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부르는 가장 아름다운 서해안 변산반도를 품은 부안의 여름 부안격포우체국
2018.08
버스 정류장이 된 부안격포우체국
솔섬에서 본 낙조 Ⓒ부안군청
채석강
서울에서 부안격포우체국까지 가기 위해 3시간 가까이 버스를 타고 부안시외버스터미널에 내렸다. 이후 격포행 버스를 한 번 더 타고 달린 지 40여 분 만에 도착한 격포터미널. 터미널과 마주하고 있는 부안격포우체국을 보자 그제야 목적지에 도달했다는 안도감이 든다. 이 우체국에만 네 번째 부임했다는 오현옥 국장을 비롯하여 김종윤, 한선임 주무관이 직접 나와 반겨주었다. 두 주무관도 이곳에서 근무한 지 벌써 두 번째라고 하니 부안 여행의 조력자가 생긴 것만 같아서 든든했다.
우체국에 들어서면 맞은편 벽의 커다란 채석강 사진이 눈에 들어온다. “격포는 채석강을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어요. 우체국에서 15분 정도만 걸어가면 되죠. 여기 관광우편날짜도장에도 채석강이 담겨 있답니다”라며 도장을 보여준다. 전국에서 찾아오는 관광명소가 가까이 있는 우체국이기에 버스 시간을 묻는 이들로 항상 붐빈다. 그러니 우체국 문 앞에 격포에서 부안, 궁항, 내소사 등지로 가는 버스 시간표가 괜히 붙어있는 게 아니다. 정식 정류장은 아니지만 우체국을 거점으로 교통 정보를 얻어 사람들이 버스에 타고 내린다. 버스 시간표의 주요 정보가 형광펜으로 표시되어 있다. “우체국은 권력 기관이 아니라 서비스 기관입니다. 그래서인지 젊었을 때보다 한 해 두 해 나이 먹어가며 이 자리와 역할의 의미를 더 가슴 깊이 깨닫게 되네요.” 형광펜처럼 선명한 직업 정신을 갖고 주민과 함께하는 부안격포우체국 직원들의 마음이 따스하다.
“부안은 예로부터 어염시초(물고기·소금·땔나무)가 풍부해 부모를 봉양하며 살기 좋은 곳이라 하여 ‘생거부안(生居扶安)’으로 불렸다”라고 김 주무관이 말을 잇는다. 익산에서 출퇴근하다 아예 부안으로 이사를 왔다는 오 국장을 통해 부안 주민으로서의 자부심과 사랑을 엿볼 수 있다. 반도 전체가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곳, 사시사철 다양한 해산물이 나서 제철음식만 챙겨 먹어도 지루할 틈이 없다고 말한다.
채석강 Ⓒ부안군청
격포해수욕장과 채석강에서 느끼는 기암절벽의 아름다움
격포해수욕장은 닭이봉과 채석강 사이에 있어 채석강의 절경을 가까이서 볼 수 있다. 백사장 길이가 약 500m로 조수 간만의 차가 심하지 않고 물이 맑으며, 경사가 완만하여 해수욕장으로서 좋은 여건을 갖추고 있다. 충남의 대천해수욕장, 만리포해수욕장과 더불어 서해안 3대 해수욕장으로 꼽히는 이곳의 왼쪽에서 채석강까지 만날 수 있으니 서해안의 여느 해변보다 으뜸이다.
채석강을 이름으로 유추하여 강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강이아니라 화강암과 편마암이 수만 권의 책을 쌓아놓은 듯 보이는 수직암벽이다. 썰물 때면 드넓은 암반이 드러나 직접 걸어서 가까이 갈 수 있다. 이때는 해식동굴까지도 들어갈 수 있다. 만조일 때 이곳을 찾는다면 그저 멀리서 바라볼 수밖에 없으니, 채석강에 갈 땐 꼭 물때를 확인하자. 해식동굴 안에서 바깥으로 번지는 낙조를 바라보는 것도 채석강이 주는 큰 선물 중 하나다. 예전에는 채석강 앞에 포장마차가 늘어서 있어 채석강을 바라보며 술 한잔하는 낭만이 있었지만, 지금은 다리가 놓이고 포장마차들도 모두 사라졌다.
