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을
그리는
이안 감독
이안 감독은 문학작품을 영화화하는 데 탁월한 재능을 지니고 있다. 그의 필모그래피 중 많은 작품이 문학 작품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센스 앤 센서빌러티>, <색, 계>, <브로크백 마운틴>은 모두 소설을 원작으로 갖고 있다. 곧 개봉 예정인 <라이프 오브 파이>도 소설 원작이다. <라이프 오브 파이>는 얀 마텔의 소설 <파이이야기>를 각색한 작품이다. 작품의 선택에서부터 이안은 결코 실망감을 주지 않는다. 문학작품을 토대로 만든 이안의 영화들을 보면 그가 뛰어난 감독이기 이전에 얼마나 뛰어난 독서가이며 비평가인지를 알 수 있게 해 준다. 2시간여가 넘는 작품들로 번역되었지만 <색, 계>나 <브로크백 마운틴>은 매우 짧은 단편이다. 단편들이지만 그가 선택한 단편들은 대개 짧은 이야기 속에 인생에 대한 비유와 인생의 아이러니가 가득 차 있다.
<브로크백 마운틴>만 해도 그렇다. 인생에서 잠깐 스쳐 지나갈 줄 알았던 몇 달의 기억이 두 사람 인생 전반에 그림자로 남는다. 우연한 욕망인 줄 알았는데, 사실 사랑이었음을 주인공은 아주 뒤늦게 깨닫는다. <색, 계>도 그렇다. 영화는 스파이가 된 여대생이 필생의 임무를 스스로 망치고 마는 과정을 다루고 있다. 소설은 왕지아즈라는 여성 스파이가 공모를 실행하려는 아침부터 실패한 저녁까지의 시간을 다루고 있다. 이 하루라는 시간 안에는 인생의 희로애락과 비밀, 선의가 꼭 가져다줄 수만 없는 삶의 아이러니가 다 들어가 있다. 하루의 시간이지만, 그래서 이안의 영화를 보고 나면 때로는 인생을 한 번 살아본 것처럼 고단해질 때가 있다. 훌륭한 예술이 간접체험의 힘에 있다면 이안의 영화는 절실한 간접체험을 전달해준다.
그래서 이안의 영화에서 늘 인생을 본다. <센스 앤 센서빌러티>의 두 여자도 그렇다. 언제나 조용하고 말이 없는 큰 언니, 감정을 이성적으로 절제하는 것이 곧 품위라 여기는 언니와 풀어놓은 조랑말처럼 마음껏 원하는 바를 해야만 한다고 믿는 여동생. 이 두 사람은 우리가 삶을 살아가는 가장 대비적인 두 태도이기도 하다. 이성에 의존하느냐, 감성에 의존하느냐에 따라 삶의 방식은 가볍게 설 수 있을 정도의 내공은 쌓는 게 아니라 비우는 과정에서 얻어진다. 뭔가 더 쌓고, 얻기 위해 노력하는 푸른 여우에게 내공은 곧 독으로 되돌아온다. <라이프 오브 파이>는 파이(pi)라는 이름을 지닌 한 소년의 표류기이다. 파이는 영어로 오줌과 유사하기 때문에 어린 시절부터 놀림을 받곤 한다. 하지만 막상 파이는 그런 놀림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 오히려 파이는 자신의 이름을 원주율의 무한대 안에서 생각한다. 열여섯 인도 소년 파이는 ‘단지 신을 사랑하고 싶은’ 마음에 힌두교, 기독교, 이슬람교를 모두 믿는다. 그는 동물원을 운영하는 아버지, 다정한 어머니, 운동밖에 모르는 형과 함께 행복한 시절을 보낸다. 그러다, 1970년대 후반, 인도의 상황이 불안해지자 아버지는 캐나다로 이민을 결심한다. 동물원에서 키우던 동물들을 가득 태우고 그들은 캐나다를 향해 떠난다. 하지만 그들을 태우고 가던 화물선이 태평양 한 가운데에서 침몰하고 만다. 파이는 간신히 구명보트에 오르지만 보트에는 하이에나, 오랑우탄, 얼룩말, 그리고 뱅골 호랑이가 올라타 있었다. 하이에나는 얼룩말의 다리를 물어뜯고 오랑우탄을 죽인다. 그리고 뱅골 호랑이는 하이에나를 죽여 잡아먹고 만다. 파이는 호랑이와 자신이 모두 살아남기 위해 호랑이를 길들여야만 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보트 위에는 언제든 자신을 먹잇감으로 만들 육식동물이 있고, 보트 아래에는 호랑이만큼이나 사나운 상어 떼가 기다리고 있다. 소년은 바다에 뛰어들 수도 그렇다고 마냥 호랑이를 두려워할 수만도 없다. 그렇다면 방법은 호랑이를 길들이는 것뿐이다. 굶주린 호랑이가 자신을 덮치지 않도록 위험천만한 바다 위에서 호랑이와 함께 탄 보트의 균형을 유지해야만 하는 것이다.
