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런 멀러리 때문에 마이크로소프트 주가가 떨어졌다고?
앨런 멀러리는 마이크로소프트(MS)社 에서 일한 적이 없다. 그런데 왜 그 때문에 그 회사의 주가가 떨어진단 말인가? 대개 CEO 프리미엄이란 게 그 회사에서 해당 임원이 경영실적을 잘 쌓을 경우 주가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한번도 일하지 않은 다른 회사의 주가에 영향을 준 일이 있었다. 2013년 MS에서는 스티브 발머 CEO를 대신해서 앨런 멀러리를 영입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하지만 앨런 멀러리가 2014년까지 포드에 머물기로 하면서 MS의 의도대로 되지 않았다. 실제로 영입 실패 소식이 전해지던 날 MS의 주가는 급락했다. 그건 그만큼 앨런 멀러리에 대한 업계의 평가이자 기대치가 높다는 의미이자, 그의 경영능력이 위기의 회사를 살리는데 탁월하다는 의미기도 하다.
앨런 멀러리는 2006년부터 2014년 6월까지 자동차 회사 포드의 CEO였다. 2008년 금융 위기 후 포드를 되살렸다는 평가까지 받는 그는 미국을 대표하는 경영자 중 하나다. 그는 포드社에 오기 전, 보잉社에서만 37년을 일했으며 경영진까지 되었다. 자동차와는 무관한 그를 포드가 영입한 건 앨런 멀러리의 위기관리 능력 때문이다. 2001년 9.11 테러로 인해 항공기 업계는 큰 타격을 입었고 보잉도 예외가 아니었다. 여기에 보잉의 경쟁사인 에어버스의 저가공세도 추가되면서 보잉은 이중고에 빠졌다. 이 위기를 극복하며 보잉을 살려낸 경영자가 바로 앨런 멀러리다.
그에게 구애를 보내며 줄을 선 기업들 가운데 현존 최고 기업 중 하나로 꼽히는 구글이 낙점됐다. 2014년 7월부터 구글 이사회 이사에 합류한 앨런 멀러리는 구글의 무인자율주행 자동차를 비롯한 자동차 관련한 영역에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구글은 IT 분야에선 선발주자지만 자동차 분야에선 후발주자로서 자동차 업계의 진입 장벽을 뚫어야 할 추격자이며, 다양한 견제와 풀어야 할 법적, 제도적, 산업적 문제도 가지고 있다. 구글은 이런 문제를 풀고 위기에서 기회를 만들어내는 앨런 멀러리의 능력이 필요했을 것이다. 이로써 항공기 제조사, 자동차 제조사를 거쳐, IT 회사까지 서로 다른 산업으로 그의 커리어는 확장되고 있다. 사업의 큰 그림을 그리고 위기를 돌파하는 능력을 발휘하는 앨런 멀러리는 거대 기업의 위기 상황에 등판하는 필승조 구원투수인 셈이다.
위기에 강한 CEO, 과감한 결단으로 위기를 넘다
지난 2008년 금융위기를 겪으며 미국의 수많은 기업들이 위기에 빠졌다. 특히 자동차 업계는 더 심각했다. 그런데 포드는 2009년 결산에서 순이익 흑자 전환했다. 2008년에 적자 규모가 무려 147억6,600만 달러(약 17조1,000억 원)였는데, 2009년에 26억9,900만 달러의 흑자를 기록한 것이다. 2005년 이래 4년만의 흑자 전환을 이룬 것이다. 참고로 앨런 멀러리는 2006년 9월에 포드에 영입되었다. 자동차 업종 자체의 위기이자 내부의 위기, 거기에 금융위기라는 외부의 위기까지 겹친 최악의 상황에 CEO를 맡아서 단기간에 보란 듯이 위기를 넘어섰다. 생산 비용은 줄이고, 판매는 확대하면서 흑자 전환에 성공한 것이다. 같은 시기 미국의 자동차 빅3 중 다른 두 기업인 GM과 크라이슬러는 파산보호 신청에 들어갔다. 빅3 중 포드만 유일하게 자력으로 위기를 극복하며 살아난 것이다. 덕분에 포드 브랜드 이미지는 손상되지 않았고, 그 뒤로도 성장을 이어갈 수 있었다. 앨런 멀러리는 분산된 인적, 물적 자원을 통합하는데 집중했고, One Ford 전략과 함께 효율성이 떨어지는 애스턴마틴, 랜드로버, 볼보, 재규어 등의 브랜드를 정리하고 포드와 링컨으로 기업구조를 정리하였다. 자동차 모델도 대폭 축소시키며 선택과 집중을 실천했다. 2012년까지 14개 공장을 폐쇄하고 3만 명 이상을 감원했다. 이런 과정에서 일자리를 잃고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도 분명 생겼다. 하지만 기업이 살려면, 팔 다리 하나를 잘라내는 출혈은 감수할 필요도 있다. 그것이 경영자의 결단이다.
