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산은 일제강점기 일본인을 위한 도시로 개발됐다. 작은 포구에 지나지 않았던 군산은 일제강점기, 일본인이 호남평야에서 생산된 쌀과 물자를 일본으로 실어 나르는 항구로 개발하면서 번성한다. 하지만 해방 후 쌀의 수송이 끊기면서 자연스럽게 퇴락하기 시작한다. 일본인들이 많이 살았던 도시답게 도시 곳곳에 적산가옥이라 불리는 일본식 목조기와 건물과 근대 서양양식의 건물들이 많이 남아있다.
식민지 시절의 근대를 걷다
군산 내항이 자리했던 장미동에는 근대문화유산 거리가 만들어져있다. 장미동은 꽃 이름이 아니라, 쌀을 저장(장미·藏米)하는 마을이라는 뜻이다. 호남평야의 쌀이 정미소에서 가공돼 일본으로 송출되고 금융조합을 통해 돈으로 환산돼 유통되던 과거의 흔적과 현재가 공존하고 있다. 몇 해 전만 해도 이 일대는 버려진 듯 어수선했지만 지금은 산뜻하게 재단장했다. 방치되어 있는 듯 위태롭게 서 있던 건물들은 새 옷으로 갈아입었다. 옛 조선은행 군산지점 건물은 ‘근대건축관’으로 바뀌었는데, 1922년 건립된 이 건물은 식민지 경제수탈을 위한 대표적 금융기관이었다. 해방 이후 한국은행, 한일은행의 군산지점으로 변했다가 유흥주점 간판이 달린 적도 있었지만, 지금은 군산시가 매입해 근대건축관으로 꾸며졌다. 제18은행 군산지점은 근대미술관으로 탈바꿈했고, 일본 농장주들이 쌀을 수탈해 저장했던 시마타니농장의 창고는 다목적 소극장으로 변신했다. 그리고 해방 이후 위락시설로 활용됐던 적산가옥은 장미갤러리로, 일제강점기 무역회사 미즈상사의 건물은 미즈카페로 복원됐다.
이들 여러 건물 가운데 가장 돋보이는 건 구 군산세관 건물이다. 1908년 지어졌다. 1990년대까지 실제 세관 건물로 사용됐지만 지금은 군산의 100년 역사를 알려 주는 사진들과 물품을 전시하고 있다. 영화 속에나 나올 법한 고풍스러운 건축물이다 보니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배경으로 기념 촬영을 한다. 외벽은 적벽돌로, 지붕은 동판으로 얹었는데, 1908년 대한제국이 벨기에로부터 붉은 벽돌과 건축자재를 수입해 지었다고 전해진다. 서울에 있는 서울역사, 한국은행 본점과 함께 국내에 현존하는 서양 고전주의 3대 건축물로 꼽힌다.
세관 옆에 자리한 군산근대역사박물관에도 가보자. 군산의 근대문화와 해양문화를 테마로 설립됐다. 수탈지로서의 군산의 아픈 역사와 시대적 배경을 배울 수 있는 곳이다. 군산여행 시작에 앞서 들러볼 만하다. 근대의 흔적은 빵집에서도 찾을 수 있다. 중앙로 1가 옛 시청 건물 맞은편에 자리한 이성당은 일제 강점기인 1920년대 일본인이 운영하던 ‘이즈모야’라는 화과점에서 출발했는데, 1945년 해방 직후 한국인 이 모씨가 가게를 인수하면서 이성당으로 간판을 바꿔 달았다. 이성당은 ‘이(李)씨 성(姓)을 가진 사람이 운영하는 빵집(堂)’이라는 뜻. 그러다 지난해 작고한 오남례 씨 부부가 사들여 운영했고 지금은 오씨의 며느리 김현주 씨가 운영하고 있다. 지방 소도시에 있다고 작고 한적한 빵집을 상상했다면 큰 오산이다. 오전 10시 무렵인데도 빵집 안은 빵을 사러 온 사람들로 가득하다. 그들이 들고 있는 쟁반에는 단팥빵과 야채빵이 가득 담겨 있다. 이성당의 최고 인기메뉴는 단팥빵과 야채빵이다. ‘단팥빵이 거기서 거기지’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가 직접 먹어보면 ‘아! 역시’하고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100% 쌀가루 반죽에 달지 않고 부드러운 단팥을 잔뜩 넣었다. 각종 야채를 고소한 소스에 버무려 속을 채운 야채빵 역시 겉을 싼 빵보다 속이 더 많다. 아침 7시 30분부터 3시간마다 나오는데 나오자마자 매진이다.