인생의
다른 이름,
파이
파이가 탄 보트는 인생의 다른 이름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 역시 수면 아래엔 식인상어가 헤엄치고 있는 이 위험천만한 인생을 일엽편주 위에서 견뎌나가고 있다. 언제 나를 덮칠 위험을 늘 곁에 두고 사는 것도 인생의 한 면모이다. 우리가 흔히 액으로, 사고로 부를 수 있는 의외의 사건들은 우리의 손이 닿을 법한 근거리에서 어슬렁거리고 있다. 우리는 스스로를 단속하는 마음과 지금까지의 삶이 준 지혜를 토대로 그 위험을 다스려야만 한다. 물론 때로 호랑이는 아무리 단속해도 으르렁거리며 우리를 덮칠 수도 있다. 사실 그게 호랑이의 습성이다. 인생이 우리의 목덜미를 무는 경우도 허다하다. 다행히 발목 정도를 무는 데서 끝낼 수도 있지만 때로 호랑이는 목숨 자체를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 호랑이는 경기불황으로 얼굴을 들이밀기도 하고, 교통사고로 위장하기도 하며, 배신으로 구체화되기도 한다. 호랑이는 그때 그때 우리의 삶에 조금씩 얼굴을 바꿔가며 나타날 뿐이다. 이 동화 같은 이야기를 듣고 난 이후 한남자가 묻는다. 너무 황당한 이야기가 아니냐고, 그때 파이는 대답한다. 그렇다면 이런 이야기는 어떨까요? 하이에나는 얼룩말의 다리를 물어뜯듯이 요리사가 식량을 구할 미끼로 어린 선원의 다리를 찢었다면 어떨까요? 구명보트에 탔던 프랑스인 맹인이 선원과 저의 어머니를 죽였어요. 이야기를 듣던 일본인들은 이 이야기를 다시 정리한다. “그러니까 대만 선원은 얼룩말이고, 자기 어머니는 오랑우탄이고, 요리사는 하이에나, 그렇다면 호랑이는?” 우화로 들을 땐 신나고 흥미롭지만 사실 그건 난파된 구명보트 안에서 일어난 살육극일 수도 있다. 수 많은 우화들은 동물들을 주인공으로 그려내지만 사실 그 동물들은 모두 사람들이다. 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의 가장 큰 장점은 머릿속으로 상상하며 읽었던 그 장면들을 눈으로 보는 체감의 기쁨이다. 뱅골호랑이와의 동거, 난파의 장면들은 이안의 세심한 감각을 거쳐 3D로 영상화되었다. 아이들과 함께 보기에도 적합하고, 보기 전후 소설을 읽는다면 더할 나위 없는 서사적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오래 간만에 만나는 정말이지 훌륭한 이야기이다.