격포해수욕장의 오른쪽에는 해안절벽을 중심으로 좌우 약 2km에 이르는 적벽강이 있다. 마치 사자가 앉아있는 형상이라하여 사람들은 이 절벽을 ‘사자바위’라고 부른다.
내소사
채석강의 일몰 Ⓒ부안군청
시원한 산책을 허락하는 내소사와 변산반도국립공원
변산반도국립공원은 전북 부안군 변산면 일대 구릉지를 중심으로 보유한 자연경관, 육상·해상 자연자원 및 역사문화자원의 가치를 인정받아 1971년, 국내에서 19번째 국립공원이 되었다. 외변산은 채석강과 해식동굴이 주를 이루고, 내변산은 의상봉을 비롯해 10여 개의 산봉우리가 둘러서 있다. 변산반도에선 이렇게 산봉우리가 있기에 직선으로 가까운 거리도 조금은 돌아가야 하지만, 어쩌면 그렇기에 느리게 여행할 수 있는 이유가 된다.
능가산 관음봉 아래 펼쳐져 있는 내소사에는 천 년이 넘은 느티나무, 보물인 고려동종, 못을 전혀 쓰지 않고 만든 대웅보전의 아름다운 꽃살문이 있다. 일주문으로부터 경내 입구까지는 높이30m의 전나무들이 늘어서 전나무 숲길을 이루고 있다. 경내로 들어가기 전 심신을 다스리는 이 길에 서면 높이 뻗은 나무와 짙은 초록 풍경에 몸도 마음도 경건해진다. 종교와 상관없이 우리를 사색하고 자신과의 대화를 이끌어내는 길. 주변을 둘러보면 산과 들이 가득한데, 산자락에 폭 안겨 있는 사찰의 모습이 포근하다.
내소사 앞의 탐방지원센터에는 부안우체국에서 준비한 엽서가 있다. 부안의 명소가 인쇄된 이 엽서에 자신을 포함한 누군가에게 글을 적어 마음을 전하는 것. 느린 우체통을 통한다면 1년 후에 받아볼 수 있다.
지는 해를 바라보는 부안
‘내 고향은 폐항. 내 고향은 가난해서 보여줄 건 노을밖에 없네.’ 영화 <변산>을 본 사람들이라면 이 문장을 기억할 것이다. 그리고 이곳의 노을을 바라보고 싶어질 것이다. 서해의 낙조는 변산 8경에도 포함되어 있다. 특히 해 지는 풍경이 아름다운 곳은 전국 각지의 사진가들을 부르는 외변산의 솔섬이다. 바위섬에 자라난 소나무와 지는 해가 어우러져 그 어떤 곳보다도 멋진 낙조를 감상할 수 있다. 해가 지는 것은 한순간, 한 장면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시간을 두고 서서히 저무는 모습. 해는 어느 곳에서나 지지만 모든 곳에서 해 지는 풍경을 보고 싶어 하진 않는다. 하지만 서해에서, 특히 부안에선 그 풍경을 마주하고 싶어진다. 매일 뜨고 지는 해이지만, 좀 더 아름다운 붉은 빛과 비로소 만날 수 있게 된다.
곰소염전 Ⓒ부안군청
곰소염전, 소금의 맛
부안군 진서면 곰소는 원래 섬이었으나 일제 군수물자와 농산물을 실어내기 위해 인공적으로 조성된 육지다. 예로부터 명성을 이어온 천일염 생산지였으나 예전보다 규모는 작아졌다. 곰소의 소금은 변산반도의 따가운 햇볕과 바람이 만든다. 내변산 소나무 숲에서 날아오는 송홧가루가 더해진 소금은 예부터 ‘송화 소금’이라 불리고, 현재도 이런 이름으로 판매된다. 짭조름하고 담백해 인기가 좋은 곰소 젓갈의 맛을 결정짓는 8할이 바로 이 곰소염전의 소금이다. 근해에서 나는 신선한 어패류를 재료로 각종 젓갈을 생산하는 이곳엔 대규모 젓갈 단지가 조성되어 있어 김장철에 특히 붐빈다. 곰소의 식당 앞에는 천일염 포대가 쌓여있는데, 이는 다른 곳에선 흔히 볼 수 없는 풍경이라 눈이 간다. 한 자밤의 소금을 얻기 위해 누군가는 저 염전 위에서 땀을 흘린다. 염전을 바라보고 난 뒤에는 식탁 위의 소금도 달리 보인다.