군산은 일본인들이 많이 살았던 도시답게 적산가옥이라 불리는 일본식 목조기와 건물과 서양양식의 건물이 많이 남아있다. 근대 문화를 가까이서 둘러볼 거리가 조성되어 있다.
영화 촬영지로도 인기
이성당에서 십여 분 걸어가면 히로쓰가옥이다. 군산에서 큰 포목점을 하며 돈을 벌었던 히로쓰가 지은 건물로 일본 무사들의 고급주택인 야시키 형식의 대형 목조주택 형식으로 지어졌다. 전형적인 다다미방과 편복도, 일본 붙박이장인 오시이레와 손님을 맞는 도코노마 등 대규모 일식 가옥의 형태를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재미있는 사실 하나가 있다. 마룻바닥을 걷다 보면 유난히 삐걱거리는 소리가 크게 나는 지점이 있다. 이곳이 바로 히로쓰의 방문 앞이다. 이는 무사 가옥의 특징인데, 삐걱거리는 소리는 자객의 침입을 알려주는 역할을 한다고 한다. 히로쓰 가옥은 임권택 감독의 영화 <장군의 아들>에서 야쿠자 두목 하야시의 집으로 등장하기도 했다. 영화 <타짜>에서 극 중 백윤식이 조승우에게 ‘기술’을 가르치던 집도 바로 이곳이었다. 히로쓰가옥은 우리나라에 있는 일본식 가옥 가운데 현존하는 가장 뛰어난 건물로 평가받고 있다.
히로쓰가옥을 지나면 동국사에 닿는다. 우리나라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일본식 사찰이다. 정면 5칸, 측면 5칸, 가파른 단층식 팔작지붕을 이고 있는 이 절은 다다미로 만든 대웅전과 요사채가 함께 있어 우리나라의 사찰과는 전혀 다른 느낌을 준다. 시인 고은이 머리를 깎고 불교에 입문한 사찰이기도 하다. 대웅전 뒤편에는 일본 대나무가 무성한데, 원래 이름은 금강에서 따온 금강사였으나 해방 후 동국사로 바꿨다. 대문 기둥에 금강사라 쓰인 문패가 남아 있다.
군산의 이런 독특한 분위기 때문인지 많은 영화를 찍었는데, 대표작이 한국 멜로영화의 역사에 남을 ‘8월의 크리스마스’다. 영화의 대부분을 군산에서 촬영했는데, 월명공원으로 가는 언덕 길목에 영화를 촬영한 초원사진관이 그 모습 그대로 남아있다. 역시나 1970년대 풍경이 그대로다. 길은 초원사진관에서 해망굴로 이어진다. 군산이 개항되면서 건축된 대표적인 토목 시설이다. 한국전쟁 때는 인민군 지휘소로도 쓰였다. 당시의 긴박했던 상황을 짐작하게 하는 총알 자국이 아직도 선명하다. 현재 차량 진입은 금지되고 보행자 통로로만 사용된다. 근처에 있는 골목길 마을은 달동네 풍경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비탈에 위태롭게 자리를 잡은 달동네지만 이곳 역시 군산의 과거를 대변하는 상징적인 곳이다.