포드에 취임한 지 두 달 만인 2006년 11월 포드는 금융기관들로부터 236억 달러를 대출받는다. 이걸 주도한 건 앨런 멀러리다. 유동성 확보를 위해 대출은 필요하나 너무 많은 금액이라는 평가가 전문가들 사이에서 나왔다. 하지만 그는 경기 후퇴나 예측 가능하지 못한 사고가 발생할 때 완충장치가 되어 줄거라며 반박했다. 결과는 들어맞았다. 역사상 가장 심각한 위기에 처한 미국 자동차 업계에서 포드만 안정적인 유동성을 통해 위기에서 독자적 생존을 이뤄낸 것이다. 뉴욕타임즈는 당시 105년 포드 역사상 가장 중요한 결정이었다는 평가를 내리기도 했다. GM과 크라이슬러는 파산 위기 앞에서 정부로부터 174억 달러를 수혈 받으며 겨우 목숨을 유지했다. 위기에 대한 대응은 신속하고 과감할수록 좋다. 발등에 불이 떨어져서야 위기에 대응하는 기업보다는 위기가 올 조짐 앞에서 과감하게 먼저 대응하는 기업이 더 상황을 유리하게 만들 수 있다. 덕분에 포드도 유동성 위기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었고, 이를 기반으로 생존과 함께 흑자 전환과 성장을 할 수 있었다.
솔직하게 실패와 위기를 말할 수 있는 구성원이 있는가?
앨런 멀러리는 수많은 임원들의 업무보고를 들을 때, 신호등의 빨간색, 노란색, 녹색 등을 임원에게 들게 했다. 진행하는 사업이 문제없이 잘 될 것 같으면 녹색, 실패할 조짐이 조금이라도보이면 노란색, 실패가 확실해서 위험하다 여겨지면 빨간색을 켜놓고 발표하는 거다.
첫 6주 동안 모든 업무보고에서 녹색 등만 켜져 있었다. 당시 포드는 170억 달러 적자가 나던 상황인데, 모든 임원이 현실을 직시하지 않았던 셈이다. 앨런 멀러리는 현실을 제대로 보고하지 않는 임원은 즉시 해고하겠다고 엄포를 놨고, 2주 후 빨간색 등을 켠 보고가 나타났다. 하지만 이 보고에 대해 화를 내긴커녕 현실을 제대로 알려줘서 고맙다며 위기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해당 부서가 무엇을 하든 회사에서 200% 이상 지원해주겠다고 말했다. 이때부터 위기는 숨기는 게 아니라 빨리 말할수록 회사에서 개선할 수 있는 시간과 자금을 투입해준다는 믿음과 문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이후 녹색 일변도에서 노란색, 빨간색이 다양하게 나오며 실패 가능성이 있는 프로젝트에 대한 해결책을 함께 고민하기 시작했고 위기를 넘어설 수 있었다. 위기는 현실에 대한 정확하고 냉정한 인식이 없으면 넘어서지 못하는 것이다. 조직에서 실패 가능성에 대해 말하기 두려워하는 직원들이 있다는 것은 조직 문화의 문제일 수 있다. 이제 위기는 모든 기업에 일상적 문제다. 위기를 겪지 않는 게 화두가 아니라 위기를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화두가 된 시대. 위기를 극복한 CEO로 각인된 앨런 멀러리의 행적 속에서 우린 통찰을 얻어야 한다. 그의 과감한 결단과 위기의 실체를 파악하게 하는 조직 장악력은 중요한 교훈이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