작당마을의 바닷가 나무 집
부안은 당일치기보단 반드시 바닷가 근바닷가 나무 집 처에서 하루를 보낼 것을 추천한다. 마실길 6코스에도 포함된 작당마을에는 ‘스테이 변산바람꽃’이란 이름의 조금 특별한 숙소가 있다. 이 지역에서 처음으로 발견되었다는 야생화가 이곳의 이름이 되었다. 이 숙소에는 바다와 마주하는 방 4개와 <안도현 시인의 방>이란 문패가 붙은 작은 방이 있다. 실제로 안도현 시인과 친분이 있는 주인이, 시인이 머물며 창작을 할 수 있게 돕고 있는 공간이다. 때론 이 방도 투숙객을 받는데, 최소 이틀은 묵어야 하는 이 방에서부안 취재를 핑계로 하루를 머물렀다.
침대와 책상, 화장실이 마련돼 있고 세심한 배려의 드립 커피 기구와 오디오가 갖춰진 이 작은 방에서의 시간은 완벽한 휴식이었다. 책상 위에 작은 노트가 마련되어 있는데, 지난해 어느 날부터 이 방에서 시간을 보낸 이들이 이 노트에 편지를, 습작을, 읽은 책의 한 구절을 적어 두었다. 혼자 떠났어도, 내가 오기 전 이곳에 머물던 이의 소리를 듣는 경험이 새롭다. 공간이 우리 모두를 시인으로 만든다. 방에서 잠을 청할 땐 물소리가 크게 들려 혹시 비가 오나 싶어 창을 몇 번 열어봤다. 내가 묵었던 날은 자정이 가장 물이 많을 때였고, 오전 6시가 가장 물이 적을 때였다. 밤사이 물이 들어서고 빠졌다니! 놀랄 수밖에 없었다. 바닷물 찰랑거리는 소리가 저녁 잠자리의 배경음악이 되는 곳이다. 이곳에서 밀물과 썰물- 어쩌면 그저 단어로만 알고 있던 두 글자를 눈과 발로 확인할 수 있다. 달의 변화와 함께 물때가 매일 다른 것도 신선한 체험이다. 동해에선 절대 느낄 수 없는 것을 이곳에서 느낄 수 있다.
작당마을에서 하루를 머물 수 없다면 사람들이 멀리서도 찾아가는 카페 ‘추억을나누며’(부안군 진서면 운호리 청자로 206)에 들러보자. 창 너머로 해안가를 바라보며 매실차나 쌍화탕을 한잔하면 어떨까. 이 가게에선 커피보다 우리 음료가 더 잘 어울린다.
지역을 사랑하는 이들을 통해 만나는 것들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을 잘 알며 사랑하는 이들을 만나면 왠지 미소가 지어진다. 여행을 떠날 때, 어떤 이의 한 마디 말과 풍경에 대한 묘사가 우릴 그리로 데려갈 때가 있지 않은가.
“겨울에 채석강에서 맞는 눈이 정말 멋져요. 아, 가을 내소사도 단풍나무가 많아서 좋은데...” 부안격포우체국의 오 국장은 끊임없이 부안을 이야기해주었다. 멋지고 좋은 걸 구체적인 표현으로 알려주는 이들을 통해 우린 또 여행을 계획한다.
나는 부안에서 바다가 항상 물이 가득한 것이 아님을 보고 내가 언제나 생각하고 정의하는 것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을 깨달으며 바다의 낯선 풍경과 마주하고 돌아왔다. 이처럼 당연한 일상에 환기가 필요할 때 분주한 여름보단 고요히, 조용히 남은 여름을 보내고 싶은 이들에게 특별히 추천하고 싶은 부안이다.
여행 Note
두 번 이상 발령받아 부안격포우체국에서 일하고 있는 직원들은 저마다 격포와 부안에 대한 애정이 컸다. 동네 주민들과도 잘 지내고 있는 이들이 추천한 부안의 맛집과 꼭 둘러봐야 할 곳들, 미리 알고 가면 좋을 정보를 정리했다.
