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녘 화산도에 가득한 화신(花信)
제주도의 봄꽃 가운데 가장 먼저 꽃망울을 터뜨리는 것은 수선화다. 원래 우리나라의 수선화는 주로 뜰이 나 화분에 심는 관상용 화초이다. 그러나 남해안의 섬 지역이나 제주도에는 야생 수선화도 있다. 특히 1월 초 순에서 3월 하순 사이에 제주도 남제 주군 대정읍 일대의 들녘을 돌아다니면 수줍은 듯 피어난 야생 수선화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제주도 절물휴양림 근처의 숲 바닥에 무리지어 핀 복수초
대정은 옛 제주의 삼음(제주·대정·정의) 중 하나였던 대정현이 자리했던 곳일 뿐만 아니라, 추사 김정희(秋史 金正喜)가 9년 동안 유배 생활을 했던 곳이기도 하다. 오랜 귀양 살이 내내 고적했던 추사는 모진 눈 바람에서도 단아한 꽃을 피우는 수선화를 매우 어여삐 여겼다. 당시 추사가 한양의 한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 는 '수선화는 정말 천하의 구경거리이다. 중국의 강남은 어떠한지 알 수 없지만, 여기는 방방곡곡 손바닥만 한 땅이라도 수선화 없는 데가 없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또한 추사는 수선화를 가리켜 '희게 퍼진 구름 같고 새로 내린 봄눈 같다.'고도 했 다. 수선화에 대한 추사의 애정과 관심이 얼마나 각별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는 표현이다.
반면, 얼마 안 되는 밭에다 온 가족의 생계를 의지하던 토박이 농민들에게 수선화는 골칫거리에 불과했다. 밭둑에 자라는 수선화는 농작물의 생장을 가로막을 정도로 생명력과 번식력이 강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제주 토박이들은 수선화를 '마농' 이라고 부른다. 그대로 해석 하면 '말이 먹는 마늘' 이지만, 진짜 속뜻은 '아무 짝에도 쓸모 없는 마늘' 이라는 뜻이다.
야생 수선화가 피는 대정 들녘, 그리고 인근의 산 방산 주변에는 유채밭이 흔하다. 유채꽃은 한동안 제주도의 봄꽃을 대표했으나, 지금은 수익성이 낮다는 이유로 재배 면적이 크게 줄었다. 2월 초부터 4월 말까지 산방산과 성산일출봉 일대, 섭지코지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유채밭들도 대부분 '관광용' 이나 '사진 촬영용'으로 조성된 것이다. 그래서 면적이 협소한데다, 그 안에 들어가려면 입장료를 내야 된다. 하지만 싱그러운 보리밭이 넓게 펼쳐진 대정 들녘에는 주민들이 '생업용'으로 조성했거나 자연발생적으로 생겨난 유채밭을 흔히 볼 수 있다.
대정 들녘의 밭둑에 핀 수선화
파릇한 보리밭이 펼쳐진 대정 들녘의 유채꽃. 멀리 뒤쪽에 '알뜨르비행장터'의 격납고 잔해가 보이고, 산방산과 한라산이 우뚝하다.
복과 장수를 기원하는 꽃, 복수초
제주도의 봄꽃 중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 중 하나는 복수초다. 야생화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좀 생소할지도 모르겠지만, 복수초는 수선화와 거의 비슷한 시기에 꽃망울을 터뜨리는 봄꽃이다. 봄 기운이 채 무르익기도 전에 눈과 얼음을 뚫고 핀다고 해서 눈색이꽃, 얼음 꽃, 얼음새꽃 등으로도 불린다.
복수초는 눈 속에서 핀다는 점도 매력적이지만, 진노랑의 꽃과 진초록의 잎이 아름답게 조화를 이룬다. 그 래서 바라보고만 있어도 마음이 절로 밝아지는 꽃이다. 꽃말도 '영원한 행복'이다. 또한 복수초(福壽草)는 그 이름처럼 '복과 장수를 기원하는 꽃' 이라 하여 새해 선물로 쓰이기도 한다. '원단화(元旦花)' 라는 복수초의 별칭도 거기서 비롯되었다.
