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북도 부안 내소사
산과 들, 바다가 어우러진 곳부안은 천혜의 관광지다. 1990년대 초 유홍준 교수는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서 전남 강진과 더불어 답사 첫걸음을 놓고 고민하기도 했다. 유 교수는 당시 “(부안엔) 조용하고 조촐한 가운데 우리에게 무한한 평온을 안겨다 주는 저 소중한 아름다움을 끝끝내 지켜온 그 고마움이 있다”고 적었다.
전나무 숲길 산책 그리고 템플스테이
내소사 앞. 어느새 눈이 소복이 쌓였다. 내소사 전나무 숲길 바닥은 온통 눈으로 하얗다. 일주문에 들어서자 하늘을 찌를 듯 30~40m 높이의 아름드리 전나무들이 방문객을 에워싼다. 울창한 터널을 이룬 전나무숲길은 사찰 앞까지 600여m 이어진다. 숨을 크게 들이쉬니 전나무 특유의 맑은 향내음이 몸 깊숙한 곳까지 스민다. 바람이 부니 향이 더 진하게 코끝을 파고든다. 지나온 길, 발자국이 눈밭에 새겨져 있다. 내소사 전나무 숲길은 150여 년 전 일주문에서 사천왕문에 이르는 길에 심은 전나무가 울창한 숲을 이루면서 만들어졌다. 내소사 전나무 숲은 월정사, 광릉수목원과 함께 우리나라 3대 전나무 숲으로 꼽힌다. 월정사 숲길이 가지런히 정리된 모습이라면 이곳 숲길은 나무들이 자연스럽게 심어져 있어 더 푸근한 느낌이 난다. 전나무숲을 나와 사천왕문을 지나면 사찰 경내에 든다. 경내에서 가장 먼저 만나는 느티나무는 1000년을 살았다. 매년 주민들과 스님들이 당산제를 지낸다. ‘할아버지 당산나무’로 불리는데 ‘할머니 당산나무’는 일주문 입구에 있다. 내소사는 화려하지는 않지만 고졸한 멋을 풍긴다. 고려동종, 법화경절본사본, 대웅보전, 영산화쾌불탱화 등의 보물을 보유하고 있으니 부화(浮華)한 사찰과는 전혀 거리가 멀다. 대웅보전은 못 하나 쓰지 않고 나무를 깎아 끼워 맞춰 지었다고 한다. 특히 정면 여덟 짝의 꽃무늬 문살은 꽃잎의 아름다움을 그대로 담은 정교한 조각으로 유명하다. 오랜 세월 비바람에 씻겨 색은 모두 지워져 채색 없이 말간 나뭇결을 그대로 내보이고 있지만 오히려 그 소박함이 보는 이로 하여금 경건한 신앙심을 자아내게 한다. 대웅보전 법당 안 부처님을 모신 불단 뒤쪽에는 벽 전체 가득 백의(白衣)관음보살좌상이 그려져 있다. 국내에 남아 있는 백의관음보살좌상 중 가장 크다. 이 관음보살의 눈을 보고 걸으면 눈이 따라오고, 그 눈을 마주치면서 소원을 빌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내소사 가는 버스를 탄다.
한적하다.
덜컹거리는 버스 창밖으로 삶의 모습이
천천히 천천히
지나간다.
사람들은
풍경은 그렇게
흘러간다
눈 내리는 산사 온통 세상은
하얗고 조용하다.
그곳에서 만나는 나는 어제와 또다른 나로
거듭나 있다.
지나온 삶과 지금의 삶
그리고 앞으로의 삶이 만나는 곳
눈을 감고
나를 들여다 본다.
