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싸움
고등학교 졸업 후 2년 동안 은행에 근무한 것이 사회생활의 전부인 아내가 작년 초부터 미용사 자격증을 딴다고 학원을 다니느라 아이도 처갓집에 자주 맡기고 집안일도 등한시 하는 것 같아 싸우는 일이 잦았다. 자격증을 딴다고 어디 취직할 것도 아니며, 그렇다고 모은 돈이 있어 미용실을 차릴 형편도 안 되고, 적지 않은 나이에 누구 밑에서 일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임을 요목조목 지적했지만, 아내는 그저 막무가내이다. 다른집 남편들은 아내들이 자기계발한다면 물심양면 후원하는데, 그러지는 못할망정 왜 면박만 주느냐는 식이었다.
사실 아내가 미용학원을 다닌다고 해서 특별히 집안 사정이 예전보다크게 안 좋아지고, 아이 성격이 바뀐 것도 아니지만 내심 괜스레 마음이 불안했던 것은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그렇게 학원에 다니기를 몇 달, 올 봄 아내는 미용사 자격증을 딸 수 있었다. “자격증도 땄겠다. 그동안 나간 학원비는 보충해야 되지 않겠어.”따뜻한 마음으로 축하해 주기보다는 그저 비아냥거리듯 이야기했지만, 그래도 남편의비협조적 태도 등 갖은 악조건 속에서도 보란 듯이 자격증을 따낸 아내가 한편으로는 자랑스러워 보이기도했다.
그러기를 또 얼마가 흐른 후 다섯 살 먹은 아들에게서 엄마가 일주일에 한 번씩 미용도구를 들고 어디로간다고 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드디어 돈 좀 벌어 오는 건가? 가계에 보탬이 되는 거야 좋지만, 한편으로는 내가 남편 역할을 잘못해서 벌어지는 현상은 아닌지 하는 자책감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아내는 돈을 벌기보다 더 뜻 깊고 숭고한 일을 하기 위해 그리도 열심히 미용학원을 다녔던 것이다. 일주일에 한 번씩 노인회관이나 독거노인들을 찾아가 이발 서비스를 한다는 반상회보 기사의 명단에아내의 사진과 자랑스러운 이름이 적혀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런 아내에게 칭찬과 격려는 못해줄망정 구박과 핀잔만을 일삼았으니, 참으로 내 자신이 부끄러울따름이다. 한편으로는 내가 이렇게 멋진 여자의 남편이라니 참으로 복도 많다는 생각도 든다.
아내들에게도 삶의 긍지와 보람을 느낄 만한 인생의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마음을 열고 여유를 가졌으면 하는 바람으로, 내 이야기가 수많은 남편들에게 반면교사가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