1970년대 풍경을 그대로 간직한 군산. 옛 정취가 그대로 남아 영화의 배경으로 자주 등장하기도 한다. 동네는 낡고 바랬어도 추억은 여전하다.
마을 사이로 철길이 흐르고
오직 군산에서만 만날 수 있는 풍경을 지닌 곳이있다. 군산 이마트 건너편에 있는 경암동 철길마을로 낡은 판잣집들이 양편으로 늘어서 있고 그 가운데로 철길이 놓여있다. 벽에는 빨래가 걸려있고 문밖에는 시든 화분이 놓여 있다. 누군가 버리고 간 자전거도 벽 한쪽에 비스듬히 기대어 있다. 이런 풍경이 아직도 남아있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곳이다.
원래 경암동 일대는 바다였다. 육지로 변하게 된 것은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인들이 매립해 방직공장을 지었다. 해방 후에는 정부에서 관리했다. 황무지나 다름없었다. 땅 주인이 따로 없었기에 갈 곳 없는 가난한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모여들기 시작했다. 철길이 놓인 때는 1944년 4월 4일. 군산시 조촌동에 소재한 신문용지 제조업체 ‘페이퍼코리아’사의 생산품과 원료를 실어 나르기 위해 만들었다. 철길의 정식 이름은 페이퍼코리아선. 페이퍼코리아 공장과 군산역을 잇는다. 총연장은 2.5km다. 이 가운데 철길마을 사이를 통과하는 구간은 경암사거리에서 원스톱 주유소에 이르는 약 1.1km다.
철길이 놓이자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철로변에 빼곡히 집을 지었다. 70년대 새마을운동을 거치며 전기와 수도가 들어왔다. 원래는 국유지였지만 묵인을 해줬다고 한다. 현재 철길마을에 모여 있는 집은 오십여 채 정도. 살고 있는 가구는 서른 가구 남짓에 불과하다. 이삼 년 전만 해도 북적이던 마을은 사람들이 떠나가면서 적막해지고 있다. 마을 사람들은 토지점유의 대가로 지금도 세금을 내고 있다.
아쉽게도 지금은 기차가 다니는 모습은 볼 수 없다. 2008년 7월 1일부터 통행이 멈췄다. 5~10량의 컨테이너와 박스 차량을 연결한 디젤기관차가 오전 8시 30분~9시 30분, 오전 10시 30분~낮 12시 사이에 마을을 지났다. 시속 10km 정도의 느린 속도였다. 마을 구간에 차단기가 있는 곳과 없는 곳 모두를 합쳐 건널목이 열한 개나 되고 사람 사는 동네를 지나야 하니 빨리 달리지 못했다. 기차가 달리는 동안 역무원 세 명이 기차 앞에 타고 호루라기를 불고 고함을 쳐대며 사람들의 접근을 막았다. 기차가 지나는 사이 주민들은 화분도 들이고 강아지도 집으로 불러들이곤 했다.
“기차가 지나갈 때면 땅이 흔들렸지. 화분을 들이고 솥단지를 거두어들였어. 강아지도, 아이들도 집으로 불러들였지. 열차에 부딪혀 열어 놓은 문짝이 날아가기도 했네 그려.” 철길마을에서 만난 노인은 이렇게 말했다.집이든, 물건이든 그리고 사람이든, 쓸모가 없어진 것들은 급속도로 낡아간다. 버려진 철로에는 붉은 녹이 두껍게 덮였다. 잡풀도 무성하다. 마을 가운데 건널목에 서 있는 ‘선로로 무단 통행하거나 철도용지를 무단으로 출입하면 2년 이하의 징역이나 1천만 원 이하의 벌금’이라는 군산역장 경고문이 한 때 기차가 다녔음을 말해주고 있을 뿐이다. 철길마을을 아름답다고는 할 수는 없다. 쇠락했고, 허름하고, 남루하고 누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이곳을 찾는 까닭은 이 가난한 풍경 속에도 우리네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다정한 장면이 숨어있기 때문이리라.
