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 후 집에 도착한다. 택배 상자가 문 앞 가득 쌓여 있다. 물티슈나 화장지 같은 생필품, 아이 책과 장난감, 냉동식품 같은 것들이 택배로 온다. 영양제와 화장품도 있다. 도착한 박스를 하나씩 집 안으로 들이고 있으면 아이는 혹시 자기 것이 있는지 호기심을 가지고 묻는다. “아빠 이건 뭐예요?”
물건이 택배로 도착하는 것은 아이에겐 익숙한 정도를 넘어 당연한 일이다. 부모님이 물건을 고르고 흥정하는 모습을 자주 지켜봤던 내 어린 시절과 다르다. 주말에 간혹, 집에 있을 때 택배가 도착하면 아이는 후다닥 문 앞으로 달려가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인사를 한다. 모르는 사람이 이렇게 자주 집에 찾아오는 것도 아이에겐 익숙한 일. 온라인 쇼핑은 아이가 살아가는 세상의 보편적인 일상이다. 우리 시대의 문화다. 택배 차량이나 온라인 쇼핑몰의 배송 차량은 동네 골목의 익숙한 배경이 되어 우리 시대의 풍경화를 이룬다.
우리 시대의 문화, 라고까지 말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오프라인 쇼핑을 안 할 수는 없다. 온라인 서점에서 일하고 있으니 책은 온라인으로 자주 사지만 옷이나 가전제품 등은 오프라인 매장에서도 꽤 산다. 옷의 착용감이나 가전의 작동감을 확인해야 구매 결정을 내릴 수 있는 경우가 있다. 식품은 말할 것도 없다. 맛이 있을지 없을지, 얼마나 신선한 상태로 도착할지 누구도 알 수 없으니까. 하지만 그런 경우조차도 온라인으로 구매하게 되는 계기가 올해 생겼으니, 바로 코로나 19 바이러스 때문이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면서 사람과 사람 사이의 물리적 거리만 멀어진 것이 아니다. 사람과 물건 사이의 거리도 멀어졌다. 대형 쇼핑몰로 향하던 발길을 멈추어야 했고, 쇼핑몰에 가득 들어차 있던 물건들은 내 시야 밖에 머물렀다. 나도 자연스레 온라인 쇼핑을 이전보다 많이 이용하게 되었다. 새로운 브랜드의 봄옷을 온라인으로 샀고, 프린터와 키보드도 구매했다. 간단히 아침 대용으로 먹을 수 있는 간편식도 구매했다.
도착한 옷은 걱정과 달리 딱 맞아서 아주 잘 입고 있고, 프린터도 키보드도 만족하며 쓰고 있다. 무엇보다 감탄했던 것은 간편식이다. 생각보다 훨씬 맛이 좋고 재료들의 식감도 살아 있어서 어서 새로운 식품들도 구매해보고 싶다. 어느 정도의 실패를 겪을 줄 알았는데 사는 족족 만족스러워 놀라웠다. 사실 조금만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온라인으로 판매되는 상품들이 사람들을 만족시키지 못했다면 온라인 쇼핑이 일상에 자리잡지는 못했을 테니까.
온라인 서점은 책의 앞부분을 스캔해 ‘미리보기’ 서비스를 제공하고, 책에 관한 상세한 소개글과 저자 인터뷰도 제공한다. 독자들이 구매할 때 머릿속에 그리는 책과 실제로 배송받은 책 사이의 간극을 좁히기 위해서다. 다루는 상품은 다르지만 다른 온라인 쇼핑몰들도 마찬가지였다. 옷의 사이즈를 상세히 기재할 뿐 아니라 간편한 수선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도 있었고, 프린터의 설치법이나 소음의 정도도 영상으로 제공했으며, 식재료의 질과 가장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조리법 역시 영상으로 제공되고 있었다. 고객의 쇼핑이 ‘실패’로 이어지지 않도록 디테일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다.