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 감독 : 이안 감독 / 출연 : 수라즈 샤르마, 이르판 칸
컬처트렌드
구성. 김혜련
이달의
신작
book
내 인생 후회되는 한 가지
우리 시대 명사 50인이 지난날에 보내는 솔직한 연서
살면서 가장 후회되는 일 한가지를 꼽으라면 우리는 무엇을 이야기할까? 박경철, 김정운, 엄홍길, 안성기, 조영남, 조수미, 김창완 등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명사이자 인생 선배들이 살아오면서 가장 후회되는 일 한 가지를 고백한 책이 출간되어 화제이다. 부모님께 미처 해드리지 못해 뒤늦게 가슴 치는 일부터 이루지 못한 젊은 날의 꿈, 말도 걸지 못한 첫사랑, 일에 빠져 사느라 놓친 가족과 친구 등 누구나 겪을 법한, 그래서 더욱 마음 울리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자신의 분야에서 일가를 이루었다고 평가받는 사람들이나 이들에게도 ‘후회’의 한순간은 지난날을 돌아보게 한다. ‘빠름’을 외치는 시대에 잠깐 멈추어 지난날을 돌아볼 수 있게 해주는 것만으로도 후회는 충분히 아름답다. 평생 가슴을 치며 후회로 남을 일, 작은 해프닝으로 웃어 넘길 만한 일, 언젠가는 해내고 싶은 일도 있다. 50가지의 각기 다른 후회지만 공통점이 있다. 바로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치열하게 살아왔기에 가슴에 남아 있는 후회라는 것이다. 사랑하지 않은 인생, 기억하지 못하는 날들엔 후회 또한 남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보다 앞서 인생을 살아온 선배들이 털어놓는 <내 인생 후회되는 한 가지>는 책을 읽는 독자에게 말한다. “열심히 살아온 내 인생아, 잘 지내고 있니? 함께 걸어와 준 내 인생아, 참 고맙다.”
김정운, 공병호 외 지음 / 위즈덤경향
play
장화홍련
국립창극단 스릴러 창극
작품에 내재한 어두운 측면을 포착하여 치밀하고 세련되게 표현한 스릴러 창극 <장화홍련>을 소개한다. 공포를 유발하여 두려움을 느끼고 작품에 끌리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자 무의식의 작용이다. 인간 본연의 속성을 파헤치고 죄의식을 담아내는 <장화홍련>은 공포극의 요소를 두루 갖춘 작품이다. 작자 및 연대 미상의 고전소설 ‘장화홍련전’이 오늘날을 배경으로 색다른 이야기로 탈바꿈했다. 장화와 홍련을 진심으로 사랑하나 경제적 박탈감에 무서운 방관자가 되는 계모 허씨, 대책 없이 무기력한 아버지, 결혼과 유학에 들떠 다른 가족에게는 이런 상황이 큰 고통이 되리라는 것을 모르는 장화와 홍련 등 동시대인들이 공감하는 사회적 문제인 경제적 고통으로 헐거워지는 가족 관계에서 비롯되는 비극이 국립창극단의 ‘한국적 소리’와 어우러지며 공포를 배가시킨다. 등장인물들의 심리를 장면전환, 오브제와 영상을 통해 모던하게 표현하여 효과를 극대화하며 무엇보다 ‘스릴러 창극’으로서의 밀도를 높이기 위해 무대 위에 객석이 설치된다. 공연계 최강의 콤비인 연출가 한태숙과 극작가 정복근의 만남, 원일 음악감독, 작창 왕기석 명창, 작곡은 월드뮤직밴드 AUX의 홍정의가 맡아 최고의 제작진을 자랑한다.
11월 27일~11월 30일 /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classic
안드레이 가브릴로프 & 상트페테르부르크 스테이트
심포니 오케스트라
러시아가 낳은 최고의 피아니스트 안드레이 가브릴로프의 이번 내한공연은 라흐마니노프 피아노협주곡 2번과 차이코프스키 피아노협주곡 1번을 파워풀하고 다이나믹하게 때로는 깃털처럼 부드러움을 보여주는 연주로 클래식 팬들을 감동시키는 무대가 될 것이다. 1974년 차이코프스키 콩쿠르에서 18세 나이로 1위 입상(당시 2위는 정명훈)하여 이후 많은 오케스트라와의 협연과 순회공연으로
‘전설의 피아니스트’ 30인, ‘20세기 가장 위대한 피아니스트’로 선정된 안드레이 가브릴로프는 부드러움과 힘을 함께 보여주며 ‘거미손’이라 불린다. 그와 함께 협연할 상트페테르부르크 스테이트 심포니 오케스트라는 1967년 설립된 전통 있는 오케스트라로 세계 여러 나라의 초청공연이 끊이지 않고 있다. 특히 차이콥스키 교향곡 5번 연주는 특유의 냉철하고 감성적인 해석으로 웅장하고 거대한 사운드를 만들어내며 관객의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러시아 정통 클래식을 감상하고 싶은 마니아에게는 더없이 좋은 시간이 될 것이다. 서울 뿐 아니라 대구, 구리, 김해, 전국투어 공연으로 곳곳의 클래식 팬들을 찾아간다.