만약 당신이 우리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밥이 아니라 사랑받고 혹은 사랑하고 있다는 느낌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싶다면 철길마을로 가보기를 권한다. 한나절 철길마을을 천천히 거닐어보자. 오전 10시가 넘어서야 겨우 햇빛이 들어오는 이곳에 국화를 심어놓은 화분을 문 앞으로 밀어놓는 것도, 벽 한쪽에 자전거를 비스듬히 기대어 놓는 것도, 밤이 되면 가로등 불빛이 켜지는 이유도, 창문 너머에서 텔레비전 소리와 아이 울음소리와 냄비 여닫는 소리가 흘러나오는 것도… 이 모든 일은 어쩌면 우리가 아직은 사랑받는 존재임을 증거하려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름답지는 않지만 가난하고 힘들었던 지난 시절을 다정하게 만져주는 풍경이 경암동 철길마을에는 아직 남아있다.
이제 기차는 더 이상 달리지 않지만, 그래도 여전히 사람들의 삶은 지속되고 있다. 우리가 오래된 것을 찾아 여행을 떠나는 이유는 바로 그런 사람들 삶의 따뜻한 풍경을 만나기 위해서인지도 모른다.
여행정보
가는 길
서울 센트럴시티터미널(02-6282-0114)에서 15~20분 간격(06:00~23:05)으로 군산 가는 버스가 운행한다. 약 2시간 30분 소요. 자가운전은 서해안고속도로 군산IC로 나오면 된다. 경암동 철길마을은 군산 이마트 건너편에 자리하고 있다.
가볼만 한 곳
군산시는 ‘구불길’이라는 걷기 여행코스를 조성했다. 비단강길, 햇빛길, 미소길, 큰들길, 타류길 등 6개 코스가 만들어져 있다. 이 길을 따라 걸으며 군산의 자연과 문화, 역사를 체험할 수 있다. 군산시청 홈페이지에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고려 우왕 6년인 1380년 8월, 선박 500여 척을 앞세워 쳐들어오던 왜구를 세계 해전사에서 처음으로 화포를 사용해 격퇴한 곳이 진포, 바로 군산 내항 부근의 앞바다다.
이 전투가 진포대첩이다. 진포해양테마공원은 고려 말 ‘화약의 아버지’ 최무선 장군이 화포로 이곳 앞바다에서 왜구를 물리친 진포대첩을 기념하기 위해 조성한 공원. 4080t급 위봉함을 비롯해 LVTP7 해병의 수륙양용 상륙장갑차, 자주포, 육군의 전차, T41B 훈련기, F5A 전투기, 해양경찰의 250t급 경비정 마니산 273함 등 퇴역장비들이 전시돼 있다.
맛집
고우당(063-443-1042)은 1930년대 건축 당시 원형을 살린 일본식 가옥으로 된 숙박 체험관. 카페, 편의점, 선술집, 세미나실 등을 갖추고 있다. 이성당(063-445-2772)은 오전 7시 30분부터 오후 10시까지 영업한다. 복성루(063-445-8412)는 1973년에 개업한 집이다. 우리나라 5대 짬뽕집(복성루, 강릉 교동반점, 공주 동해원, 평택 영빈루, 대구 진흥반점)으로 불리며 전국에서 손님들이 몰려든다. 오전 10시 30분에 문을 열어 오후 4시에 닫는다. 돼지고기 고명과 홍합이 잔뜩 들어있다. 하루 종일 손님이 바글바글하니 친절을 기대하지 않는 게 좋다. 중동호떡(063-445-0849)은 1945년부터 호떡을 구워낸다. 밀대로 밀어 기름기 없이 구워 담백하다. 오전 10시부터 문을 여는데 번호표를 뽑고 기다려야 한다. 한일옥(063-446-5491)은 소고기무국 하나로 명성을 쌓은 군산의 기사식당. 말간 소고기국물에 소고기와 무가 푸짐하게 담겨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