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으로 생각하는’ 디자인 회사를 만들다
어릴 적부터 ‘창조’하길 좋아한 데이비드 켈리는 대학 졸업 후 보잉Boeing사에서 전기 엔지니어로 일하다 나와, 스탠포드대학에서 공학과 예술이 결합된 디자인 프로그램을 이수한다. 그곳에서 인간 중심적 접근법과 팀 중심적 문제 해결법을 접하고 나서 IDEO의 전신인 David
Kelley Design을 창업한 후 디자인적 사고자로 삶의 경로를 바꾸게 된다. 이후, ‘ideology’의 앞 글자를 따서 지금의 IDEO를 세우게 되는데, 15명의 디자이너로 시작한 IDEO가 세계 최고의 디자인 혁신기업으로 성장하는 데에는 디자인 씽킹Design Thinking이라는 독특한 방식이 있었다. 데이비드 켈리에 의해 널리 알려진 디자인 씽킹은 ‘누구나 창조적 재능이 있다’는 신념 하에 사람들에게 자신감을 불어 넣는 사고방식이자 방법론이다.
디자인 씽킹이 알려지며 1999년 IDEO는 미국 ABC방송국 ‘나이트라인’ 프로그램으로부터 5일 만에 새로운 쇼핑카트를 고안해내라는 프로젝트를 제안 받는다. 5일 간의 진행 과정과 함께 새롭게 디자인 된 쇼핑카트를 스튜디오에 공개했을 때 전세계의 관계자들은 열광했다. 독보적인 창조성을 보여주는 기업이란 어떤 것인지 직접 눈으로 확인한 것이다.
가장 혁신적인 기업을 혁신하는 기업
방송 이후 혁신의 상징이 된 IDEO는 비즈니스위크Businessweek가 선정한 ‘가장 혁신적인 기업 25’에도 선정된다. 재미있는 것은 그 순위에 있는 나머지 24개 기업에 대하여 IDEO가 컨설팅을 해주고 있다는 것이다.
3M, American Express, Apple, AT&T, Bank of America, Chrysler, eBay, Ford, GE, IKEA, Pepsi-Cola, P&G, JP Morgan, Levi’s, Microsoft, NASA, The North Face, Toyota, 삼성전자, LG전자, 현대카드, SKT, 아모레퍼시픽 등 마치 세계 유수의 브랜드를 나열한 것처럼 보이는 이것이 IDEO의 고객 리스트이다.업종과 분야를 망라하여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IDEO는 애플Apple 최초의 컴퓨터 마우스, 세계 최초의 랩탑 컴퓨터, PDA 열풍의 주역 팜Palm의 팜 V PDA, 일라이릴리Eli Lily의 최초의 인슐린펜insulin pen, 스틸케이스의 립 체어Leap Chair, P&G의 프링글스 패키지 디자인 등 시대의 아이콘이 된 수많은 제품에서부터 아프리카와인도의 음료수 제공 방법과 페루의 학교 시스템을 개선하는 등 영역을 넘어 창조적 혁신을 지속하고 있다.
‘문제 해결’보다 중요한 ‘문제 정의’
이쯤 되면 도대체 IDEO의 창조적 원천은 무엇이며, 어떻게 해당분야의 전문가보다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낼 수 있는지 의문이 생긴다. 이 작은 회사가 디자인계의 맥킨지McKinsey라 불리우며 BCG, 베인앤컴퍼니Bain 등 유수 경영 컨설팅 업체들의 경쟁자로 떠오른 비결은 한마디로 디자인 씽킹이다. 디자인 씽킹은 인간 중심 설계에 역점을 두어 혁신을 가속하는 방식으로 흔히 다음과 같은 5가지 단계를 거친다.
첫 단계는 공감Empathy이다. 이는 문제, 사람, 상황에 대한 관찰과 깊은 이해를 통한 인식이다. 다음은 정의Define를 내리는 것이다.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를 명확히 이해한다는 의미다. 문제의 정의가 실제로 만든 해결책의 기본이 되니 이 단계는 매우 중요하다. 문제를 제대로 인식하고 있다고 확신해야 올바른 해결책을 낼 수 있다. 문제를 규정한 다음에는 모든 가능한 것을 상상Ideate함으로써 문제를 관념화 한다. 다양한 아이디어 중 가장 좋은 개선책은 시제품Prototype으로 구체화되고 실제로 효과가 있는지 시험해 보는 과정을 반복적으로 빠르게 진행함으로써 진짜 문제를 찾아간다. 디자인 씽킹이 주목 받는 이유는 과거 대량생산 시대에 통했던 기업 중심의 힘의 논리와 성공의 방정식이 더 이상 통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 동안 기업과 컨설팅사는 경영의 신뢰성을 위한 다양한 도구들-성과관리MBO·기업자원관리ERP·고객관계관리CRM·통합품질관리TQM·지식관리KM시스템 등을 통해 과거의 데이터를 철저하게 분석하여 미래에 대한 ‘과학적’인 예측을 시도했다. 즉, 논리적이고 분석적인 방식Logical
Thinking으로 문제 풀기Problem solving에 초점을 맞추었다.
