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자생 꽃나무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꽃을 피우는 것으로 동백만한게 없다. 한복판에 샛노란 꽃술을 품은 선홍빛의 동백꽃은 윤기 나는 푸른 잎과 대비되어 더욱 탐스럽고 요염하다. 더욱이 동백꽃은 꽃부리를 활짝 펼치지 않고 양가집 규수처럼 수줍은 듯이 반쯤만 핀 채로 낙화한다. 붉은 꽃잎과 노란 꽃술이 함께 붙은 꽃송이가 목이 부 러지듯 땅에 떨어지는데, 땅에 떨어진 뒤에도 여전히 자태가 곱다. 그래서 동백숲은 반쯤 꽃이 질 무렵에 가장 볼 만하다.
선홍빛 동백꽃이 흐드러지게 핀 마량리 동백정 주변의 동백숲
동백은 본래 겨울에 피는 꽃이다. 동백(冬栢)이라는 이름도 그런 이유에서 붙여졌다. 하지만 동백꽃은 겨울철보다도 봄에 더 흔하다. 사시사철 기온이 따뜻한 제주도나 남해안의 섬 지방이 아니면 겨울철에 핀 동백꽃을 보기가 쉽지 않다. 남해안인 강진 백련사의 동백나무숲에서도 3월 말부터나 꽃구경이 가능하다. 그 유명한 고창 선운사의 동백숲은 4월 초순에 이르러서야 꽃부리를 하나둘씩 펼치기 시작해서 4월 내내 피고지기를 거듭한다. 충남 서천군 서면 마량리 도둔곶의 동백나무숲(천연기념물 제 169호)도 선운사 동백숲과 엇비슷한 시점에 개화를 시작한다.
마량리 도둔곶은 서해바다를 끼고 있는 서천군에서도 가장 서쪽에 위치한다. 이 도둔곶의 끝자락에 서천화력발전소가 있고, 발전소와 맞닿은 언덕배기에 80여 그루의 아름드리 동백나무가 자라고 있다. 아담한 동백동산의 맨 꼭대기에는 2층 누각인 동백정이 우뚝하다. 이 누마루에서는 상쾌한 서해바다와 섬뜩하도록 화려한 일몰 광경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다.
전설에 따르면, 지금으로부터 약 500여 년 전 마량에 주둔하던 수군첨사(水軍僉使)가 꿈에서 바닷가에 있는 꽃 뭉치를 봤는데, 이것을 심어 잘 기르면 마을이 번영할 것이라는 신의 계시를 받았다. 다음날 아침에 그 꽃뭉치를 찾아내 번식시킨 것이 바로 이 동백숲이라고 한다. 지금도 숲 정상의 동백정 옆에는 작은 당집이 하나있다. 계시를 내린 신을 모신 사당이다.
동백나무는 원래 키가 7m 넘게 자란다. 그러나 이곳의 동백은 수령이 수백 년에 이르는데도 키는 기껏해야 2m 안팎이다. 거센 바닷바람에 맞서 생명을 이어가려면 가지를 옆으로 뻗으면서 키를 낮추는 게 유리하기 때문이다. 또한 서로 가지가 맞닿을 정도로 빽빽한 여느 동백숲들과 달리, 몇 미터 간격으로 드문드문 서 있다. 언뜻 봐서는 자연적으로 형성된 숲이 아니라 사람의 손길로 다듬어진 정원처럼 단정하다. 하지만 이곳의 동백은 봄기운이 무르익은 뒤에야 꽃을 피우기 때문에 꽃과 잎이 모두 무성하다.
동백정에서 바라본 서해바다의 해질녘 풍경. 앞에 보이는 섬은 오역도이다.
아름드리 동백나무 아래의 떨어진 동백꽃
'동백꽃·쭈꾸미 축제'
해마다 이곳의 동백꽃이 절정에 이르는 4월(올해에는 3 월 30일~4월 12일까지 14일 동안 열림)에는 '동백꽃·쭈꾸미 축제'가 열린다. 동백숲 매표소 부근과 주차장에는 인근 바다에서 현지 어민들이 직접 잡은 쭈꾸미로 볶음, 회, 무침, 샤브샤브 등의 다양한 요리를 선보이는 '쭈꾸미 요리 축제장'이 설치된다. 화사한 동백꽃도 구경하고, 쫄깃한 쭈꾸미도 맛볼 수 있는 향토미각축제이다.
