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용 전기차보다 물류 전기차
세계적으로 2만 대 이상 판매된 르노 초소형 전기차 ‘트위지’
현재 배송체계는 대부분 트럭을 출하구에 정차시키고 지게차나 운반기구 등을 이용해 화물을 상하차하는 형태다. 차량이 실내로 들어올 경우 매연과 소음이 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배출가스가 없고 소음이 적은 전기트럭을 이용하면 차량이 실내로 들어와 화물을 하역하는 ‘드라이브스루(Drive Through)’ 형태의 배송 시스템을 실현할 수 있다. 트럭의 구조 역시 화물을 운반하는 컨베이어 벨트와 연결할 수 있도록 제작돼 업무효율을 높일 수 있다. 이 모든 것이 전기차이기 때문에 가능한 물류혁신인 것이다.
유럽에서는 덴마크가 전기차를 이용한 물류·유통 분야에 적극적이다. 청정지역 국가 이미지를 높여가기 위한 전략적인 접근이다. 덴마크는 지난 2016년부터 민간기업 주도로 전기차 기반의 ‘시티 로지스틱스(City Logistics)’ 물류 사업을 추진 중이다. 코펜하겐 등 주요 도시별로 물류교통 체계를 전기차(전기트럭 등)로 교체하는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다. 도시 물류를 위해 지방과 외곽에서 진입하는 차량에 대해 도시 진입 직전에 전기트럭으로 교체하는 물류 형태인데, 도시 인근 집합시설 거점을 활용해 도시 구역별로 물류를 분류한 후 전기차 한 대로 다수의 거래처로 옮기거나 배송하는 방식이다. 다수의 차량이 도시로 유입되는 것을 막아 교통 체증을 감소시키면서 환경보호를 위해 전기차를 이용한다. 우리나라 택배 물류 체계와도 비슷한 형태인데, 도심 교통 체증과 친환경을 고려해 시내만큼은 전기차를 이용하는 것이다. 현재까지는 수백 대에 불과하지만, 덴마크는 승용 전기차 민간 보급보다는 물류나 유통·카셰어링 등 공익적 성격이 큰 시설에 전기차 보급을 확대하고 있다.
네덜란드도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전기차보다는 물류·유통 등 공익적 가치가 큰 상용차를 대상으로 특화된 보급 정책을 펼치고 있다. 네덜란드 정부는 지난해 관련 산업계로부터 49개 전기차 보급 관련 아이디어를 접수받아 9개 사업을 최종 확정했다. 이 중에 4개 사업이 전기트럭을 이용한 물류 시스템이다. 이 중에는 10톤 전기트럭을 활용한 물류 서비스를 포함해 도심 슈퍼마켓을 대상으로 한 식품 배달 전기트럭 사업도 2개나 된다. 이미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3대 운송 업체는 모두 최근 전기차를 늘려가고 있다. 피터스 버보슨탈레와 스테즈디스트리뷰티는 100% 전기 동력 트럭을 도입했고, 모쿰 메어림은 전기화물선을 운영하고 있다.
중국도 물류 분야에 보다 강력한 지원책을 펼치고 있다. 정부가 승용 전기차 보조금 지원 이외에도 물류 차량에 대해서는 지방자치단체별로 추가 구매 지원금을 부여하고, 지역 전역에 자유통행을 허가했다. 디젤 상용트럭 등이 제한된 도로에도 택배 등 물류 전기트럭에 한해 통행할 수 있는 별도 혜택인 것이다. 중국 선전과 톈진 등은 6m 이하 중형 전기 물류차량에 대해 일반 및 대형 화물차량 도로 제한 시간에 통행을 허용하고 있다.
미국 테슬라가 지난해 11월 공개한 전기차 ‘세미 트럭’은 1회 충전으로 804km(500마일)를 주행할 수 있으며 2019년부터 판매할 계획이다.
테슬라의 전기 트럭 ‘세미’
국내 물류 시장은 ‘아직 걸음마’
우리나라도 유통·물류 분야의 전기차 도입에 속도를 내고 있어 이르면 올해 연말부터 특정지역을 대상으로 한 택배, 물류 용도의 전기트럭이 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전기차 도입에 가장 적극적인 건 소셜커머스 쿠팡이다. 쿠팡은 대구에 친환경 물류센터를 건립하고 이 지역을 거점으로 한 전기트럭 1천 대 도입을 추진 중이며, 최근 전기트럭 제작사 선정을 위한 입찰에 착수한 상태다.
