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정동 우체국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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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진역에서 5분 거리에 위치한 정동우체국. 강릉의 21개 관할우체국 중 한 곳인 이곳에 근무하는 이들은 여기에서 일한 지 평균 20여 년이라고 임서정 주무관이 귀띔했다. 이 우체국을 찾는 이들은 직접 기른 농작물을 서울이나 타지에 있는 자식들에게 보내려는 동네 어르신, 정동진 여행을 왔다가 두고 간 물건을 보내주려는 숙소 주인들, 그리고 관광객의 순이라고 한다. 가끔은 우체국과 금융 업무뿐만 아니라, 고구마나 제철 채소 등을 가져와 상자를 포장하는 일도 도맡아 하게 된단다. 정동우체국을 찾은 날은 유독 매서운 추위로 전국이 꽁꽁 얼었던 날이었는데, 한 어르신은 “직접 짠 참기름인데 유리병이 아니라 플라스틱병에 넣었으니 괜찮겠죠.”라며 소포 상자를 닫고 있었다.
이원규 국장을 비롯해 임서정 주무관과 심정섭 주무관, 세 사람이함께하는 이곳 직원에게 정동진의 숨은 맛집과 평소에도 자주 찾는 곳을 물으니, “별거 없는데요~” 하면서 심정섭 주무관이 멋쩍은 웃음과 함께 말을 잇는다. 숨은 맛집보단 그냥 평소에 손님이 오면 같이 가는 가게라며 등명 해변의 바다마을 횟집 섭 칼국수를 말했다. “섭이요?”라는 나의 대답에 “홍합 칼국수”라며 이곳 특유의 장을 풀어 뜨끈하고 매콤한 맛이 일품이란다. 우체국 앞산인 고성산도 좋다며, 이 동네의 옛 이름은 그 산에서 따와 고성동이었다는 말도 전해줬다. 가파른 경사가 조금은 힘들 지만, 등산로는 물론 계단이 잘 되어 있어 처음 찾아가는 이도 쉬엄쉬엄 걸으면 20분 정도 걸린다며, 세 사람이 하나둘씩 동네의 가게와 이곳이 가진 풍경에 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이야기를 듣고 찾아간 고성산은, 정상의 영인정이란 정자에서 내려다보는 정동진 바다의 모습이 장관이었다. 동네 사람들에게 답답한 일이있을 때 가슴이 뻥 뚫리는 곳, 왠지 고민이 있을 때 한번 올라갔다 오면 그 고민이 해결될 것 같은 곳, 동네에선 해돋이를 보러 가는 곳 같았다.
정동우체국의 관광인은 정동진 해변에 놓인 ‘모래시계’ 그림이 찍힌다. 실제로 해변 옆에 놓인 이 모래시계는 1년을 주기로 모래가 다 떨어지고, 새로운 해를 맞으며 카운트다운을 할 때, 시계를 돌리는 행사가 있다고 한다. 모래시계의 앞에는 정동진 시간박물관이 있는데, 그 앞엔 ‘느린 우체통’ 이란 이름으로 총 3개의 우체통이 있다. 말 그대로 느리게 - 1년, 2년 또는 3년 후에- 엽서에 적힌 주소로 발송된다. 시간박물관에서는 이렇게 시간을 다르게 써 본다. 일상에서 느끼는 시간의 속도를, 우체통이 조금 느리게 가게 도와준다고 할까. 편지를 적고 이 우체통에 넣은 이들은 각자가 정동진을 찾고, 엽서를 보냈다는 것을 잊을 때쯤에 그것이 도착해 이 여행을 기억하게 될 거다. 이곳에서는 정동진 해돋이를 형상화했다는 일출빵, 포춘쿠키(쿠키를 열면 메시지가 적힌 종이 한 장이 나온다) 등을 판매하는데 재미로 한번 사본 포춘쿠키 안에는 이런 글이 적혀있었다. ‘삶이라는 길을 가는 데에 있어 불필요하고 방해가 되는 것들은 과감히 떨쳐내십시오. 잠시 아까워 보이지만 모두 가지면 몸이 무거워서 쉽게 피곤해지게 됩니다.’ 한해의 묵은 때를 벗고, 새로이 시작하고 싶은 이에게 어쩜 이렇게 딱 맞는 문구가 보이는지!
ⓒ강릉관광개발공사
정동진의 해는 다르게 뜬다
전국 어디에서나 해가 뜨고, 새날이 시작되지만 유독 연말연시에 일부러 그 해를 직접 보고 싶어 한다. 새로이 뜨는 해를 바라보고 새로운 계획을, 소망을 말한다. 정동진에서 뜨는 해는 왜 그렇게 다르게 느껴지는 것일까? 탁 트인 동해바다 위로 둥근 해가떠오를 때, 어쩌면 일상을 벗어나 일부러, 그 귀한 시간을 만들어 찾아왔기 때문에, 그 해돋이가 의미 있고, 매일 뜨고 지는 해지만 더 특별하게 느껴질 것이다. 서울에서든, 이곳에서든, 뜨는 해를 바라볼 때 나는 종종 폴란드의 시인 비스와바 쉼보르스카의 <두 번은 없다>의 이 부분을 생각한다.
