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력 정월 보름날, 한자로 상원(上元)이라고 하는 이 날은 본래 우리의 세시풍속에서는 가장 중요한 날로, 설날만큼 비중이 컸다. 임동권의 저서 「한국세시풍속」에서는 음력 정월 14, 15일의 대보름 관련 행사가 1년 전체 행사의 4분의 1에 해당한다고 보고하고 있다. 1월 1일은 1년이 시작되는 날로 당연히 큰 의의를 가졌지만, 달의 움직임을 표준으로 삼는 음력을 사용하는 사회에서는 1년의 첫 보름달이 뜨는 대보름날이 보다 더 중요한 뜻을 지녀왔다.
태양이 양(陽)이며 남성으로 인격화되는데 비해 달은 음(陰)이며 여성으로 인격화된다. 따라서 보름달은 지모신(地母神)으로서 여성을 의미하며, 대지의 풍요로움을 뜻한다. 전통 농업사회에서는 1년의 농사가 잘되기를 바라는 풍요의 기원을 담은 정월 대보름이 중요시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러한 정월 대보름에는 중요도만큼이나 많은 행사들이 있었다. 동제(洞際)의 경우 첫 보름달이 뜨는 시간에 여신에게 대지의 풍요를 비는 데에서 유래되었다하고, 전통 행사인 줄다리기도 보름달이 뜨는 밤에 행하는 것이 원칙이었다고 한다. 절식으로 약 밥 • 오곡밥 • 묵은 나물 • 귀밝이술 등을 먹었고, 제의와 놀이로 지신밟기 • 별신굿 • 쥐불놀이 • 오광대탈놀음 등이 있었으며, 고싸움 • 나무쇠싸움 등의 편싸움이나 각종 액막이 행사들이 행하여졌다.
음력 중심의 농업사회에서 양력 중심의 산업사회로 변하면서 정월 대보름의 의미는 많이 퇴색되었다. 하지만 아직도 이러한 대보름의 전통 풍습을 지키며 간직하려는 축제들이 각 지역에서 벌어지고 있다. 설날이나 추석과는 달리 아직 옛 전통이 복원되지 않은 정월 대보름을 중심으로 지방 축제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고맙고 의미 있는 일일 것이다. 다만, 전통이란 시대에 따라 새롭게 재창조되기도 한다는 명제를 생각해 볼 때, 변화한 사회에 맞는 새로운 내용과 의미의 대보름 축제로 자리매김하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여기서는 대표적인 대보름 축제로서 대보름날의 행사인 해운대 달맞이 축제와, 대보름날 행사를 포함한 지역종합축제로서 삼척 죽서문화제를 소개한다.
해운대 달맞이 축제
여름만 되면 피서 인파의 기준으로 매스컴에 오르내릴 정도로 유명한 곳이 부산 해운대이다. 하지만 해운대는 그렇게 복잡한 여름보다 겨울의 바다풍경이 훨씬 더 운치 있고 아름답다. 해운대라는 이름은 신라의 학자이며 문인인 최치원이 가야산 입산 길에 이곳을 지나다가 경치가 너무 아름다워 동백섬 동쪽 벼랑의 넓은 바위위에 해운대(海雲臺)라고 쓴데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해운은 최치원의 자(字)이다.
해운대 달맞이 축제는 해운대해수욕장 일원에서 매년 정월 대보름날 둥근달이 뜨면 대형 달집태우기, 전통 민속놀이인 널뛰기, 윷놀이, 연날리기, 둥근달을 보며 올 한해의 소원을 비는 행사로, 전국 각지에서 수많은 인파가 몰린다. 해운대 보름달은 옛날부터 수많은 사람들에 의해 칭송되었듯 평소보다 2배 이상 커 보이며, 수평선 위로 떠오를 때면 주변 바다가 용광로처럼 끓어오르는 듯이 보여 대단히 인상적이다.
해운대는 산의 절벽이 바다 속에 빠져 있어 그 형상이 누에의 머리와 같으며, 그 위에는 동백나무 • 두충나무 • 소나무 • 전나무 등이 자라고 있어 싱싱하고 푸르기가 사철 한결 같다고 기록될 정도로 알려진 명승지로서 대한팔경의 하나로 이야기되어왔다.
또 어느 때부턴가 달뜨는 모습을 볼 수 있는 명소로 유명해진 달맞이고개에서 바라보는 바다는 창파라 일컬었을 정도로 빼어난 경승지로 인식되었다. 하지만 옛날의 한적한 장관은 대도시가 들어섬으로써 거의 사라지고, 이제는 달맞이의 장관이 변함없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바다에서 뜨는 달의 경관이 이곳 뿐은 아니겠지만, 해운대는 동해와 남해가 만나는 지점으로, 월출의 장관에서 월 몰의 경관까지 모두 볼 수 있는 곳이라 더욱 의미가 있다.