CJ대한통운은 2013년부터 실버 택배 사업에 다목적 전동차를 이용하고 있다. 아파트 단지 내 실버 택배 거점으로 대형 택배 차량이 화물을 싣고 오면 시니어 배송원이 각 동으로 배송하는 형태이다. 이 같은 경험을 바탕으로 국산차량을 포함해 중국 등에서 회사 물류사업에 최적화된 전기트럭도 소싱 중이다. 업계는 버스나 트럭과 같은 상용차는 이동 패턴이 비교적 단순한 만큼 인프라 구축 측면에서 승용 전기차보다 상대적으로 제약이 적어 운행에 유리하다고 보고 있다.이런 흐름에 맞춰 국내 완성차 업계는 물류용 전기트럭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르노삼성자동차는 산업통상자원부 핵심기술 개발사업의 일환으로 LG화학·대동공업 등과 손잡고 1회 충전 시 주행거리 250km 이상의 전기트럭 개발을 진행 중이다. 모기업인 르노그룹은 2012년부터 0.5톤 급 소형 전기트럭 ‘캉구 Z.E.’를 유럽에서 판매 중인데, 르노삼성이 개발 중인 전기트럭에는 르노의 기술이 상당부분 적용될 것으로 보인다. 현대차와 기아차는 각각 ‘포터’와 ‘봉고’ 등을 기반으로 1톤 급 전기트럭을 개발 중인데, 시범운행을 거친 뒤 내년에 출시될 예정이다.
국내 중견·중소기업들도 전기트럭 개발에 나서고 있다. 상용 전기트럭이 일반 내연기관 차량보다 완성차 개발이 간단한데다, 다품종 소량생산에 유리하기 때문에 중소기업까지 완성차 시장에 뛰어들었다. 개조형 전기트럭 업체인 파워프라자는 이미 0.5톤과 1톤 급 전기트럭 개조차량을 개발해 판매 중으로, 현재까지 약 50대가 팔렸다. 또 국내에서 처음으로 전기버스를 판매한 에디슨모터스(구 한국화이바)는 올 하반기 자체 제작한 1톤 급 전기트럭을 판매할 예정이다. 우정사업본부 역시 전기차 도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배달용 이륜차 전체 1만 5천 대 중 1만 대를 무공해 초소형 전기차로 교체하고 나머지 5천 대는 전기이륜차로 교체하여 운행이 어려운 지역에까지도 투입할 계획이다. 현재 쎄미시스코와 대창모터스, 르노삼성이 우본의 전기차 시험 사업에 참가하고 있다.
호주에서 우편물 배달 차량으로 이용되고 있는 르노의 상용 전기차 ‘캉구 Z.E.’
전기차 물류체계를 앞당길 대안은?
전기차 기반 물류체계를 앞당길 대안은 결국 차량이다. 현재까지 국내외 통틀어 물류에 최적화된 범용적인 차량은 찾아보기 힘들다. 배터리의 에너지 밀도나, 차량의 주행성능은 차량 가격 등을 따지면 아직 대형 전기차에는 최적화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 가운데 최근 미국 시장조사 업체인 프로스트 앤 설리번은 2025년까지 글로벌 소·중·대형 전기트럭 연간 판매량이 225만 대 이상을 기록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놨다. 국가별 인센티브 프로그램, 배출 규제 강화에 대한 정책 변화와 빠른 기술 발전이 전기트럭 시장을 촉진할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프로스트 앤 설리번은 이 같은 금빛 전망과 함께 선행돼야 할 몇 가지를 지적했다. 물류·유통분야 전기트럭 시장 성장을 위해 △ 평균 디젤 충전 시간과 비슷한 수준으로 충전할 수 있는 250kW급 초고속 충전기술과 배터리 교환시스템 △300마일 이상 주행거리와 자율주행 기능 및 공기역학적으로 간소화된 설계를 갖춘 전기트럭 개발 등이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이 같은 문제점도 점차 해소되는 추세다. 4월에는 세계 최초 350kW급 초고속 충전기를 개발한 국내 한 충전기 업체가 폭스바겐의 자회사인 일렉트리파이 아메리카(Electrify America)의 충전 인프라 구축 사업을 수주했다고 밝혔다. 이 충전기를 이용하면 전기차(아이오닉 일렉트릭 기준)를 완충전 하기까지 3분도 채 안 걸린다. 그만큼 대용량 전기를 단번에 방출하기 때문인데, 이 충전기는 과열 방지를 위해 케이블 내부에 별도 냉각수를 포함한 냉각장치를 내장할 정도로 새로운 개념의 제품이다. 이 같은 초고속 충전속도(출력)를 받아줄 배터리는 현재까지는 없지만, 올 연말부터 일부 유럽 전기차를 시작으로 초고속 충전이 가능한 차량을 내놓을 예정이라 충전시간 문제는 대폭 해소될 전망이다.
또한 최근에는 탑차 형태의 냉장(동)기능을 갖춘 전기트럭도 개발되어 식품 물류 유통용으로 유용하다. 식품을 유통하는 일반 내연기관의 트럭은 냉동시설물 이용을 위해 별도의 디젤발전기를 돌려야만 했고, 식품이 남을 경우엔 트럭에 실린 식품을 꺼내어 냉장고에 다시 보관하는 절차를 거쳐야 한다. 하지만 전기차는 별도의 발전기를 사용하지 않고도 냉장고를 운영할 수 있어 시간과 인력 낭비를 크게 줄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