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대지가 불덩어리가 된 듯 후끈 달아올랐다. 이리 뜨거웠던 여름이 있었을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다. 통 너른 유리창을 드리운 한갓진 북카페에 앉아 얼음반 커피반으로 만든 아이스커피와 함께 펼쳐진 책을 보는 둥 마는 둥 시간을 허비하고 싶은 날들의 연속이다. 열기와 습기가 공존하는 계절, 머릿속 생각들은 바다와 계곡으로 떠나버린지라 일손을 붙들기가 좀처럼 쉽지 않은 것은 필자뿐이랴. 어쭙잖은 글 솜씨로 독자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기 딱 좋은 여름의 한 복판, 금번 호는 고전문학 속 커피 이야기를 소개하는 것으로 대신하고자 한다. 언제 어디서나 손쉽게 접할 수 있는 커피는 소소한 일상을 살아가는데 있어 빠질 수 없는 기호식품이 아닐 수 없다. 그런 연유로 커피는 오래도록 문학작품 속에 소소하게 젖어 들어 있다.
“어쩌다 우리 국민이 커피를 즐기게 됐는지 모르겠다”고 얘기하는 분도 있겠으나,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커피는 우리네 희로애락을 함께 하는 기호음료가 되었음은 명명백백해 보인다. 아등바등 살아가고 있는 우리네가 가던 길 멈추고 잠시나마 호사로운 여유를 부리기에 커피만한 것이 또 어디 있겠는가? 게다가 커피는 우리네 인생처럼 씁쓸함과 달달함을 모두 지녔으니 말이다.
황무지
T.S. 앨리엇 (20세기 영국 모더니즘을 대표하는 시인겸 극작가)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추억과 욕정을 뒤섞고 무딘 뿌리들을 봄비로 자극한다. 겨울에 우리는 따뜻했다. 대지를 망각의 눈으로 덮고 메마른 덩이줄기로 작은 목숨을 길러냈으니 여름은 갑작스레 슈타른베르거 호수를 건너 소나기로 덮쳐와 우리는 주랑에 잠시 머물렀다가 햇빛 속을 걸어 공원으로 가 커피를 마시고 한 시간 이야기를 했다.
몬테크리스토 백작
알렉상드르 뒤마 (무궁무진한 이야기꾼, 19세기 프랑스 극작가)
커피가 준비되어 있었다. 알베르를 위해 설탕통도 놓여 있었다. 백작과 하이데는 아라비아식으로 설탕 없이 마셨다. 하이데는 장밋빛을 띠는 가는 손가락을 내밀어 일본제 자기(磁器) 찻잔을 들었다. 그리고 마치 어린애가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먹을 때처럼, 기쁨을 감추지 못하며 천진스럽게 잔을 입술에 갖다 대었다.
레미제라블
빅토르 위고 (가장 유명하고 가장 대중적인 프랑스 낭만파 작가)
이제 모든 것이 아름다워만 보였다. 이제는 책도 읽지 못 하리라. 이 아담한 흰 나무 책상에서 글을 쓸 수도 없으리라! 단 하나의 시종인 문지기 여자도 커피를 가져다주지 않으리라. 아아 슬프다! 그 대신에 가져야 할 것은 죄수며, 칼이며, 붉은 옷이며, 발의 쇠사슬이며, 피로며, 감방이며, 야외용 침대며, 기타 여러 가지의 지긋지긋한 것들!
노인과 바다
어니스트 헤밍웨이 (20세기 잃어버린 세대의 대표적 작가)
노인은 소년이 미끼고기를 가지러 간 사이, 커피를 천천히 마셨다. 이제 하루 종일 아무것도 못 먹을 테니 커피를 마셔두어야 했다. 꽤 오래 전부터 먹는 일이 귀찮아진 그는 점심을 싸가는 법이 없었다. 물 한 병으로 하루를 충분히 견딜 수 있었다. 소년이 정어리 몇 마리와 신문지에 싼 미끼고기 두 마리를 들고 돌아왔다.
“행운을 빌어요, 할아버지.”
토지
박경리 (한국 문학사의 기념비적 작품인 대하소설 토지를 26년에 걸쳐 완성)
선혜는 중얼거리다가 날라다준 커피잔을 든다. 한 모금 마시며 입속에서 액체를 굴려본다. ‘아직 멀었어. 권오송 씨가 아무리 첨단을 가는 멋쟁이라지만 커피맛은 모르는 모양이야. 저기 눈깔 허떻게 뜨고 앉은 작자, 흥! 지까짓 게 무슨 놈의 커피야? 맛이나 알고서 마시는 겐가? 이정백이 저 녀석도 그렇지, 블랙커피라면 커피 종륜가요? 하던 녀석이, 나 원,’
봉별기
이상 (언어 유희의 귀재로 불리는 일제 강점기 한국 근대 작가)
여기 시계가 어느 시계보다도 정확하리라는 것이 좋았다. 섣불리 서투른 시계를 보고 그것을 믿고 시간 전에 집에 돌아갔다가 큰코를 다쳐서는 안된다. 나는 한 박스에 아무 것도 없는 것과 마주 앉아서 잘 끓은 커피를 마셨다. 총총한 가운데 여객들은 그래도 한 잔 커피가 즐거운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