달맞이 축제가 열리는 음력 대보름날이면 달맞이고개나 해운대 백사장에서 달구경을 위해 모여드는 시민과 외부인들이 상당히 많아지는데, 특히 해운대 바닷가 달구경의 진수는 달집태우기와 함께 동•서해안에서는 볼 수 없는, 한밤 내내 바다를 비추며 살아있는 보름달의 정취이다. 그리고 대보름이면 옛날부터 설날처럼 밤을 새는 풍습이 있었다. 잠을 자면 눈썹이 센다고 하여 잠 안자는 내기를 하는 풍습도 곳곳에 많았는데, 이를 따라 해운대 보름달 아래서 밤새도록 잠 안자는 사람들도 많다.
축제의 주요 행사 내용으로는 달집태우기, 월영 축원제, 윷놀이, 널뛰기, 농악 놀이, 강강수월래, 지신밟기, 어선 횃불놀이, 쥐불놀이, 풍물마당 등이 행하여진다.
부산 해운대는 해수욕장을 비롯하여 온천, 고급관광호텔 등의 숙박시설 및 위락시설이 잘 갖추어진 우리나라에서 손꼽는 관광지, 피서지, 피한지이다. 이곳 해운대에서 달맞이고개를 넘어 송정해수욕장으로 이어지며, 송정해수욕장을 거쳐 바닷가 바로 앞에 창건된 사찰 용궁사까지는 멋진 해안도로가 이어져 좋은 드라이브 코스가 된다. 한편 해운대에서 수영만을 거쳐 해안을 따르면 또 다른 겨울바다의 명소 광안리로 이어진다. 광안리에는 해수욕장보다 예쁘고 분위기 있는 카페들이 모여 있어 젊은이들이 즐겨 찾는다.
가는 길
차량으로는 어디로 가나 부산 시내를 거쳐야 한다. 경부고속도로로 올 경우 구서IC에서 도시고속도로를 타고 해운대방면으로 진입하는 것이 편리하며, 남해 방면에서는 구포IC에서 만덕 2터널을 거쳐 안락동-해운대 방면으로 간다.
대중교통의 경우 부산은 대단히 편리하다. 서울에서는 고속버스 • 기차 • 항공기를 통해 부산에 갈 수 있으며, 기타 대도시에서도 부산에 가는 교통은 잘 발달되어 있다. 부산역과 고속터미널에서 해운대행 시내버스가 자주 있으므로 쉽게 접근할 수 있다.
숙박 및 먹거리
해운대에는 해운대 그랜드호텔(051-7400~555), 파라다이스비치호텔(051-749-2111) 등의 고급호텔과 한국콘도 (051-741-5005), 글로리콘도 (051-746-8181) 등의 콘도, 신라장(051-743-6288) 등의 여관과 모텔 등의 시설이 많고 잘 되어 있다. 먹거리로는 해운대구 중동 금수복국(051-742-3600)의 복국, 수영구 망미동 옥미아구찜 (051-754-3789)의 아구찜이 유명하다.
삼척 죽서문화제
강원도 남부 삼척은 푸른 바다의 고장이며, 옛날부터 엄청난 오지처럼 인식되었던 곳이다. 무릉계곡으로 유명한 두타산과 중봉산 등이 백두대간의 분수령을 이루면서 남북으로 횡단하고, 동쪽은 급경사를 이루고 있다. 이러한 지형 때문에 삼척지역은 동해안 전체에서 해안절벽이 가장 잘 발달해 있다. 그래 서 그 바위절벽 틈 사이사이로 작은 어촌들이 많이 발달했고, 토박이가 아닌 외지인들에게는 짜릿할 정도로 짙푸른 바다와 함께 멋진 경치를 연출한다. 초곡 • 갈남 • 신남 • 비화진 • 호산 등이 모두 이런 어촌들이다.
하지만 그 척박한 땅에 생계를 부치고 사는 사람들을 생각해보자. 주류에서 소외당한 이곳 사람들은 '황영조' 같은 유명 인사가 한 번 나타나면 열광적으로 영웅시하여 그의 출신 마을 전체를 아예 그 인물과 관련시켜 '도배' 한다. 황영조 마을 '초곡', '금메달 주유소', '황영조 어머니의 기도처 영은사' 등등. 만약 황영조가 서울이나 그외 대도시에서 태어났다면 이런 영광을 얻을 수 있었을까. 소외는 비운의 역사와 연결된다. 고려의 마지막 왕 공양왕이 귀양 와서 죽음을 당한 후 묻힌 공양왕릉이 궁촌에 있고, 한창 몽고가 이 땅을 짓밟을 때 이승휴라는 승려가 세상을 한탄하며 여기까지 흘러들어와 「제왕운기」를 집필했던 천은사도 있다.