11월 24일~25일 예술의전당, 26일 대구문화예술회관, 27일 세종문화회관, 30일 김해문화의전당, 31일 구리아트홀 / 02-3463-2466
exhibition
국화전시회
아침고요수목원
신선한 햇살과 따스한 햇살에 발걸음이 가벼워지고 자연을 벗하기 좋은 가을은 국화의 계절이다. 가을의 낭만과 아름다운 정원이 있는 ‘아침고요수목원’에서 국화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다륜대작, 분재작, 입국, 특수작, 현애작 등 약 200여 품종의 500여 작품과 평소에 볼 수 없었던 다양한 국화들의 모습을 만나볼 수 있다. 이번 전시회는 ‘향긋한 국화에 가을을 담다’를 주제로 가을의 느낌을 국화로 형상화시켜 관람객들에게 색다른 국화의 모습과 전시풍경을 선사한다. 10만 평이 넘는 야외 모든 정원에서 국화가 식재된 정원은 가득 피어난 국화꽃과 화려하게 물든 단풍이 어우러져 그야말로 꽃잔치가 따로 없다. 아침고요를 대표하는 하경정원의 화단, 정원나라, 고향집정원, 분재정원 등 20여 개의 정원은 알록달록 단풍으로 물들어 단풍의 화려함과 은은한 국화의 조화가 장관을 이룬다. 수목원의 고즈넉한 분위기와 낭만까지 더해주는 자연의 분위기가 계절이 주는 설레임과 아름다운 추억을 남겨줄 것이다. 올 가을 향긋한 국화차 한잔하며 아침고요수목원에서 자연이 주는 풍요로움을 만끽해보자.
11월 20일까지 / 아침고요수목원 / 1544-6703
festival
제9회 2012 군산세계철새축제✽
자연과 인간의 아름다운 동행!
국제적 보호종인 가창오리(Baikal Teal) 수십만 마리가 국내 최대 겨울철새 도래지 금강호에서 황금빛 석양을 배경으로 화려한 군무를 펼친다. 자연이 만들어내는 최고의 작품인 가창오리의 경이로운 군무를 가장 가까운 곳에서 관찰할 수 있는 곳이 가창오리의 월동지인 군산의 금강호이다. 금강호에는 생존 개체 수가 급격하게 줄어 국제적으로 보호하고 있는 가창오리를 비롯하여 천연기념물인 큰고니, 개리, 저어새 등과 청둥오리, 쇠기러기, 검은머리갈매기, 붉은부리갈매기 등이 10월 중순부터 찾아와 겨울을 나고 3월 초에 번식지인 시베리아 지역으로 이동한다. 먼 길을 날아와 지친 날개를 쉬는 철새들의 휴식처 금강호에서 이 희귀종 철새들을 만날 수 있다. 해설자의설명을 들으며 가까이서 관찰해볼 수 있는 ‘탐조투어’는 가족단위로 진행된다. 또한 ‘철새와 함께하는 구불길 체험’, ‘두바퀴로 즐기는 철새체험 여행’은 생태자원을 천천히 둘러보며 도보와 자전거로 여행하는 슬로 친환경 축제 프로그램이 눈길을 끈다. 철새그림그리기대회, 사랑의 십자뜰 먹이주기체험, 철새 골든벨행사 등 관광객들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이 손님 맞을 준비를 하고 있다.
11월 21일~25일까지 / 금강철새조망대 및 금강호 일원
✽ 축전 : 축제의 순화용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