내소사는 트레킹 템플스테이로 유명하다. 사찰에 머물면서 산과 계곡을 걸으며 사색에 잠기는 프로그램이다. 내소사를 출발해 직소폭포, 제백이고개, 관음봉 삼거리, 전나무 숲을 거쳐 다시 사찰로 돌아오는 코스다. 트레킹 템플스테이가 부담스럽다면 휴식형 템플스테이에 참여하는 것도 한 방법. 새벽 예불과 공양만 참여하고 자유롭게 템플스테이를 경험할 수 있다. 절에 하루만 머물러 보시길. 그러다보면 바람이 지나가는 소리, 나뭇잎이 구르는 소리, 물 흐르는 소리까지 또렷이 들린다. 또 그렇게 한참 동안 자연의 소리를 듣고 있다 보면 어느새 자기 내면의 소리까지 들린다. 내소사를 찾았을 때, 마침 아이들이 템플스테이에 참여하고 있었다. 초등학생부터 여드름이 듬성듬성한 고등학생들까지 약 서른 명이 내소사 한켠 요사채에서 두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법당에 얌전하게 모여 앉아 있었다. 너른 법당 안에 앉은 아이들의 머리 위로 스님의 말씀이 내려앉았다. “자신에게 예의를 지켜야 합니다. 바른 자세로 앉고 바른 자세로 먹고 바른 자세로 생각을 해야 합니다.” 아이들의 얼굴은 자못 진지했다. 사찰에서 옷을 어떻게 입어야 하는지, 걸음은 어떻게 걸어야 하는지 스님의 설명이 이어졌다. 그리고 템플스테이에 대한 대략적인 설명이 끝나자 내소사 경내를 돌아보는 시간이 계속됐다. 시간이 지날수록 눈발은 거세졌지만 아이들의 진지한 눈빛은 한층 깊어졌다.
절로 걸음이 느려지는 길
변산에도 걷기 좋은 길이 있다. ‘변산 마실길’이다. 2009년 10월, 변산반도를 따라 걷는 17.5km의 길이 처음 열리면서 만들어졌다. ‘마실’은 마을을 뜻하는 사투리로 전라도에서는 이웃에 놀러다니는 일을 뜻한다. 마실길의 시작점은 새만금전시관. 내소사에서 합구정류장까지 가는 버스를 타면 새만금전시관에 닿는다. 변산여행 시작점을 이곳으로 잡아도 좋다. 새만금전시관에서 출발해 내소사와 곰소항에서 마무리하는 여정. 부안시외버스터미널에서 새만금전시관까지 수시로 군내버스가 다닌다. 새만금전시관에서 변산해수욕장 인근 송포마을까지 길이 이어진다. 시작점에서 길은 두 갈래로 나뉘는데, 해안도로를 따라가면 이내 고사포 해변이 나온다. 백사장의 길이가 2km에 달하는 커다란 해수욕장이다. 백합을 비롯한 형형색색의 조개껍질이 만들어낸 백사장은 마치 투명한 유리알처럼 반짝인다.
고사포 해변을 빠져나오면 해안초소길을 따라 걷게 된다. 그리고 길은 적벽강에 도착한다. 적벽강은 송나라의 소동파가 놀았다는 중국의 적벽강과 흡사해 붙여진 이름. 붉은색 암반으로 이루어진 높은 절벽이 장관이다. 적벽강에서 격포해변을 지나면 채석강. 채석강은 강이 아니라 변산반도 서쪽 끝 격포항과 그 오른쪽 닭이봉 일대 1.5km의 층암절벽과 바다를 총칭하는 이름이다. 화강암, 편마암을 기저층으로 약 7천만 년 전인 중생대 백악기에 퇴적한 단애가 마치 수만 권의 책을 쌓아놓은 듯이 와층을 이루고 있다. 기기묘묘한 해식 단애의 모습은 자연의 신비한 섭리를 한껏 일깨워준다. 조수간만의 차이로 인해 형성된 기이한 절벽에 파도가 부딪는 소리를 들으면 자연과 하나 되는 기분을 만끽할 수 있다. 채석강이란 명칭은 옛날 중국의 시성 이태백이 배를 타고 술을 마시다가 강 위의 달그림자를 잡으려다 빠져 죽었다는 채석강과 비슷하다고 해서 붙여졌다.
