라고 했다. 집안 형편이 어렵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어머니는 돈이 없다고 했다. 친구 아버지께 문병 가는데 꼭 뭘 사가야 하느냐고, 어머니가 내게 말했다. 그렇게 말하는 어머니를 이해할 수 없었다. 잠시 속앓이를 하다가, 우리 집은 왜 이렇게 가난하냐고 어머니에게 퉁명스럽게 말했다. 어머니는 아무 말이 없었다. 어머니 눈에 눈물이 맺혔다.
병원에 가고 싶지 않았지만 친구 얼굴이 생각나 그럴 수도 없었다. 빈손으로 병원에 갔다. 병실에 있는 친구 누나에게 미안했다. 집으로 돌아온 뒤, 남은 휴가 기간 내내 어머니를 데면데면 대했다. 가난한 집안 형편도 싫었고, 그것을 불평하는 나도 싫었다.
부대로 복귀하는 날, 어머니는 담담한 척 슬픔을 누르고 있었다. 어머니는 만 원짜리 세 장을 내 손에 쥐어주었다. 어머니가 내게 미안하다고 했다. 어머니가 돈을 빌리기 위해 옆집에 다녀왔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어머니는 시외버스터미널까지 함께 가고 싶다고 했다. 나는 시큰둥한 모습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시외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표를 끊고 승강장으로 나갔다. “걱정 마세요. 다녀올게요.”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나는 얼른 버스에 올랐다. 창가에 앉아 밖을 내다보았다. 버스가 출발할 시간이었다. 사람들 사이에 있던 어머니가 보이지 않았다. 여기저기 살펴보아도 어머니는 없었다.버스가 출발하려고 시동을 걸었다. 그 순간 창밖으로 어머니가 달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번쩍 든 어머니 손에 계란과 사이다가 들려 있었다. 시외버스 조그만 창문을 열고 손을 길게 뻗었다. 어머니가 건네주는 것들을 가까스로 받았다. 처연하게 나를 바라보는 어머니 얼굴이 점점 멀어졌다. 어머니 얼굴이 흐리게 보였다.
차창 밖 들판을 바라보며 어머니가 주신 계란을 먹는데 자꾸만 목이 메었다. 어머니 얼굴이 생각나 목보다 마음이 먼저 메었다. 애써 창밖을 바라보았지만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시외버스에서 내려 부대로 들어가기 위해 산길을 걸었다. ‘꺅꺅꺅꺅’. ‘꺅꺅꺅꺅’. 숲 속을 걷는데 까치 울음소리가 요란했다. 까치들이 호들갑을 떨며 졸참나무 위를 이리저리 날아다니고 있었다. 까치들 날갯짓에 커다란 나뭇잎만 떨어져 내렸다.
나무 위에서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둥지를 빠져나온 새끼까치 한 마리가 높은 나뭇가지 끝에 서 있었다. 겁먹은 새끼까치는 조그만 몸을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비행 연습이 아니었다. 엄마, 아빠까치는 새끼까치 주위를 날아다니며 안절부절못했다. 몸집이 제법 큰 새끼라서 어미까치는 입으로 물어 올릴 수도 없었고, 다리로 안아 올릴 수도 없었다.
‘꺅꺅꺅꺅’. ‘꺅꺅꺅꺅’. 다급한 울음소리를 내며 근처 사는 까치들도 하나둘 모여들었다. 열 마리도 넘는 까치들이 이 나무에서 저 나무로 분주히 날아다녔다. 졸참나무 커다란 잎사귀들이 하르르 하르르 땅위로 떨어져 내렸다. 애꿎은 나뭇잎만 수북이 떨어져 내렸다.
가지 끝에 앉아 있는 새끼까치가 중심을 잡으려고 날개를 파닥거렸다. 새끼까치의 중심은 무너질 듯 무너질 듯 무너지지 않았다. 새끼까치는 둥지로 돌아갈 수도 없었고, 하늘로 날아오를 수도 없었다. 아! 새끼까치가 나무에서 떨어졌다. 날갯짓도 제대로 못하고 땅으로 곤두박질쳤다.
새끼까치는 무사했다. 어른 까치들이 나무 아래 떨어뜨려 놓은 푹신한 나뭇잎들이 있어서 새끼까치는 다치지 않았다. 새끼까치를 구하려고 어른 까치들은 죽을 힘을 다해 나뭇잎사귀를 흔들었다. 나무를 흔들어 커다란 나뭇잎을 땅 위에 수북이 떨어뜨려놓았다.
부대로 가는 길에 만난 까치들을 보며 내 어머니를 생각했다. 휴가 기간 동안 어머니를 데면데면 대했던 게 몹시 후회스러웠지만 돌이킬 수 없는 일이었다.
오래 전 일이지만 그 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마음이 아프다. 한참 후에 알게 된 일이지만, 어머니는 내가 부대로 복귀하던 날, 세 시간을 걸어서 집까지 가셨다. 막내아들에게 계란과 사이다를 먹이기 위해 어머니는 당신의 전 재산을 지불하셨다.
바람개비를 돌아가게 한 건 바람이 아니었다. 바람개비를 돌아가게 한 건 바람개비의 구멍 뚫린 가슴이었다. ![](/upload/logo_r[670][699].p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