이러한 소외의 역사 때문에 삼척은 오히려 민간신앙의 메카로 알려져 있다. 그것은 곧 중심지에서는 거의 사라진 과거의 흔적들이 꾸준히 살아 숨 쉬고 있다는 뜻이며, 개발과 발전의 수레바퀴가 미치기 힘들었다는 이야기이다. 조선시대의 유학자 관료들이 삼척에 부임하여 이른바 '미신', '음사'로 보이는 풍속들을 없애려고 했으나 실패했다는 「동국세시기』의 기록은 이 동네가 과거에 얼마나 개발이 안 된 궁벽한 동네였는지를 알 수 있게 한다.
따라서 삼척은 고유의 전통과 풍습을 꾸준히 유지해온 이 땅의 얼마 안 되는 동네이며, 동해안 다른 지역들에 비해 오염도 적고 인심도 살아있는 곳이다. 이러한 삼척 땅에서 정월 대보름을 전후해 벌이는 대표적인 행사가 바로 죽서문화제이다.
죽서문화제는 정월 대보름에 실시했던 이 고장 특유의 기줄다리기를 주축으로 천신 • 농신 • 해신에게 초복과 풍년, 풍어를 기원하는 삼원제, 그 외의 놀이들을 곁들여서 정월 대보름에 거행하는 제전으로서, 정월대보름제'라 이름 붙여 1973년 음력 정월 15일에 사대광장의 옛터인 구 시청 앞 대로에서 처음 실시했다. 이 행사가 해를 거듭할수록 주민들의 호응도가 높아지고 전국에 널리 알려져 삼척시의 민속 축제가 아니라 전국적인 특유한 민속 행사로 발전하였다. 그리하여 1978년 제6회에 접어들면서 삼척시만 시행하던 정월대보름제를 발전, 확대시켜 삼척민속놀이위원회의 명칭을 죽서문화제위원회(033-573-2401)로 바꾸고 '정월대보름제'를 '죽서문화제'로 개칭하여 오늘에 이른다.
축제 행사들 중 특히 '기줄다리기'는 1976년에 강원도 지방무형문화재 제2호로 지정받았다. 조선 현종 때 삼척부사 허목이 농민들의 사기를 높여주기 위해 연 행사에서 유래를 찾을 수 있는 기줄다리기는 정월 초하루부터 대보름까지 아이들의 속닥기줄, 청소년들의 중기줄, 어른들의 큰 기줄다리기로 이어지는 대규모 행사이다. 그 외에 살대를 세워 풍년 농사를 기원하는 살대세우기가 있으며, 해안지대라 풍어를 기원하는 독특한 행사로 남근깎기대회가 있고, 달집태우기, 망월놀이, 불꽃놀이, 연날리기 시연, 윷놀이, 풍물마당 등의 행사가 펼쳐진다.
특히 이 지방만의 별난 행사인 남근깎기대회는 이제 상당히 알려진 행사가 되었는데, 본래 신남리에서 물에 빠져 죽은 처녀를 위로하기 위해 해신 당을 만들어 향나무를 남근 모양으로 깎아 매년 대보름에 바치는 해신제에서 유래한다. 전국 각지에 존재했던 여신을 모시는 해신당은 이제 거의 사라졌지만, 이곳만은 그 전통을 살려 보존하고 있다. 신남리의 해신당에 가면 입구에 남근 작품들도 있어 해학적인 웃음을 자아내지만, 이것은 풍어와 액막이를 위한 전통행사로서, 건강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보면 될 것이다. 성이 은밀한 무엇으로 감추어지면서 상품화되고, 한편으로는 개방이라는 이름하에 무분별하게 성행하는 현실풍조에서 이러한 전통은 오히려 신선하게까지 느껴진다.
가는 길
서울 방면에서 영동고속도로를 따라 동해로 온 후, 남쪽으로 7번 국도를 이용해 삼척에 닿거나, 경북 포항방면에서 7번 국도를 따라 북쪽으로 영덕-울진을 거쳐 삼척에 이른다. 대중교통으로는 서울에서 고속버스를 이용하거나 경북 포항 • 경주 방면에서 강릉이나 속초에 이르는 시외버스를 이용, 삼척에서 하차한다.
숙박 및 먹거리
삼척의 숙박시설은 그다지 발달하지 못했다. 삼척 시내에는 청수장(033-574-7101)을 비롯한 장급 여관들이 있고, 원덕읍(호산)의 호산그랜드호텔(033-572-4484)과 용화리와 장호리 사이의 장호용화관광랜드모텔(033-573-6321)을 이용할 만하다. 해안에는 민박집들이 발달했다. 먹거리로는 음식문화가 그다지 발달하지 않았지만, 바다에 인접하여 회를 먹을 만하다. 삼척시 남단의 임원항에 가면 포구에 들어선 간이 횟집들에서 싼값에 모듬회를 먹을 수 있다. 삼척시내 오신다식당(033-574-4521)의 해물잡탕인 삼보잡탕도 유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