온라인 쇼핑몰에서는 고객이 직접 상품을 대면하지 않는 대신, 다른 누군가가 상품을 세심하게 확인한다. 온라인 서점에 나와 동료들이 있듯이, 다른 곳에도 노력과 정성을 들이는 이들이 있다는 사실을 새삼 생각했다. 그이들의 존재가 온라인 쇼핑에 관한 내 일말의 불안감을 해소했고, 나는 온라인 세계의 안쪽으로 발을 더 깊숙이 들이게 되었다. 최근엔 신선식품을 매일 클릭하며 유심히 지켜봤다. 부모님께 보내드리면 좋겠단 생각이 들어서다.
부모님과 멀리 떨어져 살다 보니 어버이날에는 보통 용돈을 보내드리는 정도였다. 명절 선물로는 주로 홍삼류를 택했다. 그 역시 좋은 선물이겠지만, 고민할 필요 없이 안전한 선물을 고르려는 내 편의를 위한 것이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정성 들여 고른 선물을 하고픈 마음이 늘 한켠에 있었다. 무엇보다 좋은 먹거리를 보내드리고 싶었다. 맛있는 밥 한 끼 대접할 기회도 드물다 보니.
큼지막한 제주의 은갈치라든가, 살이 통통하게 오른 완도의 전복, 마블링이 기가 막힌 횡성의 한우 같은 것들을 여러 쇼핑몰에서 검색했다. 두툼한 갈치 토막과 전복들을 보니 어머니가 해주시던 푸짐한 갈치조림이 떠오르고 부모님과 가까운 어시장을 둘러보던 기억이 났다. 갓 취업한 뒤 부모님과 고깃집엘 갔다가 아버지가 먼저 계산하시는 바람에 ‘한턱 내기’에 실패했던 기억도 육즙이 잔뜩 흘러나올 것 같은 한우를 보며 되살아났다. 추억에 젖고, 흐뭇해하실 부모님도 떠올리며 이것저것 살펴보다 보니 어느새 동네잔치라도 벌일 만큼 어마어마한 먹거리를 후보로 올려두고 있었다. 나름 고심하고 고심해서 일단 전복을 사보기로 했다.
그래도 선물이니까, 혹시나 해서 부모님께 바로 보내드리지 않고 테스트 삼아 집으로 주문했다. 배송은 순식간이었다. 오전에 주문했더니 그날 바로 발송이 되었고, 다음날 도착했다. 아이스팩의 가호를 받고 해수와 산소를 함께 채워 포장된 전복이 모습을 드러냈다. 싱싱한 윤기와 탄력이 부모님께 드리기에 손색없어 보였다. 온라인 쇼핑에 대한 내 마지막 의구심이 벗겨진 순간이다.
그렇다고 내 소비가 온라인 구매로 급격히 기울지는 않을 것이다. 세상의 경제는 온라인만으로 구성되지 않아서, 오프라인 쇼핑에 종사하는 분들도 여전히 많다. 동네에서 직접 구매할 수 있는 것은 동네에서 구매하면 좋을 것이다. 하지만 동네에서 쉽게 구할 수 없는 먹거리들, 지역 산지에서 나는 특산물을 구매하는 일이라면 온라인 쇼핑의 도움을 마음껏 받아도 좋지 않을까. 온라인이 아니었다면 내가 살 기회도 없었을 테니까.
테스트를 성공적으로 마친 나는 드디어 부모님께 보내 드린다는 생각에 들떠있다. 선물이라면 직접 사 들고 가서 손으로 건네 드리는 것이란 유구한 생각도 잠시 스쳐 지나가지만, 온라인 쇼핑몰 뒤에 있는 보이지 않는 정성과 나의 마음이 더해지면 충분히 흡족하실 선물이 되지 않을까. 조심스레 마우스 커서를 ‘결제’ 버튼으로 옮긴다. 치켜든 오른손 검지가 거침없이 아래로 내려온다.
김성광 작가
온라인 서점에서 일한다. 보석 같은 책을 발견해서 공들여 소개하려 애쓴다. 가장 보석 같은 책은 저마다의 일상이라고 생각해서, 내가 보내는 일상을 곰곰이 되짚어 보는 시간을 가진다. 그런 시간이 쌓이면 내 일에 대한 고민과 가족을 향한 마음과 세상의 풍경에 대한 글이 한 편씩 나왔다.『시간은 없고 잘하고는 싶고』라는 책을 썼고, 또 무언가를 계속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