그러나 불확실성과 변화의 속도에의 대응이 관건인 지금, 분석보다는 직관과 통찰이, 논리보다는 감성이, 관리보다는 혁신이 중요하기 때문에, 문제를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에서부터 익숙한 것을 재발견하게 해주는 디자인 씽킹은 전에 없던 중요한 방법론이 된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디자인 씽킹을 실행하는 사람들의 팀워크이다. IDEO에는 기계·전자공학, 경영학, 인문학, 행동과학, 교육, 법학 등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근무하는데, 디자인 전공자는 절반뿐이다.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이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생산하는 브레인스톰Brainstorm과 시제품을 빠르고 반복적으로 테스트하는 바디스톰Bodystorm을 통해 진짜 문제를 찾고, 새로운 서비스와 경험을 혁신해 낸다. 이것이 IDEO의 창조력의 원천이다.
시대의 변화에 사고의 변화로 답하다
디자인 씽킹을 통한 혁신이 놀라운 것은 공감과 관찰, 그리고 관점을 바꾸는 것만으로도 훌륭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 때문이다.
이는 금융서비스와 같은 전문적 영역에서도 빛을 발한다. 신상품 개발과 고객유치에 열을 올리고 있던 뱅크 오브 아메리카BOA는 IDEO와 함께 50대 여성 고객들을 심층 인터뷰한 결과, 그녀들은 재정 문제에 관심은 많지만 금융은 어렵고 복잡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으며, 잔돈이 남는 것을 불편해 하면서도, 소액이라도 지속적으로 저축을 하고 싶어한다는 것, 그리고 예금상품의 이자는 당연하게 여기지만, 은행의 추가 적립은 혜택이라고 생각한다. 이에 하찮게 생각하나 버리기
는 아까운 잔돈을 자동으로 저축함과 동시에 동일 금액을 매칭하여 적립해주는 ‘잔돈은 가지세요Keep the Change’프로그램을 개발했다. 이 프로그램은 출시 후 현재까지 1,200만 명 이상의 신규 고객 확보에 기여했다.
고객에 대한 감정이입이 엄청난 혁신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도 있다. 소아 환자들이 MRI를 할 때, 기계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검사를 위해 마취제를 투여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시작한 GE헬스케어의 MRI 개선 프로젝트. 기존의 MRI, 엑스레이 등과 기계를 해적선과 우주선을 포함해 무려 아홉 가지의 모험시리즈로 재구성한 GE의 어린이MRI-어드벤처 시리즈는 아이들의 두려움을 줄여주어 소아 환자에 대한 마취제 투여를 급격히 낮추었다. 디자인 씽킹은 국내에도 다양하게 적용되고 있다.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무질서한 줄로 인도통행에 상습적으로 방해가 되는 강남역 버스 정류장 바닥에 가이드라인을 테이프로 붙이는 간단한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했다. 또 경영 사례에도 적용되는데 이마트의 경우 “기존에 해오던 생각과 업무방식으로는 꿈을 이룰 수 없다”고 판단, 이마트웨이의 핵심가치로 디자인 씽킹을 제시한 바 있다.
실패를 예찬하라
“혁신하던지, 사라지던지. Innovate or die.” 급변하는 경영환경에서 기업이 살아남기 위한 해답으로 피터 드러커는 이렇게 말한다. 혁신은 필연적으로 실수와 실패를 수반하게 되는데 이에 대해 데이비드 켈리는 “일이 잘 못 되어갈 때, 그 때 더 많이 배울 수 있다.”며, 혁신에 대한 공포를 제거하기 위해선 실패를 마주해야 한다는 것, 더 많은 성공을 원한다면 더 많은 실패를 가볍게 넘길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고 조언한다. 또 창조적 혁신 문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But’보다는 ‘And’를 통한 상호 존중과 다름을 틀림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유연한 사회적 분위기도 필요하겠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획기적인 생각을 해내고 그 생각을 행동에 옮길 수 있는 용기-창조적 자신감creative confidence-라고 데이비드 켈리는 제시한다.
자, 여기 디자인 씽킹 실천법이 있다. 스스로의 창조적 능력에 대한 믿음과 실패를 예찬하는 태도를 갖는 것부터 혁신을 시작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