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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체국과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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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테마 ‘우체국 언저리에서’
‘언저리’는 어떤 공간 혹은 시간에 완벽히 들어가지 않아도 되는 상태나 지점을 말합니다. 편안하게 읽을 수 있는 우정문화 교양지 <우체국과 사람들>은 올 한 해 우체국 안팎에서 할 수 있는 모든 생각과 이야기를 담겠습니다.

어느시인의 일기배달이야기
20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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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보영



가끔 나는 나 자신을 ‘우체국 상주 작가’라고 소개한다.

2018년 12월부터 시작한 일기 우편 딜리버리는 독자들에게 우편으로 편지를 보내는 구독 서비스이다. 오래전부터 손 편지에 대한 로망이 있었다. 작가가 된 이후, ‘독자들에게 나의 글을 우편으로 보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직접 쓰고, 직접 포장한 글. 이렇게 시작한 우편 딜리버리는 나의 생계가 되었다. 나의 한 달은 손글씨로 쓴 일기를 네 번 접어 우편 봉투에 담아 우체국에 가는 것으로 시작한다.

집 근처에는 큰 우체국 하나와 작은 우체국이 있다.

큰 우체국은 걸어서 10분, 작은 우체국은 걸어서 3분 걸린다.

큰 우체국에는 한꺼번에 편지를 보낼 때 방문하고, 작은 우체국은 반송된 우편을 재발송할 때 간다.

도서관 가는 길에 우체국에 들르는 일은 나의 일과가 되었다. 우체국에 가는 길에는 담쟁이덩굴을 만날 수 있다. 쭉 이어진 벽이 싱그러운 초록색 담쟁이로 덮여 있는데 마치 동화 속 한 장면과 같다. 편지와 함께 걷는 순간은 한 조각의 휴식과 같다.

쭉 걷다가 신호등 하나만 건너면 커다란 우체국이 서 있다.

그렇게 우체국에 매일같이 들락거리게 되어서 나에게 우체국 상주 작가라는 별명을 붙여보았다.


그런데 하루는 카트에 우편물을 싣고 우체국으로 향하던 중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발걸음을 재촉하며 카트를 끌었다.

신호등만 건너면 되는데 빗발이 세졌고, 그래서 입고 있던 외투를 벗어 카트에 덮었다. 예전에 봤던 어떤 그림이 생각났다. 비가 많이 내리는 풍경이었다. 차가운 밤, 첼리스트가 비 오는 거리에 서 있다.

그는 우산을 자기 대신 첼로에게 씌워준다. 그런 기분이었다.

신호등이 바뀌자 나는 카트를 끌며 달렸고, 무리하게 달린 탓에 도로 한복판에서 삐끗해 편지를 모두 쏟을 뻔했다. 다시 생각해도 아찔하다. 하지만 독자들에게 보낼 편지가 젖지 않을 수 있다면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았고, 나에게 그런 힘이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우체국에 발을 들이면 한시름 놓인다. 우체국 직원분들은 이제 내 얼굴이 익은 것 같다.

늘 따뜻하고 친절한 미소로 나를 맞이해주신다. 이사를 가면 우체국을 떠나는 게 가장 슬플 것이다. 그리고 근처에 역이 있는 것(역세권)보다 우체국이 있는지(우세권)가 더 중요하게 되었다.

이제는 일기 딜리버리의 규모가 조금 커져 미용실, 고시원, 목욕탕, 전국 각지로 편지를 보낸다.

언제부터인가 군인들과 해외 구독자가 유입되어 군부대와 해외로도 편지를 보낸다. 미국, 영국, 뉴질랜드, 중국, 일본 등으로.

이따금 독자분들이 편지 인증을 해주는 경우가 있다. 사진 속 우편 봉투에서 고된 여행자의 분위기가 느껴진다. 한국에서 쏜, 찢어지기 쉬운 몇 장의 종이가 편지 봉투의 보호를 받아 낯선 이국의 땅에 도착한다. 편지 봉투에는 온갖 스티커와 도장이 찍혀 있고 겉은 너덜너덜하지만 내용물은 온전하다. 종이는 강하다. 편지가 먼 거리를 여행해 도착하면 매번 신기하고 기쁘다. 어떤 독자는 해외 풍경과 함께 편지를 찍어 보내준다. 내가 가보지 못한 곳의 풍경과 함께. 그럴 땐, 나의 글이 나 대신 해외여행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하루는 우편을 보내러 우체국에 갔는데, 평소보다 사람이 많았다.

사람들이 해외로 소포를 부치고 있었다. 코로나가 터지자 해외에 있는 가족에게, 친구에게, 지인에게 마스크와 같은 물품을 잔뜩 담아 보내고 있었던 것이다. 복잡스러운 우체국 풍경에 그만 마음이 찡했다. 

평소라면 제각각의 목적과 다양한 용무로 우체국에 오지만, 그날은 모두 한마음 한뜻이었다.

그 절박한 마음과 발걸음에 동해서 우체국이 한산해졌을 때 다시 방문해 우편을 부쳤다.

며칠 전엔 친구가 미국에 있는 형제에게 필요한 물품을 보낸다기에 몇 가지 물품과 책을 함께 보냈다.

우체국은 작은 로켓 발사대와 같다.

나를 대신해 나의 마음을 쏘아준다.


독자들에게 가장 많이 받는 답장은 21세기에 스티커가 덕지덕지 붙은 편지가 날아와서 기쁘다는 내용이다. 코로나 유행 이후 독서가 집에서 시간을 보내는 한 방법이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나의 일기

우편이 힘든 시기에 작은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다.



문보영 작가 

시인. 독자들에게 편지를 우편 봉투에 넣어 배송하는 일을 한다. 산문집으로 <사람을 미워하는 가장 다정한 방식>, <준최선의 롱런>, <불안해서 오늘도 버렸습니다>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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