제주도의 복수초는 2월 초순경부터 피기 시작해서 3월 중순경에 절정의 꽃 빛깔을 보여준다. 이 꽃은 육지 에서도 볼 수 있지만, 제주도 복수초가 훨씬 더 꽃잎이 크고 꽃 빛깔도 선명하며 잎도 무성하다. 이른봄의 살 풍경한 숲 바닥에 한 그루만 피어 있어도 단번에 눈길을 사로잡을 정도이다. 더욱이 제주의 복수초는 수백, 수천 그루가 군락을 이룬 채 피고 지는 데, 그 광경은 마치 갓 부화한 수천 마리의 노란 병아리를 일제히 숲에 풀어놓은 듯하다.
절물휴양림내의 숲에 소담스레 핀 변산바람꽃
인적 드문 숲에서 새하얀 꽃잎을 활짝 펼친 노루귀(절물오름 기슭의 숲에서 찍었다)
제주도의 복수초가 군락을 이루어 핀 광경은 대략 3월 15일에서 3월 30일 사이에 1112번 지방도(비자림로) 와 11번 국도가 만나는 삼거리 주변의 숲에서 볼 수 있다. 그리고 이곳 삼거리에서 1112번 지방도를 타고 1~2분쯤 가다가 만나는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꺾어지면 절물자연휴양림과 절물오름으로 가는 길인데, 이 길 주변의 숲에도 대규모 복수초 군락지가 형성돼 있다.
그러나 복수초는 날씨가 흐리거나 밤에는 꽃잎을 닫아버리기 때문에 화창한 날의 한낮에 찾아가야 절정의 개화 상태를 볼 수 있다. 복수초가 한 창 흐드러지게 핀 숲 속을 찬찬히 살펴보면 노루귀, 변산바람꽃 등의 야 생화도 간간이 눈에 띈다. 산골 새색시처럼 수줍게 피어난 야생화의 아름다움에 매료되다 보면 봄날 하루를 일장춘몽인 듯 덧없이 흘려보내기 일쑤다.
여행 쪽지(지역번호 064)
숙식
오래도록 독자적인 문화를 지켜온 제주에는 성게국, 갈치국, 옥돔구이, 오분자기뚝배기, 빙떡 등과 같은 독특한 향토 음식이 많다. 제주시내의 도라지식당(722-3142), 복집식당(722-5503), 물항식당(742-4976), 유리네식당(748-0890) 등을 찾아가면 제주 향토 음식의 진미를 맛볼 수 있다. 대정읍 모슬포항 인근에 자리잡은 해녀식당(794-3597)과 항구식당(794-2254)도 향토 음식뿐만 아니라 생선회, 해물뚝배기, 회덮밥 등을 잘하는 집으로 소문나 있다. 그밖에 모슬포의 산방식당(밀냉면, 794-2165), 안덕면 사계리의 남경미락(일식 요리, 794-0055)과 진미식당(생선회, 794-0033)도 추천할 만한 맛집이다.
제주시의 탑동과 신제주에는 각종 숙박업소가 몰려 있어 성수기에도 숙소를 구하기가 별로 어렵지 않다. 특히 동문로터리 부근의 대동호텔(723-2600)은 깨끗하고 고급스런 시설 수준에 비해 숙박료(약 4~5만원)가 저렴해서 비즈니스맨이나 알뜰한 신혼부부들이 즐겨 찾는다.
대정읍 일대에는 실버스타호텔(상모리, 794-6400), 한남가든호텔(인성리, 794-3431) 등이 있고, 대정읍과 인접한 안덕면에 자리잡은 산야별장리조트(사계리, 794-9999), 오션하우스(사계리, 792-4540), 라파도휴양펜션(사계리, 792-1331), 카엘리아힐(상천리, 739- 3900) 등의 펜션하우스도 권할 만하다. 절물자연휴양림 부근에 위치한 명도암관광휴양목장(721-2401)과 명도암유스호스텔(721-8234), 그리고 비자림로(1112번 지방도)와 남조로(1118번 지방도)가 교차하는 교래 사거리 부근에 위치한 사랑터울(782-0102)도 이용해볼 만하다. 동화 속의 그림처럼 아름다운 사랑터울은 절물자연휴양림과의 거리(자동차로 10여분 소요)도 가깝고, 조용한 삼나무 숲에 자리잡고 있어 자연을 벗삼아 느긋하게 쉴 수 있는 펜션이다.
교통
· 수선화 자생지 : 제주시내에서 서부산업도로(95번 국도)를 경유하는 대정행 버스를 이용해 인성리에서 하차 · 산방산 앞의 유채밭 : 대정에서 화순행 시내버스를 이용해 산방산 입구에서 하차 · 절물자연휴양림 : 제주시내에서 명도암행 시내버스를 이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