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저한 자기 관리는 직장생활의 밑거름이죠
이제 우리나라에서도 여성들의 사회 진출이 늘어나면서 여러 분야에서 여성들이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태반의 여성들은 자신들의 자리를 굳히기 위해 남성들보다 몇 배의 노력을 기울인다. 물론 그렇지 못한 여성들도 있지만 소위 자신의 분야에서 능력을 인정받은 사람들은 철저한 자기 관리로 직장생활을 해나가고 있는데, 철저한 자기 관리야말로 그녀들에게 있어서는 다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밑천이다.
서울종암동우체국 박계화 국장(43세)도 그런 사람들 중의 한사람이다.
충청청 제1호 여성 국장
“꿈이 많았던 소녀 시절에는 완벽한 인생을 꿈꾸었죠.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모든 삶에는 그 나름의 가치와 사랑이 숨겨져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대전여고를 졸업한 박계화 국장은 대학입시에서 쓰디쓴 아픔을 경험했다. 그 당시 대학입시의 실패는 그녀의 삶 전체를 뒤흔들 만큼 큰 충격 이었다. 그러다 재수 시절 친구를 따라 우연찮게 치르게 된 9급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면서 그녀가 꿈꾸었던 삶과는 다른 길을 가게 되었다.
“제 성격이 사람들과 잘 어울리는 적극적인 성격은 아니예요. 처음 우체국에 근무할 때는 남들 하고도 잘 어울리지 못하고 집하고 회사밖에 모르는 새침데기였죠. 주어진 일만 묵묵히 처리하면서 자신의 현 상황을 그리 만족하면서 살지는 못했던 것 같아요.”
그런 그녀에게 새로운 도전의 기회가 찾아왔다. 다름 아닌 충청청 관내에서 처음으로 여성 우체국장으로 발령을 받게 되었다. 그때가 1986년으로 그녀의 나이 30대 초반이었다.
“주위에서는 걱정들을 많이 했습니다. 과연 잘해 낼 수 있을까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컸죠.'
그녀는 주위의 이목을 한 몸에 받았다. 항상 운동화에 바지 차림이었던 그녀의 복장에도 변화가 왔다. 스커트를 입기 시작했고 공들여 화장도 하고 머리 스타일도 변화를 시켰다. 그때부터 그녀는 검은 투피스 정장을 즐겨 입었는데, 그것은 국장 혹은 관리자로서의 위엄을 나타내려 함이 아니라 보는 이에게 단정한 인상을 주기 위함에서였다.
'어깨가 무거웠어요. 제가 못하면 앞으로 여성 관리자가 나올 수 없게 되지 않을까라는 걱정이 앞섰죠. 물론 저도 나름대로 노력은 했지만 오히려 여성 우체국장이라는 특성 때문에 주위의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충남대우체국으로 발령을 받았는데 여성 우체국장이라는 것이 학생들에게 참 신선했는가봐요. 학교 교내신문에서도 저의 인터뷰 기사가 게재되었고, 각종 취업 강연회에 초청 강사로 불려 다니기도 했죠. 그러다보니 학교 내에서는 유명인이 되었고 자연히 제가 걸어 다니는 것만으로도 우체국 홍보가 되니까 사업 실적이 좋을 수밖에 없더라고요.'
주변의 염려와는 달리 박계화 국장은 잘해냈다. 그 뒤 충청청에서도 제2, 제3의 여성 우체국장이 나오게 되었다.
새로운 곳에서의 도전
박계화 국장은 대전 토박이이다. 그런 그녀가 남편의 직장을 따라 서울로 올라온 지 6개월만인 1999년 1월, 서울청 산하 166개 관서를 제치고 그녀의 발령지인 서울종암동우체국을 고객만족 1위국으로 만들어 놓았다. 아직 서울 생활에 익숙하지도 않을 그런 기간이지만 그녀는 다년간 여성 우체국장으로의 경험을 살려 서울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지금도 첫 출근 때의 일이 잊히지가 않아요. 당시 제가 플레어스커트를 입고 갔었는데 창구 환경이 얼마나 눈에 거슬리는지 제 스커트 속으로 모든 것을 감추고 싶더라고요. 그때부터 청사 환경 개선에 주안점을 두었어요.”
대전에서 아파트 생활을 했던 박계화 국장은 우체 국 관사로 이사를 하다 보니 짐들이 문제였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공중실 한 귀퉁이에 책꽂이를 만들어 자신이 소장하고 있던 책들을 진열했고, 난·분재·그림들도 창구를 꾸미는데 활용했다. 예산을 별로 들이지 않고 창구 환경이 새롭게 변신되었다. 그러자 여성 우체국장이 부임하고부터는 우체국이 확 달라졌다며, 우체국을 찾는 손님들이 차츰 늘어만 갔고 그것이 각종 사업 실적과도 연계가 되어 우체국 예금고가 26억이었던 것이 이제는 102억이라는 높은 실적을 거두고 있다.
'...재작년 어느 날인가 여자 우체국장이 오신 후로는 꼭 내 집 안방같이 우체국에 들러 책도 보고 음악도 듣고, 무엇보다 장애인들이 휠체어를 타고 드나들 수 있도록 길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여국장님 이 꼭 동네 아줌마와 같은 분위기여서 상담하기도 좋고 여직원들이 그렇게 친절할 수가 없습니다. 저 혼자 보기에는 너무 아까 우니 체신 청장님도 한 번 구경 오십시오...”
지난 달 서울체신청장 앞으로 날아온 한 통의 편지 이다. 쉰세 살의 가정주부가 서울종암동우체국을 이용하면서 느낀 점을 쓴 것인데, 우체국이 어떻게 변화되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저는 운이 참 좋았어요.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얘기가 있죠. 여성이라서 못할 일은 없는 것 같아요. 제가 우체국을 변화시킨 것이 아니라 우체국이 저를 변화시켰어요. 소극적인 성격에서 적극적인 성격으로 바꾸어 주었고, 주변의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 있게 해주었죠.'
박계화 국장은 자신감에 차있다. 평소 즐겨 입는다는 까만 투피스 정장에서 풍기는 단정한 분위기와 확신에 찬 목소리로 우체국에 오는 손님들을 누구보다 먼저 반기고 따뜻한 차를 대접하는 그녀의 모습에 서는 차가움보다는 오히려 이웃 아줌마 같은 소박한 정이 느껴진다. 이런 그녀의 모습은 23년 정보통신인 생활 중 절반 이상을 여성 우체국장으로 지내오면서 터득한 그녀만의 자기 관리인 셈이다. 그래서인지 그녀가 머무는 우체국은 항상 사람들에게 환영을 받았다.
이제 박계화 국장에게는 아무나 흉내 낼 수 없는 격조와 품위, 살아갈수록 늘어나는 연륜에 비례하여 매사에 침착할 수 있는 여유가 있다. 그리고 모든 여성들의 소원인 40대 이후 보기 좋게 늙고 싶다'는 아름다움이 있다. 그렇게 되기까지에는 혼자만이 아는 자기 도야의 시간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