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는 설날이 오기를 학수고대했었다. 모처럼 오랜만에 부모님이 장만해 주신 색동옷을 입고 새 고무신, 새 양말로 갈아 신고 부모님께 세배 드리며 덕담을 들은 기억이 새롭다. 벌써 60여 년 전의 일이다.
어렸을 적 나는 설이 되면 일찍 일어나 세수하고 단정하게 차려입었다. 큰방에 계신 조부모님과 부모님께 6남매가 모여 세배 드렸다. 할아버지께서는 “귀여운 손주들이 다 모였구나. 다들 건강하고 어른들 말씀 잘 듣고 심부름도 잘해야 하느니라.”라고 하셨고 아버지는 “형제끼리 사이좋게 지내고 늘 정직하고 올곧게 살아야 한다.”라고 하신 덕담이 아직도 기억난다. 이제는 어르신들 모두 돌아가시고 어느새 내가 70대에 접어들어 자식들과 손주들에게 세배 받고 덕담하는 나이가 되어 격세지감을 느낀다.
차례를 지내기 위해 조상님께 바칠 제물을 정성껏 준비해 제사상에 올렸다.
차례를 마치면 온 식구가 모여 각종 나물과 생선, 육고기, 부침개 등을 맛보곤 했다.
먹는 것조차 넉넉하지 못했던 시절이니 그나마 설이나 추석이 모처럼 포식하는 날이었다.
어른도 고대하던 시간이었는데, 아이들은 오죽했을까.
큰집에 가서 어른들께 세배 드리는데 유일하게 고향을 떠나 진해에 사셨던 숙모가 몹시 기다려졌다.
다른 어른들은 덕담만 하는데 숙모는 세배를 받고 모든 조카에게 깔깔이 지폐 1천 원(요즘 1만 원 상당)을 주셨다. 얼마나 고마웠던지 지금도 세뱃돈을 받았던 기억이 눈에 선하다. 나뿐 아니라 다른 사촌 형제들도 모두 숙모님이 지갑에서 꺼내는 빳빳한 새 돈을 받는 것이 명절의 큰 즐거움 중의 하나였다.
숙모님에게 받은 세뱃돈으로 학용품을 사거나 보고 싶었던 책들을 샀다.
이제 그 숙모님은 돌아가시고 없다.
살아계셨더라면 가끔 찾아뵙고 선물도 사 드리고 용돈도 드릴 텐데 말이다.
세뱃돈을 받았던 그 시절이 너무 그립고 다시 왔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