군산식당
세 사람이 입을 모아 ‘화려하고, 세련되진 않지만, 백반을 잘하는 곳’이라 말한 군산식당. 8천 원 정식에 한 상이 차려지는데 밑반찬들이 아주 맛있다. 특히 지역 별미이자 조개 중 여왕이라 손꼽히는 ‘백합조개’로 만든 백합탕과 백합죽 등의 메뉴도 있다. 오전 8시부터 영업을 개시하니 아침식사를 하기에도 좋다. 격포터미널과 부안격포우체국과도 가까우니 참고할 것.
부안군 변산면 격포항길 16
063-583-3234
변산 마실길
전국의 길 만들기 열풍에 힘입어 변산에는 ‘마실길’이란 이름의 길이 있다. 조개미 패총길, 노루목 상사화길, 적벽강 노을길, 해넘이 솔섬길, 모항 갯벌체험길, 곰소 소금밭길 등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 길을 모두 다 걸어봤다는 부안격포우체국 직원들은 입을 모아 조개미 패총길인 1코스와 적벽강 노을길 3코스를 강력 추천했다. 특히 3코스는 부안의 자랑인 채석강과 해식동굴, 적벽강과 변산 해변도로를 거치니 기억해둘 것.
www.ibuan.co.kr/tour05
063-582-7808
Ⓒ부안군청
월명암
쌍선봉 중턱에 위치한 월명암에서 내려다보이는 안개 낀 아침 바다의 신비로움을 ‘월명무애’라 하여 변산 8경 중 하나로 꼽는다. 부안격포우체국의 김종윤 주무관은 낙조의 명소로도 이곳을 추천했는데 솔섬에서 보는 풍경도 좋지만, 이 암자에서 내려다보는 모습이 예술이라고 재차 전했다. 해 뜨기 전과 해 지는 풍경이 모두 멋진 이곳을 변산 일대를 여행하면서 꼭 기억하고 들러보자.
부안군 변산면 중계리 산96-1
063-582-7890
슬지네찐빵
1999년부터 부안에서 찐빵을 만들어온 슬지네찐빵. 밀과 팥, 쌀과 효소 발효종 등을 모두 국산으로 쓰고 누룩을 이용한 전통 발효 찐빵이 대표 메뉴다. 단호박, 흑미, 오디, 뽕잎, 현미로 색을 낸 5개 한 세트인 우리밀오색찐빵은 이곳을 찾는 이라면 대부분 주문한다. 부안시외버스터미널 근처에는 찐빵만을 판매하는본점이, 곰소염전 근처에는 카페를 겸하는 제빵소가 있다. 특히 이곳 2층에서 내려다보는곰소염전 풍경이 멋지다.
본점 : 부안군 부안읍 번영로 114
슬지제빵소 : 부안군 진서면 청자로 1076
063-583-0059
www.zzinbbang.kr
모항해수욕장과 모항갯벌체험장
모항해수욕장은 작고 아담하다. 실제 부안에 사는 이들이 해변가를 간다고 하면 주로 이곳을 간다고 오현옥 국장이 귀띔했다. 서해안의 여느 해수욕장과 달리 썰물 때 물이 빠져도 하얀 모래가 끝없이 펼쳐져 여름철 피서지로도 사랑받는다. 차로 3분 거리엔 영화 <변산>에서 두 남자배우가 갯벌에서 싸우는 장면을 촬영한 모항갯벌체험장이 있다. 갯벌 체험을 원한다면 이곳으로 가자.
모항해수욕장 : 부안군 변산면 모항길 23-1
063-580-4738(부안군청 해양수산과)모항갯벌체험장 : 부안군 변산면 모항길 107
063-584-7788
조석 시간표
부안을 여행할 땐 물이 차고 빠질 때 보는 풍경이 다르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특히 채석강에 가까이 가기 위해서, 변산 마실길을 걷기 위해서는 물때를 살피고 알아야 한다. 바닷길이 열렸다가 금세 물에 잠겨버리기 때문. 이 지역의 해안가 앞에는 대부분 이렇게 물때 시간표가 공유되어 있다. 반드시 보고 싶은 장면이 있을 때는 물때 시간을 미리 확인하고 일정을 짤 것. 부안군청 홈페이지의 문화관광 > 커뮤니티 > 조석 및 바다갈라짐 코너에서 매달의시간표를 확인할 수 있다.
www.buan.go.kr/tou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