변산의 먹을거리는 풍성하고 탐스럽다. 변산 최고의 별미로 꼽히는 것은 바지락죽. 기름진 서해 갯벌에서 금방 캐어낸 싱싱한 바지락을 가지고 요리하기 때문에 쫄깃쫄깃한 맛과 향이 뛰어나다. 변산에서 지나칠 수 없는 또 다른 메뉴는 백합죽이다. 백합은 다른 조개에 비해 조갯살이 푸짐하고 탱탱한 것이 특징이다. ‘맛보다 영양으로 먹는 조개’란 말이 있을 정도로 귀한 대접을 받는다. 달짝지근한 첫맛과 쌉싸름한 끝맛을 지닌 백합은 물이 좋을 땐 회로, 저녁 무렵엔 탕이나 구이로 다양하게 변신한다. 변산까지 와서 젓갈을 맛보지 않을 수도 없는 일이다. 젓갈 산지로 가장 유명한 곳은 곰소항. 풍부한 해산물과 천일염을 이용해 옛날부터 젓갈을 만들었는데, 교통이 불편했던 점이 오히려 저장 문화가 발달하는 결과를 낳았다. 온갖 종류의 곰소젓갈은 변산반도 근해에서 어획되는 어류를 원료로 한다. 곰소 염전에서 1년 이상 저장하여 간수를 제거한 깨끗한 소금만을 사용하기 때문에 위생적이며 맛 또한 담백하기 그지없다.
포구 바로 옆에 젓갈가게가 늘어서 있다. 여러 종류의 건어물이 수북하고, 팔팔한 생선을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곰소항 인근에는 젓갈정식을 내는 식당들이 몰려있는데, 1만원도 안 되는 가격으로 푸짐한 상을 받을 수 있다. 어리굴젓, 오징어젓, 창란젓, 낚지젓, 꼴뚜기젓, 갈치젓, 갈치속젓, 명란젓, 바지락젓 등 갖가지 젓갈이 상에 가득 오른다.
내소사 여행정보
★ 가는 길 강남고속버스터미널(02-6282-0114)에서 부안까지 고속버스가 운행한다. 첫차 6:50, 막차 19:30. 1일 16회 평균 50분 간격 배차3시간 정도 소요. 부안에서 격포까지, 부안에서 곰소까지, 부안에서 내소사까지 직행버스와 시내버스가 15~20분 간격으로 다닌다. 부안시외버스터미널(063-584-2098)과 부안 관광안내소(063-580-4434)로 문의.
★ 템플스테이 사찰에서는 예를 갖춰야 한다. 정숙한 행동은 기본이고 특별한 일 없이 불전에 들어가서 배회하거나 탑에 오르지도 말아야 한다. 신발을 끌면서 걷거나 급하다고 뛰지도 말아야 하며, 노래를 부르거나 잡담도 삼갈 것. 법당 문이나 기타 건물에 들어갈 때는
자신의 신발을 잘 정돈해야 하고 길에서 스님이나 불자(佛子)를 만났을 때는 가벼운 목례 등으로 인사를 하는 게 예의다.
내소사 템플스테이. www.naesosa.org, 063-583-3035
★ 묵을 곳 격포항 주변에 채석리조텔오크빌(063-583-8046), 채석강스타힐스호텔(063-581-9911), 대명리조트 변산 (1588-4888), 펜션노을빛언덕(063-581-6622) 등 숙박시설이 많다.
★ 먹을 곳 부안 바지락죽의 원조는 변산온천산장(063-584-4874)이다. 붐비는 날은 대기표를 받아야 할 정도로 이미 ‘전국구 맛집’이 됐다. 부안 내 대부분 식당에서 죽을 끓이지만 계화회관(063-584-0075)의 것을 으뜸으로 친다. 곰소항 인근의 곰소쉼터(063-584-8007)는 젓갈정식으로 사람들의 입맛을 사로잡는 집이다.
불편한 여행이오히려 많은 것을보게 함을 깨닫는다.
자가용이 아니어서더 느리게 자세하게더 가까이 삶의 풍경을 본다.그래서 참 좋다.
걸으며 만나는풍경은 그대로나의, 우리의추억이 된다.
두 눈에 마음에천천히 새겨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