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모된 작품을 읽으면서 투고하는 분들이 좀더 진지하고 성실하게 글을 썼으면 하는 바람과 삶에 대한 깊이 있는 관찰이 있었으면 하는 욕심을 부려 보지만, 이 달의 작품들은 그 바람을 희망사항으로 남겨두라는 반응이다.
이유는 선자의 기대심리가 과한 때문일 수도 있으나, 결코 욕심이 지나친데 기인한다고만 단언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비록 작가나 시인이 되기를 바라고 글을 쓰지는 않더라도, 글은 진실이 생명이라는 점만은 염두에 두었으면 한다. 독자를 의식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위해서라도 이 말을 상기하면서 글을 쓰면 유익하리라 믿는다.
왜냐 하면, 글의 고유한 목적은 자기 표현이며 자기의 사상이나 감정, 특수한 체험을 표현한 시 또는 산문이 결국 자기의 인격과 지식과 명예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글 속에 표현된 사물이나 창조적 세계도 실은 개성에 따라 주관적으로 윤색될 수밖에 없지만 그 주관적 표현에 있어서 빈틈 없는 구성과 매끄러운 문체, 참신한 소재와 뚜렷한 주제를 보여주는 작품과 그렇지 못한 작품의 가치, 독자의 반향, 인상의 깊고 얕음의 차이는 실로 지대한 것이다.
시 가운데「女息(이규영)」은 육화된 언어의 진솔함이 눈길을 끈다. 상황과 느낌을 직접 진술로써 구체적인 현실감을 전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정감을 딸에게 투사하여 진실된 인정미를 빚어 놓았다. 이는 순수하고 훈기어린 父情의 발로이며 바람직한 훈육의 태도이기도 하다. 좋은 점만 밀하였으나 제목「女息」은 현대감각에 어울리는 동의어가 있음을 간과하지 않았나 싶다.
「그리움(임봉갑)」은 종말로 치닫는 듯한 농촌의 극한 상황을 상징적으로 표출한 점이 돋보인다. '두메산골 논두렁은 가슴으로 무너집니다’ 와 같은 표현이 내포한 이미지는 가히 시적이다. 첫 연을 말미에 다시 놓은 것은 강조의 효과를 얻고 있다. 그러나 반복 사용한 '다된'은 다소거슬린다 제목과 내용의 괴리현상도 지적될 수밖에 없다.
「글씨를 쓰면서 (이숙자)」는 三首로 된 시조시로서 자신의 감회를 솔직하게 토로하고 있으나 '몰라라', '다시 보니' 등 진부한 인상을 지우지 못한 점이 아쉽다.
「아버님전상서(유종희)」는 자기가 전하고자 하는 말은 대체로 다하고 있으나 정중한 예의를 갖추는데는 소홀한 점이 없지 않다. 편지라 하여 옛날처럼 격식을 굳이 따를 필요는 없으나, 경어를 사용해야 할 상대에게는 반드시 경어를 사용하고 평교간에도 경어를 쓰는 것이 바른 예의이다.
「딸 자랑(전춘희 )」은 일상생활 속의 대수롭지 않은 소재를 제법 흥미롭게 펼치려 노력한 흔적은 보이나, 문장력이 이를 따르지 못하여 좋은 글감을 생생히 살려내는데까지는 이르지 못하였다. 고쳐 쓰면 훌륭한 글이 될듯싶다.