‘반복되는 하루는 단 한 번도 없다. 두 번의 똑같은 밤도 없고, 두 번의 한결같은 입맞춤도 없고, 두 번의 동일한 눈빛도 없다.’ 매일 해가 뜨는 시간도 다르고, 어제의 해와 오늘의 해는 다르다. 두 번 다시 없는, 흘러가는 시간임을 해돋이를 통해 다시 느끼고 깨닫고 다짐하며 무언가를 계획한다. 정동진 해변에서, 고성산의 영인정 정자에서 또는 썬 크루즈리조트의 방 창 너머로 보이는 일출은 모두 같지만, 우리에게 각자 다르게 다가온다.
정동 심곡 바다 부채길 과 하 슬 라 아트월드 정동진을 길게 두고 봤을 때 그 시작점의 끝에는 하슬라아트월드가, 그리고 그 끝에는 정동심곡 바다부채길이 있다. 하슬라아트월드를 처음 찾았던 때도 겨울이었는데, 눈 쌓인 틈 사이사이 다양한 조각품이 넓은 조각공원에 펼쳐져 있어 걸으며 발견하고 찾는 재미가 있었다. 정동진역에서 택시를 타고 15분 정도. 하슬라아트월드의 주인장은 조각가 최옥영·박신정 부부. 이 부부는 정동진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정동진을 사랑해 자연과 예술의 조화를 위해 애쓰고 있는 이들이다. 조각공원과 뮤지엄 호텔은 물론, 정동진역의 옛 열차표 판매소를 설치조각 갤러리로 변경해 ‘정동진역 미술관’이란 이름으로 불리는데, 이 역시 하슬라아트월드에서 도움을 주고 있다.
자연과 예술이 어우러진 곳이 하슬라아트월드였다면, 정동심곡 바다부채길은 자연 그 자체가 가장 멋진 예술임을 드러낸다. ‘바다부채길’이라는 이름은 심곡과 정동을 잇는 탐방로 지형이 펼쳐진 부채와 모습이 비슷하다고 하여 강릉 출신 소설가인 이순원에 의해 지어졌다고 한다.정동진(썬크루즈 리조트 주차장)에서 시작해 심곡항까지 닿는 강릉의 이 해안단구는 국내 최장 길이 2.86km로 보존이 잘 되어 있어 그 가치를 인정받아 천연기념물 제437호로 지정되었다. 원래는 해안경비를 위해 민간인 통제 구역으로 운영됐지만 강릉시와 국방부, 문화재청 등이 협의하여 지금의 모습으로 공개된 것. 강릉의 기암절벽 사이에 목재와 철재 데크를 설치하여 2016년 가을, 민간에 개방된 이곳은 주말이면 전국 곳곳에서 모인 사람들로 가득하다.솔직히 바다부채길은 혼자 걷기엔 좀 무서운 길이다. 주말엔 사람들이 많지만, 평일에 사람의 수가 적고 바다가 가깝고, 기암괴석의 기운이 남다르기 때문. 게다가 파도가 세게 치는 날은 그 소리도, 사람들이 걷는 길에도 물이 튀기에 조금은 위험할 수 있다. 나는 평일 아침 9시, 정동에서 시작했는데, 길이 개장하고 걷기 시작했기에 사람들이 거의 없었다.
주위를 둘러봐도 혼자여서 잔뜩 겁이 난 순간, 용기를 내어 보다 앞에 걸어가는 중년의 부부에게 “혹시 같이 가도 될까요?” 라고 물었다. 그들과 흔쾌히 동행자가 되어 바다부채길의 아름다움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며 걸었다. 마음을 놓으니 풍경이 더욱 눈에 들어왔다. 기암절벽과 소나무, 여러 가지 색을 담고 있는 기암괴석이 우리나라 그 어떤 길에서도 볼 수 없는 풍광이었다. 빛에 따라 같은 바다가 가진 여러 가지 색의 변화와 바다가 가진 푸른색의 다양함 또한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울산에서 기차타고 정동진까지 왔다는 이순남 씨는 “역시 동해바다는 달라요, 울산보다 파도치는 게 이만큼 높지 않았는데 이 길에서 그렇게 가깝게 파도치는 것도 보고, 겨울이라 추워도 걷다보니 몸이 더워져서 딱 걷고 바라보기가 좋아요. 7시간 기차를 타고 온 보람이 있네요.”라며 활짝 웃었다. 이 길은 성인의 걸음걸이로 약 70분 정도 걸리고, 중간중간 특히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는 바위가 있다. 장군의 투구를 떠올리는 ‘투구바위’. 투구바위엔 고려 시대 강감찬 장군이 발가락이 여섯 개인 호랑이를 백두산으로 쫓아냈다는 전설도 깃들어 있다. 이어서 전망대가 설치된 부채바위도 만난다. 그곳에선 정동심곡 바다부채길의 좌우를 모두 볼 수 있고, 바다 한가운데에 서 있는 것 같은 기분이 짜릿하다. 그날의 수호천사였던 부부 덕분에 나 또한 끝까지 그 길을 걸으며 탁 트인 동해바다에 지난 한 해의 힘듦과 괴로움을 모두 날려버리고 돌아왔다.
