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시기 머시기’가 속 터진다
사투리를 다른 언어로 번역하는 것은 영화 자막 번역가들에겐 가장 큰 난제일 것이다. 그 가운데서도 2003년에 제작된 영화 <황산벌>은 번역하기 어려운 한국영화 중 단연 으뜸일 것이다. ‘거시기’란 단어가 처음 등장하는 대목에서부터 번역가는 머리를 쥐어뜯었을지도 모른다. 계백은 풍전등화인 백제의 운명 앞에서 군사를 모아놓고 죽을 때까지 싸울 수 있도록 갑옷을 벗지 못하게 꿰맬 것을 요구한다. “황산벌에서 머시기하기까지 갑옷을 거시기해라!” 하지만 신라인들은 백제인들의 ‘거시기’를 알 수 없었고 해독하느라 소동을 벌인다. 때로 상사와 부하의 커뮤니케이션이 이렇게 불통인 경우가 있다. 부하가 업무 지시를 잘못 이해하는 건 부하의 잘못이기 전에 상사의 업무 지시가 백제군의 ‘거시기’처럼 명확하지 않아서일 수도 있다. 논리적이고 명확한 업무 지시가 있어야 시행착오나 실수를 줄이고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다. 먼저 업무 지시를 해야 하는 타이밍을 생각하고 되도록 맞추자. 너무 빨리해서도 안 되지만, 임박해서 지시할 경우 심리적으로 저항하기 쉽다. 업무를 지시할 때는 명령하지 말고 의견을 물으며 하되, 결론부터 이야기하고 부가적인 부분은 뒤쪽에서 이야기해야 지시받는 사람이 중요한 부분에 집중할 수 있고 뭘 해야 할지 빨리 판단하게 된다. 책임의 한계와 업무의 한계 범위를 명확하게 이야기하고, 지시한 사항을 나중에 잊지 않도록 정확히 메모하고 상대에게도 메모를 권한다. 보고받는 사람은 처음 업무 지시를 할 때 자신이 원하는 방향을 가능한 많이 이야기해주고, 중간에 한 번 더 확인하여 대폭 수정을 지시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다음 세 가지 정도를 요구하면 명확해질 것이다. “여기서 보고자가 말하려고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래서 보고자가 선정한 최선의 방법은 무엇입니까?”, “내가 도와주어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SOS라야 살아 남는다
무인도에 두 남자가 표류했다. 두 사람은 번갈아가며 바닷가 넓은 모래 위에다 구조를 요청하는 글을 쓰기로 했다. 먼저 한 남자가 썼다. “안녕하세요. 저는 엊그제 폭풍우를 만나 배를 잃고 이 섬에 표류한 사람입니다. 제발 이 글을 읽으신 분은 저를 구해주십시오.” 하루, 이틀, 사흘이 지나도 누구 하나 반응을 보이는 사람이 없었다. 다른 한 남자가 이 글을 모두 지우고 이렇게 썼더니 바로 그날 구조 헬기가 왔다. “SOS”
직장에서의 보고도 이와 같다. 무엇보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는 습관이 가장 우선이다. 요즘은 보고서 분량도 점점 짧아지는 추세로, A4지 한 장에 정리한 보고서를 요구하는 회사들도 많은데, 구구절절한 과정을 나열하는 보고는 어떤 상사도 원하지 않는다. 굳이 보고가 아니라도 직장생활의 화술은 두괄식 이야기가 선호되며 그게 바람직하다. “그래서 결론이 뭔데?” 이 말이 바로 안 튀어나오면 그래도 인내심이 있는 사람이다. 일반적으로 업무 보고는 업무가 끝난 후 바로 하는 것이 좋다.하지만 준비가 제대로 되지 않은 보고서는 보고받는 사람을 화나게 한다. 글자가 틀리고 숫자가 틀리고 그 합이 안 맞고 링크가 엉뚱한 곳으로 날아가고, 거기다 보고자의 의견조차 들어있지 않다면 가장 심각하다. 여러 가지 자료를 그냥 나열하거나 조사한 내용을 그냥 적어서 의미 도출을 하지 못한 보고서는 보고서의 의미를 상실한 종이에 불과하다.
호랑이 굴에 자주 드나들자
호랑이를 잡으려면 결국 호랑이굴에 들어가야 하는 논리와 비슷하게, 역설적이지만 보고가 편해지려면 보고를 자주 해야 한다. 어떤 일이든 경험이 많아지면 여유가 생기기 마련이다. 불필요한 보고로 상사를 피곤하게 해서는 안 되지만, 대부분 상사는 부하가 자주 대화를 요청하고 보고하는 것을 기꺼이 반기고 그것이 쌓이면 그 부하에 대한 신뢰로 이어진다. 꼭 필요한 보고는 도움을 청하는 보고, 새로운 문제에 대한 신속한 보고, 업무 방향이 맞는지 확인하는 보고, 일이 진행되는 상황을 상사가 궁금해하지 않게 알맞은 텀으로 하는 보고 등이다.하지만 그런데도 회사에서 윗사람이나 책임자에게 하는 공식적인 보고는 주로 잘한 일보다는 잘하지 못한 일에 대한 보고가 더 많다. 좋은 결과를 냈더라도 혹시 ‘잘난 척한다’는 오해를 받을까 봐 길게 보고하지 못하고 짧게 언급하고 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잘한 것에 대한 칭찬이 인색한 우리의 보고 문화를 탈피하기 위해 부하가 보고하는 일에 보람을 느끼도록, 보고서 내용 중 잘못된 것의 지적뿐만 아니라 잘한 것, 기존과는 차별화한 것을 찾아서 칭찬해 주려고 노력해야 한다. 보고는 아무리 치밀하게 준비해도 상사로선 늘 부족한 것이 보이기 마련이다. 상사보다 보고의 경험이 많은 부하는 없기 때문이다. “음~ 알았네” 라고 무덤덤하게 보고받거나 보고가 끝날 때 미완료된 내용을 보완하라고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간혹 보고 후 더 큰 숙제를 받아오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이러한 보고 문화 속에서 한줄기 단비처럼 “수고했네”, “고생 많았겠네” 하고 돌아오는 한 마디는 보고자들이 앞으로 좀 더 가뿐한 마음으로 상사를 대하는 힘이 될 것이다.
회사사용 설명서
사회인들이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직장에서 좀 더 활기차고 즐겁게 일하는 분위기를 만들고자 함께 고민해보는 2016년 연중 캠페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