쭈꾸미는 동백정과 인접한 서면 도둔리의 홍원항 앞 바다에서 많이 잡힌다. 쭈꾸미를 잡는 방법에는 '소라방'과 '낭장망' 두 가지가 있는데, 홍원항과 마량리 근해에서는 소라껍질을 줄에 매달아 만든 '소라방'으로 쭈꾸미를 잡는다. 그렇게 하면 쭈꾸미가 산채로 잡히기 때문에 유난히 싱싱하고 맛이 좋다고 한다.
동백숲이 있는 마량리는 서해안에서 드문 해돋이마을로도 유명하다. 이곳에서는 동지(冬至)인 12월 22일을 전후로 약 60일 동안 마량포구의 동남쪽 수평선 위로 떠오르는 해를 감상할 수 있다. 하지만 동백꽃 피는 4월경에는 호수처럼 움푹한 바다 저편의 산봉우리에서 해가 솟아 오른다.
쭈꾸미와 뱅어(실치) 잡이로 한창 분주한 홍원항의 고깃배
서천해양박물관
마량리 동백숲으로 오가는 길가 언덕에는 서해안 최대의 해양박물관이라는 서천해양박물관(041-952-0020)도 들어서 있다. 총면적 3,500평, 건평 600평 규모로 지난해 3월 문을 연 이 박물관에는 전세계에서 수집한 해양생물의 박제와 표본, 그리고 실물 등 15만여 점이 전시돼 있다. 입장료(어른 4,000원, 어린이 2,500원)가 다소 비싸다는 점이 흠이긴 하지만, 다양한 종류의 바다 생물과 생태계를 보고 배울 수 있다는 점에서 아이들과 함께 한번쯤 들러볼 만하다.
동백꽃이 흐드러지게 필 즈음이면, 홍원 항의 어부들은 쭈꾸미뿐만 아니라 뱅어(실치)를 잡고 말리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분주하다. 여행객들에게는 바로 이때가 서해 포구의 정취를 가장 풍성하게 느껴볼 수 있는
기회가 된다.
홍원항을 품은 도둔리에는, 마량리 동백 숲과 함께 서천팔경 중 하나로 손꼽히는 춘장대해수욕장이 있다. 넓은 백사장과 울창한 솔숲을 거느린 해수욕장으로 유명한 곳이다. 썰물 때마다 광활하게 드러나는 이 해수욕장의 갯벌에서는 온 가족과 함께 맛조개잡이를 즐기기에 좋다. 갯벌에 숭숭 뚫린 구멍을 삽으로 살짝 걷어낸 다음, 맛소금을 조금 뿌려두면 바닷물이 들어온 줄로 착각한 맛조개가 구멍 밖으로 빠끔히 고개를 내민다. 이때 재빨리 맛조개를 낚아채면 된다. 이처럼 직접 맛조개를 찾아 드넓은 갯벌을 이리저리 훑고 다니다 보면 수평선 위로 설핏 기울어진 봄 햇살이 야속하게 느껴진다.
여행 쪽지 (지역번호 041)
숙식
춘장대해수욕장 북쪽의 도로변에는 화신모텔(951-8828), 백이모텔(952-4812), 아드리아모텔(951-3883), 비 취모텔(952-0077) 등의 시설 좋고 깔끔한 숙박업소가 있다. 그밖에도 마량리에는 동백정별장(952-2245), 해맞이파크 (952-3531), 서해민텔(952-3301) 등의 콘도식 민박집도 여럿 있다.
춘장대해수욕장 입구와 홍원항 주변에는 한솔가든(951-4966), 아침햇살(952-3949), 일송회관(952-2980), 보라가든 (952-2616)과 같이 생선회, 쭈꾸미랑, 김치찌개, 된장찌개 등의 메뉴를 내놓는 음식점들이 많다.
교통
· 자가용 : 서해안고속도로 춘장대IC(춘장대 방면, 2번 군도)→주항 삼거리(우회전, 607번 지방도)→도둔리→ 서천화력발전소 정문→동백정 · 안내여행 : 동백정의 동백꽃이 만개하는 4월에는 국내 가이드 여행업체들마다 동백정과 홍원항을 거쳐오는 당일 코스의 패키지 여행 상품을 앞다투어 내놓는다. 요금은 1인당 3만 5,000원~4만원 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