지역을 여행하며 만나는 우체국
생각해보면 우리가 여행하는 모든 지역에는 그곳을 관할하는 우체국이 있다. 우리가 평소에는 잘 잊고 지나쳐도 여행지에서는 왠지 여유로운 시간에, 일상의 속도가 아닌 여행의 속도에 맞춰 한 박자 느리게 걷고, 생각하며 나에게 그리고 누군가에게 편지도 한 통 보내고 싶어진다. 여행에서 우리는 일상과 시간을 다르게 쓰기 마련이니까.
정동우체국은 부모의 사랑을 전달해주는 곳이자 관광객들이 각자 즐거웠던 시간을 기록해 미래의 누군가에게 보내주는 일을 하는 것 같다. 정동진으로 떠나는 이유는 단순히 한 번의 해가뜨고 지는 것을 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시간에 대해 생각하고 싶은 이들이 모이는 곳 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시간의 귀중함, 두 번은 없는 날을 느끼러 오늘도 누군가는 정동진을 향해 간다.
여행 Note
자연과 하나 되어 걷다가도 눈과 입이 즐거운 맛집 탐방을 하거나
문화적 감성을 채우기에 더없이 좋은 정동진 여행의 알짜배기 정보를 모아봤다.
1. 하슬라아트월드
고구려 시대 강릉의 옛 이름인 ‘하슬라’를 담은 아트월드. 현대미술관과 하슬라 뮤지엄호텔 로 구성되어 있다. 탁 트인 동해바다를 정면에 둔 조각공원은 3만 3천 평! 다양한 야외 조각 품은 물론 호텔의 외/내부에도 조각가 최옥영 의 작품이다. 자연과 예술에 기대어 완벽한 쉼 이 가능한 곳. 피노키오&마리오네트 박물관 이 있다.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카페에서 마시 는 커피 한잔도 꿀맛이다.
강원도 강릉시 강동면 율곡로 1441
033-644-9411
2. 고성산 영인정
정동우체국에서 5분 거리인 이곳은 우체국 직 원들이 점심 먹고 산책하듯 잠시 다녀오는 52.7 m 높이의 산이다. 계단이 가팔라 조금은 숨이 차지만, 정상에서 내려다보는 정동진 바다 풍 경에 속이 뻥 뚫리고 고민이 날아가는 듯하다.
마을 사람들이 해돋이를 볼 때 찾아가는 곳.
강원도 강릉시 강동면 정동진리 고성산
3. 등명해변의 바다마을횟집
‘섭’이란 강원도 지역 토속어로, 토종 홍합을 뜻한다. 특히 이곳은 섭(홉합)장칼국수가 유 명한데 집에서 담근 막장(된장)을 흥건하게 풀 어 장물을 끓이고, 섭을 가득, 대파와 고추를 넣어 만든 얼큰한 한 그릇을 만든다. 이외에도 섭해장국, 섭파전 등의 메뉴가 있다. 등명해변 과 소나무가 창가에 보인다. 정동진역에서 차 로 5분 거리에 있다.
강원도 강릉시 강동면 정동등명길 23
033-644-5747
4. 바다열차
정동진, 동해, 삼척을 잇는 56km의 동해안 해 안선을 달리는 바다열차. 바다의 풍경을 한눈 에 감상할 수 있도록 넓은 유리창과 바다를 향 해있는 자리가 매력적이다. 일반 열차의 3배 정도 되는 가격이지만 꼭 한번 타볼 만하다.
정동진역에서 삼척역까지 1시간 20여 분 정도 걸린다.
www.seatrain.co.kr
5. 정동진 독립영화제
2017년에 19회를 맞은 정동진 독립영화제는 매년 8월, 정동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열린다.
텐트나 돗자리를 펴고 자유롭게 볼 수 있어서 여름에 정동진을 찾는 이들에게 인기가 높다.
한여름에 즐기는 영화와 축제 분위기가 궁금 하다면 영화제 일정에 맞춰 꼭 들러보자
www.jiff.kr
6. 강릉 관광 홈페이지
강릉시의 관광 홈페이지는 그 어떤 지역보다 정리가 잘 되어있다. 때론 여행도 한 장의 사진 이 주는 감동 때문에 떠나게 될 때가 있는데, 이 홈페이지의 내용이 강릉에 충실해 도움이 된다. 특히 ‘감성여행기’ 부분을 추천한다. 관 광지, 문화유산, 테마 여행, 축제행사, 여행 정 보 등을 제공하고 있다.
www.gn.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