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무대에 선 e-스포츠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아시안게임 중계방송에 게임 화면이 잡혔다. 관중석에 가득 차 있는 사람들의 함성과 게임에 몰입한 채 굵은 땀을 흘리는 선수들, 게임 상황을 설명하고 분석하는 캐스터와 해설자의 긴장감 넘치는 목소리가 생생하게 들렸다. 리그오브레전드, 스타크래프트2 등 총 6개 게임을 시범종목으로 채택한 자카르타-팔렘방아시안게임은 e-스포츠의 스포츠 대회 진출을 알린 신호탄이었다. 나아가 코로나19 때문에 개최가 내년으로 연기된 항저우아시안게임에서는 게임 8개가 아예 정식종목으로 채택됐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도 올림픽 흥행을 위해 서서히 e-스포츠를 받아들이는 모양새다. 도쿄올림픽 개최 한 달 전인 작년 5월 13일, IOC는 가상 올림픽 시리즈(Olympic Virtual Series·OVS)를 개최했다. 아시안게임처럼 인기 있는 게임을 그대로 가져오는 대신 야구, 조정, 사이클, 세일링, 카레이싱 등 현실의 스포츠를 가상세계로 옮긴 게임을 활용했지만, e-스포츠 도입에 부정적이었던 IOC의 인식 변화가 느껴지는 대목이다.이렇듯 ‘e-스포츠의 스포츠화’는 생각 이상으로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그런데 이쯤에서 한 가지 질문이 떠오른다. 과연 e-스포츠를 스포츠의 범주에 포함시킬 수 있을까?
e-스포츠가 스포츠인 이유
‘일정한 규칙에 따라 개인이나 단체끼리 속력, 지구력, 기능 따위를 겨루는 일.’ 국어사전은 스포츠의 의미를 이렇게 정의하고 있다. 실제로 스포츠는 이 문장을 밑바탕 삼아 펼쳐진다.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규칙이다. e-스포츠에도 각 게임별 규칙이 존재한다. 게이머들은 그 규칙 아래에서 저마다의 전략과 고난이도 플레이를 선보이며 승리를 위해 치열하게 경쟁한다. 돈을 써야 유리해지는 게임도 많지만, 순수하게 게이머의 실력으로 승패를 겨루는 게임도 많다. 대부분의 e-스포츠 대회는 후자에 속하는 게임으로 치러지며, 2018년 아시안게임 시범종목으로 선정된 게임들도 각 선수의 실력이 중요한 게임이 대다수였다.
몸을 격하게 움직여야만 꼭 스포츠인 것은 아니다. 바둑, 체스, 포커는 선수의 전략이 곧 실력으로 이른바 두뇌 스포츠라 불린다. e-스포츠도 마찬가지다. 캐릭터를 정밀하게 조작하는 육체적 능력과 순간을 포착하는 동체시력, 판을 분석해 아군을 승리로 이끄는 전략성, 끈끈한 팀워크 등이 두루 요구되기에 스포츠라 불리기에 부족함이 없다. 게다가 아시안게임, 올림픽, 월드컵 등 세계적 스포츠 대회의 흥행성이 점차 떨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MZ세대의 커다란 인기를 등에 업은 e-스포츠를 종목으로 편입시키는 일은 시대적 숙명인지도 모른다.
명실상부 ‘대세 스포츠’로 거듭나다
축구에 리오넬 메시가 있다면, e-스포츠에는 이상혁이 있다. ‘페이커(Faker)’라는 아이디로 더 유명한 그는 e-스포츠계의 살아 있는 전설로 평가받는다. 2013년 리그오브레전드 프로게이머로 데뷔한 그는 그야말로 독보적인 실력으로 전 세계적 인기를 누리고 있다. 리그오브레전드를 잘 모르는 사람도 페이커 이상혁이라는 이름은 한두 번쯤 들어봤을 정도. 2018년 그의 아시안게임 출전은 그 자체로 커다란 이슈가 됐으며, MZ세대를 아시안게임 관중으로 끌어들이는 원동력으로 작용했다. 전 세계 대부분의 대회를 평정한 그는 내년에 열릴 예정인 항저우아시안게임에서 반드시 금메달을 획득, 자카르타-팔렘방아시안게임 때의 은메달을 넘어선다는 각오를 밝혔다.수많은 전문가들은 조만간 e-스포츠가 세계 최대 규모인 미국프로풋볼리그(NFL) 슈퍼볼 시청자 수를 넘어설 것이라 예견한다. 전 세계 어디에서나 쉽게 즐길 수 있고 MZ세대의 절대적 지지를 얻고 있으며 페이커와 같이 스타성을 갖춘 선수들도 등장하고 있으니, 이는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이 시대의 대세 스포츠로 거듭난 e-스포츠는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진화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